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생존게임’에 이상득 의원 연관됐나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1.20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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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초, 유임 위해 대구·경북 인맥에 ‘줄 대기’이의원과 절친한 전직 국세청장이 소개해줘

▲ 고개를 숙이고 청사로 들어가는 국세청 직원들(위)의 모습은 앞으로 불어닥칠 개혁 태풍을 예감케 한다. ⓒ시사저널 임영무

국세청이 흔들리고 있다. 이주성·전군표 전 청장이 비리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한상률 청장이 인사 로비 의혹에 휘말려 낙마하면서 크게 출렁이고 있다. 노무현 정권 당시 국세청장에 임명되었지만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서 연임에 성공했고, 이번 개각에서도 유임이 확정적이었던 한 전 청장은 왜 사퇴에 이른 것일까. 그림 로비 의혹과 포항 인사들과의 경주 골프 회동 등 한 전 청장과 관련해 최근 잇달아 터져나온 사건의 막후에는 현 정권 들어 계속된 국세청 안팎의 암투가 있다. 그 전말을 추적했다.

국세청 내 ‘친한상률파’와 ‘반한상률파’ 간 갈등의 씨앗이 본격적으로 잉태된 것은 지난해 4월부터이다. 한 전 청장이 4월1일자로 단행한 인사 이후 내부에 불만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이후 단순히 국세청 내부뿐 아니라 정치권과 청와대, 검찰 등 권력 기관들까지 얽혀 물밑 이전투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 지난 1년간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둘러싸고 벌어진 암투는 실로 긴박했고 이 과정에서 권력 기관 사이에 견제와 감시는 실종되고 서로 간에 음해와 투서가 난무했다. 이로 미루어볼 때 국세청의 사례는 한 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통치 체계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세청의 현재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한 전 청장은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11월 국세청장이 되었다. 현직 청장이었던 전군표 청장이 부하 직원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국세청 수장이 된 그는 발빠르게 조직을 안정시켜나갔다. 

문제는 정권이 교체된 이후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했다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그는 충청 출신이었다. 한 전 청장은 살아남기 위해 대구·경북 인맥에 줄을 대기 시작했다. 국세청과 여권 인사들은 지난해 2월 그의 유임이 확정된 배경에는 이상득 의원이 있다고 말한다. 국세청의 한 핵심 인사는 “이의원과 절친한 전직 국세청장이 이의원과 한 전 청장을 연결해준 것으로 안다. 한 전 청장은 과거 이 인사의 비서관을 지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세청 인사는 “한 전 청장은 실세로 떠올랐던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과도 당시 만났다고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원로 그룹과 TK 세력이 여권 주도권 잡는 데 일조한 셈

▲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국세동우회 신년회에서 한상률 전 국세청장(맨 왼쪽)이 회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한 전 청장의 행보는 지난해 2월 당시 정두언 의원이 권력 핵심에서 밀려나고 박영준 전 비서관이 인사의 키를 잡아가는 과정과 맞물려 있다. 한 전 청장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는 결과적으로 이상득 의원을 중심으로 한 원로 그룹과 박 전 비서관을 중심으로 한 대구·경북 세력이 여권의 주도권을 잡는 데 일조한 측면이 있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친이명박계 한 핵심 인사는 “당시 정의원측에서는 국정원과 국세청에, 대선 전에 진행했던 ‘이명박 뒷조사’ 자료를 인수위원회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실태를 파악하고자 함이었다. 국정원은 대강의 자료를 정의원측에 제출했으나 국세청은 줄 수 없다며 버텼다. 정의원의 측근이 국정원 자료를 국세청 인사들에게 보여주며 ‘국정원이 내는데 왜 안 내느냐’라고 압박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일은 정의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된 연유인지 알 수 없으나 ‘정의원이 대통령의 약점이 담긴 자료를 확보하려고 한다’라고 해석되면서 그는 대통령에게 불려갔다. 대통령은 박 전 비서관 등이 있는 자리에서 한 시간 가까이 “왜 국세청 자료를 확보하려고 하느냐”라며 정의원을 질책했다. 이 일 이후 “호남 출신이다” “따르는 사람들의 색깔이 의심스럽다”라는 말이 돌면서 정의원은 빠르게 권력 핵심에서 밀려났다.

한 전 청장이 이명박 정권 들어 유임되는 과정과 관련해 주목되는 또 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 2월 초 진행되었던 법무법인 김앤장에 대한 세무조사이다. 2000년 이후 성실 납세자 표창을 네 차례나 받은 김앤장에 대한 느닷없는 세무조사와 관련해 당시 갖가지 추측이 무성했으나 드러난 것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운 박연차 회장이 이끄는 태광실업 등에 대한 세무조사와 마찬가지로 김앤장에 대한 세무조사 또한 ‘정치적인 세무조사’였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당시 최고 핵심 의원으로부터 ‘김앤장 세무조사는 이회창 자금줄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여권으로서는 이회창 총재가 당을 만들어 총선에 출마하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했던 때였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세무조사를 주목하는 인사들은 김앤장을 이끄는 이재후 변호사가 ‘이명박 후원회 회장’이었다는 데 주목한다. ‘이회창 돈’이 있는지 모르지만 뒤지다 보면 ‘이명박 돈’과 관련 있는 흐름이 잡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세무조사를 정치적으로 보는 이들은 “유임 여부가 달린 중차대한 시기에 한 전 청장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세무조사를 결행했다”라고 본다.

어쨌든 이런 과정 속에 유임된 그는 4월1일자로 인사를 단행했다. 당시 가장 주목되었던 것이 대구지방국세청장을 지낸 ㅇ씨가 서울청 국장으로 발령난 것이다. 당시 <조세일보>는 이 사실을 전하며 “두고두고 말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보도했다. 또 다른 전문지인 <세정신문>은 “언론에서 국세청 차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이례적으로 지방청 국장으로 전보되었다”라고 보도했다. 관행대로라면 지방청장을 했을 경우 본청 국장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ㅇ씨는 대구지방국세청 총무과장으로 있던 1999년 청와대에 들어갔다. 당시 김대중 정권은 김중권 비서실장 체제 아래서 이른바 ‘동진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영남 출신들을 중용했다. 청와대에 있을 때 승진한 그는 2005년 이용섭 국세청장 시절 본청 총무과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서울청 조사1국장, 본청 국제조사국장 등을 거쳐 2007년 7월 대구지방국세청장이 되었다. 행시 26회인 그는 행시 21회 선배보다 앞서 진급했을 정도로 잘나갔다.

▲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관련해 한상률파와 반한상률파의 대립으로 국세청 안팎에서 나돌았던 투서들. ⓒ시사저널 이종현

‘친한상률파’ ‘반한상률파’ 갈등 끝없어

당시 ㅇ씨의 서울청 국장 발령을 두고 국세청 내부의 평가는 엇갈렸다. 한쪽에서는 “한 전 청장이 경북 의성 출신으로 경북대를 나와 정통 TK(대구·경북)라고 볼 수 있는 그를 잠재적인 경쟁자로 보고 견제한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한 전 청장이 유임하는 과정에 도움을 준 ㅇ씨가 뒤통수를 맞았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정반대 시각도 있다. “ㅇ씨가 지난 정권에서 잘나간 만큼 정권이 바뀌었으니 어느 정도 불이익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라는 것이다. 국세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원래대로 간 것이다. ㅇ씨 한 명 때문에 행시 22~25회 선배들이 나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이런 가운데 5월 들어 이른바 ‘신성해운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 사건’이 터지면서 한 전 청장과 관련된 투서가 관계 기관에 줄을 잇기 시작했다. 2004년 그가 조사4국장으로 있을 때 신성해운측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것이 소문의 골자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참여정부 시절 이주성·전군표·한상률은 청와대 386 실세들과 한팀이었으며, 위 3인은 핵심 요직을 주고받으며 각종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이주성은…. 전군표는…. 한상률은….’ 동시에 “한 전 청장이 임채진 검찰총장과 관련 있는 기업을 도와준 적이 있기 때문에 검찰이 그를 치지 못한다”라는 소문도 나돌기 시작했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한때 검찰 수뇌부는 이런 소문에 격앙했었다고 한다. 국세청이 이주성·전군표 청장을 구속한 데 따른 보복으로 검찰을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 기관 관계자들이 만나 ‘오해’를 풀고 검찰 정보 수사관들이 국세청 내부의 역학 관계를 분석한 보고서를 올리면서 임총장이 실상을 제대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내 ‘친한상률파’ 대 ‘반한상률파’의 갈등은 이후 끊임없이 이어졌다. 양측이 청와대 등에 낸 각종 투서만 수십 페이지에 달할 정도이다. 한 전 청장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은 열 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사정 기관의 한 관계자는 “의혹은 많으나 사실로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 말했다. 이것을 해석하는 시각도 갈린다. 한 전 청장측 인사들은 “사실도 아닌 것을 가지고 소문을 흘리고 있다”라고 반대파를 비난한다. 한 전 청장의 측근들은 지난해 하반기 내내 이런 각종 의혹·소문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반대쪽에 서 있는 인사들은 “조사하면 밝혀질 텐데 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은폐된 것이 문제이다”라고 주장한다.
한 전 청장을 둘러싸고 벌어진 국세청 내부의 ‘전쟁’은 정치권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각자 정치권 핵심부와 선을 대고 움직였다. 한 전 청장은 이상득·박영준 라인과 청와대 민정 쪽의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웬만한 청와대 인사들과 다 만난 것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친화력과 정치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반대파 인사도 이상득 의원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있다.

정동기 민정수석은 한때 이주성 전 국세청장의 변호인을 지냈다. 지난 1월13일 <시사저널>이 단독 보도한 ‘한 전 청장의 경주 골프 사건’과 관련해서도 이를 취재하는 언론사들 면면이 청와대 민정 쪽을 통해 국세청으로 흘러갔다. 국세청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언론사 로비에 나섰다. 국세청 한 핵심 인사는 “취재에 들어간 언론사들 이름이 모두 파악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관계자들이 움직였다”라고 전했다.

청와대의 민정 기능에 심각한 문제 있는 듯

▲ 국회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동료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이것은 권력 기관과 주요 인사들을 견제·감시해야 할 청와대의 민정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민정 쪽에서 한 전 청장과 관련해 제기된 의혹들을 나름대로 검증했는지 아니면 묵살했는지, 대통령에게 한 전 청장을 둘러싸고 벌어진 국세청의  이런 암투가 제대로 보고되었는지도 주목된다. 이 때문에 향후 청와대 민정 부분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소지가 있다.

국세청 내부의 암투를 TK 세력의 ‘한상률 몰아내기’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시사저널>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반한상률파’는 지역적으로 TK 세력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한 전 청장이 수장이 된 이후 이루어진 인사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과 국세청이 ‘한상률 사조직화’되어 가고 있다고 보는 일군의 인사들이 연합군을 형성하고 있다. 국세청의 한 핵심 인사는 “국세청이 국가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한상률 개인을 위해서 움직이는 체제로 바뀌어가고 있다. 인사에 아무런 원칙과 기준이 없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특정인을 중심에 세우고 움직인 것이 아니다. ‘한상률은 안 된다’라는 데 뜻을 모았을 뿐이다. 물론 지난해 4월 인사 때 사표를 낸 김 아무개 당시 지방청장과 ㅇ씨 등 TK 출신 인사들이 공공연하게 한 전 청장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다가 아니다.

국세청 내 ‘친한상률파’와 ‘반한상률파’의 갈등은 최근 ‘그림 로비 의혹’과 ‘경주 골프 사건’으로 정점에 이르며 결국, 한 전 청장이 사퇴하는 상황까지 나아갔다. 이 두 사건의 중심에는 ㅇ씨가 있다. 서울청 국장인 그는 미국으로 교육 파견이 내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림 로비 의혹’이 공개된 데는 ㅇ씨의 부인인 갤러리 대표 홍 아무개씨가 문제가 된 그림 <학동마을>이 전군표 전 국세청장의 부인이 맡긴 것이라고 소유자의 신원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 국세청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지난 연말 한 전 청장은 ㅇ씨에게 사표를 내라고 했다. 그가 나름대로 움직여 저항하자 교육을 보내려고 한 것으로 안다. ㅇ씨는 국내 교육을 희망했으나 한 전 청장이 미국으로 보내겠다고 하면서 ㅇ씨가 살아남기 위해 최후의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했다.

‘경주 골프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시사저널>은 이 내용을 지난 1월2일 처음 입수했다. 한 전 청장이 골프를 친 불과 1주일 뒤였다. 그가 몇 시에, 어디서, 누구와 골프를 쳤고 그 뒤 어디로 가 누구와 식사를 했는지, 술은 또 어디서 먹었고 잠은 어디서 잤는지 등 2008년 12월25~26일 한 전 청장의 모든 동선이 다 파악되었다. 내용을 듣고 기자가 깜짝 놀랄 정도로 상세했다. 취재 결과 그의 동선은 당일 경주·포항 지역 사정 기관에 이미 포착되었다. 10명 가까운 인원이 움직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정치권으로 흘러온 정보는 국세청 안으로 다시 흘러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며 완성되었다. 여러 언론사가 이런 내용을 알고 있었으나 당사자들이 일절 부인하는 상태에서 대구 현지 관계자들과 사정 기관 관계자들로부터 이 사실을 확인해 보도한 것은 <시사저널>이 유일했다.

실체가 드러난 국세청의 암투는 향후 국세청에 대대적인 인사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 고질적인 정치권 줄 대기와 투서 문화를 근절할 수 있는 강직하고 신망 있는 인사가 국세청을 이끌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권력 기관 간에 건강한 상호 견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정보 루트를 다양화하고 본원적인 의미의 청와대 민정 기능을 회복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세청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등과 함께 ‘4대 권력 기관’으로 불리지만 이 가운데 최고 힘 있는 기관이다. 국세청은 ‘징세권’을 앞세워 힘을 행사하는 ‘권력 기관’이 아니라 국민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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