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에도 ‘품위’가 필요했나
  • 이재언 (미술평론가) ()
  • 승인 2009.01.20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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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전하는 최고의 선물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미술계 침체에 타격 주지 않을까 걱정

▲ ‘퐁피두센터 특별전-화가들의 천국’에서 말콤 몰리의 을 관람하고 있는 관객들. ⓒ시사저널 이종현

한동안 조용하다 싶었는데, 또다시 권력층의 부도덕한 뇌물 추문의 중심에 그림이 있다 해서 미술계가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전·현직 국세청장 간에 청탁과 함께 대가성 그림이 전해졌으며, 그 그림의 작가가 고인이 된 화가이며 그림의 제목과 이미지까지도 상세하게 폭로되었다. 사실 여부야 아직 분명치 않지만 ‘또 그림이 문제냐’라며 미술계는 곤혹스러워하고 난감해한다. 사회 지도층의 일그러진 행태로 말미암아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미술계가 떠안는 것이다.

미술계의 침체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마당에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같이 휘발성이 큰 사안들이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신정아씨 학력 위조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청와대 그림 의혹 논란과 조형물 리베이트 논란,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으로 문제가 불거진 불법적 그림 매입 의혹, 법정 공방으로 비화된 박수근·이중섭 작품 위작 시비 등으로도 위신이 땅에 떨어진 시기에 이번 그림 뇌물 의혹 사건은 극복하기 힘겨운 난관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일각에서 더러 그러한 부도덕한 결탁이 있을지 몰라도 미술계 전체적으로는 아직도 어렵고 힘겨운 현실과 씨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미술이 우리 사회를 아름답고 건전하게 개선해나가는 주역임을 천명하기 위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자기 반성과 성찰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수 부유층이나 권력층의 전유물이기보다는 전체 국민에게 사랑받는 미술이 되기 위해 필요한 길은 과연 무엇일까 모색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미술 작품이 뇌물 스캔들 같은 사건에 자주 연루되는 것일까. 그림이 고가로 거래되고, 고도의 재테크 수단이 되기 전에는 존경과 사랑을 표하는 뜻 깊은 선물로서 그만한 것이 없었다. 과거 우리 선비들 세계에서는 자기 마음을 전하는 최고의 선물로, 자식들에게 물려줄 가보로 서화 작품들을 전하던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다. 물론 요즘도 그런 미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추사 선생의 유명한 <세한도(歲寒圖)>. 신분이 낮은 중인 역관 출신의 제자 이상적에게 스승이 준 최고의 선물이 바로 그림이었다. 제주 섬에 귀양 중인 스승을 위해 귀한 서책들을 구해다 주고 중국 학자들 세계에 널리 이름을 떨치도록 소개해준 제자에게 그 고마운 마음을 그림에 담았던 것이다.

가짜 그림을 줘도 받는 사람은 몰라

▲ 한 관람객이 운보 김기창 5주기 기념전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왜 서화류가 뇌물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인가. 우선 같은 뇌물이어도 서화류를 건넬 때는 전하는 사람 입장에서나 받는 사람 입장에서 서로 덜 경직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모양새 자체가 격을 가진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금처럼 사과박스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아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오래 두면 둘수록 가격까지 오를 수 있고, 불법적으로 상속까지 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하다. 더 결정적인 것은 주는 사람이 생색내기가 좋다는 것이다. 막말로 100만~2백만원 하는 것 가지고도 “이거, 요즘 3천만~4천만원 하는 겁니다”라면서 줄 수 있어 손이 덜 부끄러울 것이다. 특히 얼마를 건네야 좋을지 모르겠다 싶을 때 받는 사람의 기대치를 말로 만족시켜줄 수 있어 좋다. “몇 년 두면 몇 배 오르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1990년 초반 운보 김기창 전작도록을 만들 때의 일이다. 평생 2만여 점(삽화·드로잉 포함)의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운보의 작품들을 집대성해 수록하는 전작도록. 미술계의 대역사라 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는 한국 미술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작가 생존시 가족 외에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해 작품 세계의 양식적 체계와 작품마다의 인덱스를 3년여 기간 동안 완성시킨 전작도록은 미술사와 미술시장에 지금도 중요 자료로 남아 있다.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지만 해외 소장자들에까지 알리기 위해 일간지에 공고를 내서 작품 등재를 유도하고, 신청한 작품들의 목록 작성과 촬영을 하면서 공식적인 자체 진위 감정 과정까지 거쳤다. 이런 까닭에 운보 김기창 작품들에 대한 연구 자료로서만이 아니고 감정의 기초 자료로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다.

최근 들어 무수히 많은 진위 감정을 둘러싼 논란에도 운보 작품들이 그러한 시비로부터 비교적 비켜서 있는 것도 일찍부터 전작도록이라는 객관적인 자료집을 냄으로써 상당 부분 정리가 된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제작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당시 상업적 거래가 잘 되고 있었던 운보 김기창의 그림은 미술관 소장보다는 지도층 인사들에게 많이 몰려 있었다. 고위층일수록 등재와 게재에 비협조적이었다. 이미 미술시장에서는 어떤 사람들에게 누구의 그림이 많이 흘러들어갔는지 풍문들이 돌고 있었기에 공식적인 등재를 타진하거나 권고하는데도 대꾸조차 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

당시 인사동에서는 ‘어떤 권력자가 어떤 그림을 좋아한다’라는 등의 루머가 파다해, 실제로 그런 작가들의 그림을 구매하려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동양화 작품이 주종을 이루었다. 그림이 선물용보다는 뇌물용으로 쓰이다 보니 가짜 그림이 자주 섞여 들어가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전해진다.

받는 사람의 안목이 까다롭다면 당연히 진품을, 받는 사람의 안목이 신통치 않다면 당연히 가짜를 섞어넣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아울러 권력 기관 인사들 가운데 그 청탁 관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는 진품을, 단발로 끝날 때는 가짜를 많이 사서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 미술계 일각에서도 바로 이러한 부패한 현실에 편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점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정권 실세의 가족이 되는 작가를 화랑이 스카우트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또, 지극히 일부이지만 어떤 화랑들은 전시를 할 때마다 매진을 기록하는데, 작품 요인을 떠나 주된 매진 원인이 어디 있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팔린다는 것 자체가 죄악시되어서는 안 된다. 작가와 화상들이 정당하게 노력해 양질의 문화를 선보이고 그것이 판매되어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다만, 오늘날 고도의 상업적 발전에 의해 왜곡되고 기형화된 우리 미술문화가 그런 의혹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도 건전한 시장 질서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더 적극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 다수의 미술인들이 가난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도덕적 선을 지키고자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들에게 욕된 현실로 인해 좌절하게 한다는 것은 엄청난 국가적 재앙이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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