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만 보지 말고 극장 가서 줄 서자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1.20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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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만 돌아오면 해마다 반복되는 재탕·삼탕 ‘안방’ 영화 지금 극장가에는 <워낭소리> <작전명 발키리>가 기다린다

▲ 에서 양조위가 분한 오나라 장수 주유(위)는 진정한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다. ⓒ쇼박스 제공

영화팬들에게 설 연휴 극장에 걸리는 영화 라인업은 어머니가 푸짐하게 차려주신 밥상처럼 느껴질 법하다. 블록버스터에서 가족영화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설 연휴에는 영화 고르는 재미가 조금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개봉되는 영화의 편수와 다양성에서 영화팬의 욕구를 채우기에 부족하다. 특히 한국 영화는 연휴 전주에 개봉한 <워낭소리>와 <유감스러운 도시>가 전부이다. 늙은 소와 시골 노인의 인연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다양성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작은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설 대목을 노려 대대적으로 개봉하는 영화는 <유감스러운 도시>가 유일하다.

할리우드 영화의 라인업도 화려하지는 않다.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작전명 발키리>가 유일하다. 이 밖에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을 맡은 <체인질링>, 아담 샌들러표 가족 코미디인 <베드타임 스토리>가 관객을 찾아간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아쉬움은 중국의 <적벽대전2-최후의 결전>이 달래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7월 개봉한 <적벽대전1-거대한 전쟁의 시작>에 이은 연작 형태의 두 번째 작품으로 대규모 전쟁 신이 본격 등장한다.

설 연휴에는 전통적으로 한국 영화가 강세를 보여왔다. 지난해만 해도 <원스 어폰 어 타임> <라듸오데이즈> <더 게임> 등이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해 흥행 선두를 기록한 <원스 어폰 어 타임>을 비롯해 박스오피스 6위까지를 한국 영화가 차지했었다. 2007년에는 <1번가의 기적>, 2006년에는 <가문의 부활>, 2005년에는 <투사부일체>가 설 연휴에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2009년 설 연휴를 책임질 유일한 한국 영화 <유감스러운 도시>의 흥행 결과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유감스러운 도시>는 <조폭 마누라> 이후 명절이면 언제나 우리를 찾아와 작품의 완성도와는 관계없이 흥행에 성공하곤 했던 조폭 코미디 영화이다. 2005년 <투사부일체>로 재미를 보았던 배우와 제작진이 다시 뭉쳤다. 김동원 감독이 다시 연출을 맡았고, 정준호·정웅인·정운택 등으로 구성된 정트리오가 다시 의기투합했다. 여기에 김상중·박상민·한고은이 가세했다.

조폭 코미디 영화 <유감스러운 도시> <유감스러운 도시>는 경찰과 범죄조직원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상대방 조직에 스파이로 위장 잠입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홍콩 누아르 <무간도>의 설정과 유사하다. 조폭 코미디의 기조는 유지하고 있지만 액션, 스릴러와 멜로적인 요소를 강화했다.

시사를 통해 공개된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기존의 조폭 코미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쪽이 우세하다. 하지만 TV만 틀면 등장하는 정트리오의 적극적인 홍보 작전과 연휴에 별 생각 없이 즐기는 영화를 선택해왔던 관객들의 취향을 떠올리면 흥행에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설 연휴 유일한 한국 영화 개봉작 (위)에 팀이 의기투합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설 전에 개봉했지만 흥행 성적이 좋았던 <과속 스캔들>과 <쌍화점>도 추석 연휴 기간을 관통한다. 결국, 전통적으로 명절에 강세를 보이는 메뉴인 에로물(<쌍화점>)과 로맨스 코미디물(<과속 스캔들>), 조폭 코미디(<유감스러운 도시>)가 모두 설 연휴 잔칫상에 오른 셈이다. 설 연휴 동안 <유감스러운 도시>가 흥행 왕좌에 오를지, 흥행 가속이 붙은 <과속 스캔들>이 흥행 영광을 독식할지, <쌍화점>이 얼마나 더 관객 수를 추가할지 주목된다.

설 연휴 신규 개봉작 중 가장 기대를 받고 있는 작품은 한국영화도, 할리우드영화도 아닌 중국 영화 <적벽대전2>이다. <적벽대전2>는 우리에게 익숙한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다룬 영화로 4시간 길이의 영화를 1, 2편으로 쪼개놓았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지난해 7월 개봉한 <적벽대전1>은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한 중국을 비롯해 아시아 전역에서 기록적인 흥행을 거두었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1백70만명이라는 평범한 성적에 그쳤다. <무극> <황후화> <명장>에 이어 중국 액션 시대극이 한국 시장에서 홀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 것이다. 인물들 간의 관계 설명에 긴 시간을 할애하고 대규모 액션 신에 대한 관객의 기대를 저버린 점이 흥행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장대한 스케일 볼만한 <적벽대전2>하지만 이번에 개봉될 <적벽대전2>는 본격적인 전쟁 장면이 등장하며 장대한 스케일을 원하는 영화팬들의 갈증을 풀어줄 것으로 보인다. 조조의 100만 대군을 화공계로 패퇴시키는 주유와 제갈량의 지략과 심리 싸움을 보는 재미와 대규모 물량이 투입된 적벽대전의 재현을 보는 재미를 함께 맛볼 수 있다.

<적벽대전>으로 한데 모인 양조위, 금성무, 장첸, 장풍의 등 스타 배우들의 연기력과 오우삼 감독의 연출력을 확인하는 것도 즐거움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기초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우삼 감독이 재해석한 이야기와 캐릭터에서 의외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도 있다.

<엑스맨>, <수퍼맨 리턴즈>로 흥행 감각을 뽐내온 브라이언 싱어와 최고의 흥행 배우 톰 크루즈의 결합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작전명 발키리>도 설 연휴에 관객을 찾아온다. 나치 수장 히틀러의 암살 계획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에 대규모 물량이 투입된 기대작이지만 먼저 개봉한 미국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잘 만들어진 스릴러라는 평가이지만 전쟁 블록버스터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실망을 줄 수도 있다. 대규모 전쟁신이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독일 군부 최상위 권력층 내 비밀 세력이 히틀러의 사망을 대비해 세워놓은 비상 작전 ‘발키리’를 이용해 히틀러의 암살을 시도한 독일 장교의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를 끌 만하다.

노장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체인질링>은 불합리한 권력에 항거하는 한 어머니의 모정을 다룬 휴먼 스토리이다. 아들을 유괴당한 어머니에게 엉뚱한 아이를 데려다주고는 친아들을 찾으려는 어머니의 노력을 묵살하는 경찰 권력의 횡포를 다루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보이지만 1920년대 과도한 권력을 부여받은 LA 경찰이 자행한 실화.

설 연휴 아이들과 함께 극장을 찾는 젊은 부모들을 위한 영화도 준비되어 있다. <베드타임 스토리>는 아담 샌들러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욕설과 화장실 코미디가 등장하지 않는 가족영화이다. 먼저 개봉된 미국에서는 같은 날 개봉한 <작전명 발키리>를 누르고 1억 달러의 흥행 수익을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이미 개봉한 애니메이션 작품들도 설 연휴 동안 관객을 기다린다. 동물원을 탈출한 사자, 얼룩말, 기린, 하마의 소동을 그린 <마다가스카2>, TV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TV 스타 강아지 볼트의 모험을 그린 <볼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인어공주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만들어낸 <벼랑 위의 포뇨>가 상영 중이다. 환상의 나비를 찾아 길을 떠나는 할아버지와 소녀의 우정을 다룬 <버터플라이>도 가족영화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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