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 의혹 번진 ‘학동마을’ 진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1.20 02: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군표 국세청장 부인, ‘뇌물로 받았다’ 밝혀 / 한상률 전 국세청장 관련 ‘물증’ 나올지 주목

▲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청장 재임 시절 뇌물로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고 최욱경 화가의 그림 (오른쪽). ⓒ연합뉴스

<학동마을>의 진실은 무엇인가. 한상률 국세청장의 이른바 ‘그림 로비 의혹’이 점입가경이다. 받았다는 사람은 있는데 주었다는 사람이 없다. 부인은 받았다고 하고 남편은 안 받았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만났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요지경도 이런 요지경이 없다.

<학동마을>은 38cm×45.5cm(8호) 크기의 추상화이다. 한국 현대추상미술의 대가인 고 최욱경 화백이 1984년에 그렸다. 한국의 전통 색채에 주목했던 화가의 강렬한 색채 감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고 최화백은 이 작품을 그린 이듬해인 1985년 음주 상태에서 수면제를 먹고 세상을 떴다. 고인이 된 지 20년이 지나 이 그림이 새삼 주목된 것은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부인 이 아무개씨가 2007년 당시 한상률 국세청 차장으로부터 이 그림을 선물로 받았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 1월12일 한 언론에 “한씨가 승진 경쟁자인 김 아무개씨를 밀어내달라며 <학동마을>을 주었다”라고 밝혔다. 이 그림의 현재 시세는 2천만원 남짓으로 알려졌다.

현재 화랑가에서 고 최욱경 화가의 그림을 다루는 곳은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있는 국제갤러리가 유일하다. 그러나 <학동마을>이 매물로 나온 곳은 홍 아무개씨가 대표로 있는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가인갤러리이다. 가인갤러리는 평소 <학동마을> 같은 추상화를 취급하지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일까.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 이씨가 지난해 10월 평소 알고 지내던 이 갤러리 대표 홍 아무개씨에게 이 그림을 팔아달라고 맡겼기 때문이다. 홍씨의 남편은 서울지방국세청의 현직 국장이다. 국세청 내 모임에서 부부 동반으로 만난 적이 있기 때문에 이씨는 홍씨가 화랑을 운영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홍씨 부부와 절친한 관계였다.

전 전 청장의 부인 이씨의 폭로가 맞다면 이 그림은 국제갤러리-한상률-전군표로 소유자가 바뀌어온 셈이다. 하지만 현재 이씨 외에 이 그림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는 없다.

한상률 청장과 그의 부인은 물론 남편인 전군표 전 청장도 “그림을 본 적도 없다”라고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오직 이씨만이 “한상률 청장으로부터 받았다. 사실대로 말할 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폭로 이후 전 전 청장은 이씨에게 “이혼할 각오를 하라”라며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그림 한 점 현 정권 실세에게 갔다” 소문도

그렇다면 이씨가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냈다고 보아야 할까. 이렇게 보기도 어렵다. 우선 이씨 말이 맞다면 남편인 전 전 청장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추가 기소된다. 남편의 죄가 늘어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을 상황에서 사실도 아닌 이야기를 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런 상황을 무릅쓰고라도 사실을 밝혀 한청장에게 타격을 주겠다는 ‘감정’이 있었다고 보는 편이 상식적이다. 지난 대선 때의 이른바 ‘국세청의 이명박 뒷조사’와 관련해 한청장이 모든 책임을 자신들에게 떠넘겼다는 인간적인 배신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취재 과정에서 전군표 전 청장의 부인 이씨가 언론에 입을 열기 며칠 전에 한 지인에게 같은 말을 한 사실을 확인한 것도 눈여겨볼 일이다. 이 지인은 이씨의 말을 입증할 ‘물증’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그림 로비 의혹’의 최종적인 결과는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이미 채비를 하고 있다. 그림의 유통 특성상 국제갤러리에서 <학동마을>이 처음에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밝혀낼 수 있느냐가 수사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말’ 외에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2004년 국세청이 국제갤러리를 세무조사할 때 <학동마을> 외에도 그림 4~5점이 더 국세청 쪽으로 건너갔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국세청의 한 핵심 인사는 “이 가운데 한 점이 현 정권의 핵심 인사에게 흘러갔다는 말이 있다”라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경주 골프'

한상률 청장, 대통령 동서에게 인사 청탁 의혹 일부 기관장들, 청와대로부터 이미 주의받아

<시사저널>이 지난 1월13일 온라인을 통해 단독 보도한 ‘한상률 국세청장의 경주 골프’ 사건이 정·관가에 일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한청장이 지난해 12월25일 경주에 내려가 이명박 대통령·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친한 포항 출신 기업인, 대통령의 동서인 신기옥씨 등과 골프와 식사를 하고 유흥주점에서 술을 마셨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림 로비 의혹’과 얽히면서 국세청장 유임이 유력하던 한청장은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특히 대통령의 친인척이 등장한 대목이 정치권의 민감도를 높였다.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국세청장이 대통령의 친인척 및 실세들과 어울려 골프를 치고 식사를 한 것은 권력의 정점에서 얼마나 무소불위 권위를 행사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자유선진당과 민노당은 인사 청탁 로비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조사를 해봐야 한다”라면서도 곤혹스런 기색이 역력하다. 한청장이 골프를 함께한 기업인들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과 친한 데다 ‘친인척’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당장 정가에는 ‘만사형통(모든 것이 형님으로 통한다)’이라는 말이 다시 나돌았다. 최근 이의원과 만난 한 인사는 “다른 때와 달리 이의원이 안절부절못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라고 전했다.

‘경주 골프’는 <시사저널>의 보도로  알려졌지만 사정 기관의 한 관계자는 “한청장이 포항 지역 기업인들과 어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네 번 정도 되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만남이 더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들 기업인과의 만남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한청장과 다른 팀에서 골프를 쳤다는 것은 이 관계자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을 높여준다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