‘뜨거운 감자’가 돌아온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9.01.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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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전 최고위원 입국설에 친이계는 ‘환영’ 친박계는 ‘경계령’

▲ 친이계 성향의 의원 모임인 ‘함께 내일로’는 야당과의 쟁점 법안 협상 실패를 두고 홍준표 원내대표(왼쪽) 등 당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이미 계획된 일정에 따른 것이지 그림을 그려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이재오 전 최고위원을 만나고 온 한 여권 인사가 “3월 초에 귀국할 예정이다”라는 소식을 전하면서 한 말이다. 귀국 시기를 놓고 이런저런 정치적 해석이 나오는 데 대해 그는 “앞으로 기회가 오면 자연스럽게 역할을 맡을 수 있겠지만 백의종군하겠다는 이 전 최고위원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재오 역할론’은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이다.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후 일선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지만 이 전 최고위원의 정치 행보를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이명박 정권 탄생의 주역으로서 ‘권력 2인자’로 불렸던 그의 정계 복귀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정국 흐름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한나라당 내부 반응은 더욱 민감하다. 친이계 좌장의 귀환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여권의 권력 구도에 변화를 불러오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입법 전쟁’ 후폭풍에 ‘지도부 책임론’까지 부상

새해 벽두부터 한나라당은 ‘입법 전쟁’ 후폭풍으로 심한 내홍을 겪었다. 야당과의 쟁점 법안 처리 협상에서 사실상 패배했다는 내부 비판이 확산되면서 지도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특히 친이명박계 내 강성파를 중심으로 홍준표 원내대표에 대한 인책론이 제기되면서 이를 둘러싼 의견 대립이 계파 간 갈등 양상으로 치달았다.

친이계 성향의 의원 모임인 ‘함께 내일로’는 여야 합의 체결 다음 날인 1월7일 “이번 합의안은 민의의 전당을 파행으로 몰고 간 불법과의 야합이고, 경제와 민생을 벼랑 끝으로 내몬 떼법에 대한 굴복이다”라고 비판하면서 ‘실패한 협상’을 주도한 지도부를 공개적으로 추궁했다. 차명진 대변인은 “지도부가 폭력 소수의 결재가 있어야만 법안을 통과하겠다는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라고 강한 불만을 표출하며 대변인직을 내던졌다.

폭발 직전의 긴장은 박희태 대표와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등이 수습에 나서면서 일단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갈등은 해소되지 않은 채 잠재해 있다. 지난해 9월 추경안 처리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었던 당시와 양상이 비슷하다.

야당과 한 번 더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장수’를 교체할 경우 적전 분열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전면적인 충돌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잠시 가라앉은 갈등은 언제든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함께 내일로’를 비롯한 ‘국민통합포럼’ ‘위기관리포럼’ 등 당내 친이계 의원 모임 대표들은 1월8일 오전 회동을 갖고 연석회의 차원의 원내대표 퇴진 작업은 공론화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으며 전날의 강경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여전히 들끓고 있다. 그런 만큼 2월 임시국회 결과에 따라 지도부 교체 요구가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당내 상황은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의 복귀가 가시화하면서 지도부 책임론을 놓고 계파 간 힘겨루기 양상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친이계 강성파의 주축은 대부분 친이재오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이다. 이들은 이 전 최고위원이 친이계의 구심점이 되어야 이명박 정권의 성공을 이끌 수 있다며 그의 귀국 후 행보에 기대를 걸고 있다.

반면, 여권 내에서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놓여 있는 친박근혜계는 귀국 시기와 이후 행보는 본인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대선과 총선을 치르며 쌓인 앙금이 아직도 남아 있다. 친박계 좌장인 김무성 의원은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설이 나오자 “신발 끈을 동여매고 준비해야 한다”라며 사실상 ‘계파 전쟁’을 예고한 바 있다.

중도파 의원들 중에서도 그의 정계 복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당을 양분하며 ‘불안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는 친이계와 친박계의 갈등이 다시 불붙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이다. 강경 성향의 이 전 최고위원이 ‘독주’에 나설 경우 친박계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화합과 통합이 절실한 마당에 내부 분열을 야기해 당의 전력을 손실할 위험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친이계 내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현재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친이상득계 입장에서는 이 전 최고위원의 정계 복귀가 껄끄러울 수 있다. 권력 구조상 주도권 경쟁을 펼쳐야 할 입장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지도부 책임론’을 곱지 않게 바라보며 곧바로 무마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지적이다.

소장파로 구성된 친이 직계 일각에서도 이러한 기류가 읽힌다. 드러내고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의 귀국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 이재오 전 최고위원(왼쪽).

당 복귀 후 반대 세력 견제부터 극복해야

이 전 최고위원이 귀국 후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측근들에 따르면 본인은 내각보다 국회에 재입성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지역구인 서울 은평 을에서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다면 출마가 예상된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수 있다. 4월이 아니라 10월로 미루어지거나 선거가 아예 없을 가능성도 있다.

원내 진입에 성공하느냐 여부를 떠나 당권 도전에 나설지도 관심사이다. 당 일각에서는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있다. 이 경우 박근혜 전 대표와 이 전 최고위원 간 ‘빅 매치’가 성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다는 점에서 당권은 향후 계파의 사활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지닌다. 개인은 물론 계파 차원에서도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

이 전 최고위원이 당으로 복귀해 예전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우선 반대 세력의 견제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당 상황을 볼 때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이다.

이에 따라 최근 정부가 발표한 ‘녹색 뉴딜’ 사업을 추진하는 데서 일정한 역할을 맡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이대통령의 대선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진두지휘한 경험이 있다. 그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약점이기도 하다. 당내는 물론 국민 여론이 호의적이어야 맡을 수 있는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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