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법안 ‘올인’ 한다
  • 김지훈 (서울신문 기자) ()
  • 승인 2009.01.2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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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입법 전쟁’ 앞둔 한나라당, 미디어법 처리에 총력

▲ 1월15일 ‘한나라당 경남도당 정책 설명회’에 참석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오른쪽 두 번째). ⓒ연합뉴스

2월 임시국회에 임하는 한나라당의 각오가 남다르다. 지난 연말부터 연초까지 치러진 ‘1차 입법 전쟁’에서 민주당에 판정패한 한나라당은 2월 임시국회를 단단히 벼르고 있다. 대국민 홍보전을 강화하며 당 지도부가 총출동해 정책 설명회를 갖고 설 민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이다. 1차 입법 전쟁에서 쟁점 법안의 주요 내용을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강경 일변도로 나간 것이 패인의 하나로 꼽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2월 임시국회에서 금산분리 완화와 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 법안 처리에 목을 매는 것은 향후 정치 일정상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회법상 짝수 달에 임시국회를 열 수 있기 때문에 3월에는 국회를 소집할 수 없다. 2월 임시국회에서 쟁점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자연히 4월에 임시국회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4월에는 국회의원 재·보선이 잡혀 있어 재·보선 정국에서 법안 처리를 시도하기에는 부담스럽다. 자칫 강행 처리를 시도하다 재·보선에서 참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설 이후 2월에 이명박 대통령이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알려진 것도 한나라당의 원내 전략을 어렵게 한다. 장관 인사청문회와 쟁점 법안이 얽혀 만만치 않은 과제를 떠안아야 한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2월 국회도 쉽지 않다. 지난 임시국회에서 민주당이 국회를 폭력으로 점거해 비난 여론이 일었다. 그래서 민주당이 다시 본회의장을 점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하기도 쉽지 않다”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원내 사령탑인 홍준표 원내대표는 낙관적이다. 홍원내대표는 1월16일 기자와 만나 “몸이 한결 가벼워져 2월 임시국회는 쉽다”라고 말했다. 지난 임시국회에서 여야 간 이견 없는 법안 56개와 1월 임시국회에서 66건의 법안을 처리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몸이 가벼워졌으니 핵심 쟁점 법안을 처리하는 데만 당력을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홍원내대표는 “2월에 처리해야 할 법안이 30여 개 된다. 하지만 그중에 진짜 쟁점 법안은 15개 정도이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핵심 법안은 방송법, 신문법, IPTV법, 디지털전환법 등 미디어 관련 여섯 개 법안이다.

방송법 개정안 조정해 강행 처리는 피할 듯

특히 방송법은 지상파 방송에 대기업과 메이저 신문들의 지분 참여를 허용하는 문제를 놓고 민주당과 극한 대치를 예고하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법안이다. 민주당은 “‘재벌 방송’과 ‘조·중·동 방송’의 탄생으로 여론을 독과점하려는 것이다”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는 것이다”라는 논리로 공세를 펴고 있다.

홍원내대표는 “어차피 방송법은 우리가 먹고 튀어야 할 법 아니냐”라는 농으로 응수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 임시국회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일당백의 전투력은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를 어렵게 했다. 또, 김형오 국회의장이 2월 임시국회에서 직권상정으로 도와줄지도 여전히 미지수이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방송법이 문제인데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이 방송법에 반대하면서 ‘재벌 방송’ ‘조·중·동 방송’ 하는데 지분 허용 부분에서 조정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부 재벌과 메이저 신문들의 지상파 장악이 염려되면 지분 참여 비율을 낮출 수도 있다는 말이다. 현행 방송법에서는 대기업과 신문의 지상파 방송 지분 참여를 금지했는데 여당이 추진 중인 방송법 개정안에는 각각 20%씩 참여할 수 있도록 조항을 손질했다.

벌써부터 한나라당 내에서는 “재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지분을 20%에서 10%로 낮출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는 의견이 나온다. 일단 대기업이 지분에 참여하는 길만 열어두면 이 문제는 향후에도 얼마든지 다시 논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자유선진당이 중재안으로 제시한 단계적 허용 방안과도 맥이 통한다. 한나라당은 지난 국회 파행 사태 때 나타난 국민의 비난 여론을 의식해 강행 처리하는 데 꽤 신경을 쓰는 눈치이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은 1차 입법 전쟁에서 홍보전에 실패한 것을 자인하며 쟁점 법안을 알리는 것에도 당력을 모으고 있다. 한나라당은 1월12일부터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정책설명회를 열었다. 22일 제주를 끝으로 신년하례회 겸 정책설명회를 가진다. 각 지역마다 최고위원들을 배정했다. 설 민심을 잡기 위한 홍보전이다.

한나라당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박희태 대표는 1월15일 경남 설명회에서 개혁 법안을 설명하면서 “MB 악법이 아니라 ‘MB 약법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서도 “‘은행마저 재벌 줄래?’ 상황이 아니라 ‘은행 몽땅 외국 줄래?’의 상황이다”라고 민주당의 논리를 반박했다. 미디어 관련법과 관련해서는 “재벌이 좋은 것이 아니고 돈이 좋아서 할 수 없이 ‘돈 좀 투자하십쇼’ 하는 것이다. 방송과 신문을 같이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세계적인 경영 흐름이다”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또, 구시대적 방송법 체제로는 기술 발전은 물론 미디어 소비 행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논리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한·미 FTA와 EU FTA 등으로 미디어 산업 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국내 미디어 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라도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논리를 전파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 경우 취업 유발 효과가 최대 2만1천4백여 명, 생산 유발 효과가 최대 2조9천4백19억원이라고 주장한다. 한나라당은 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법이 미디어 산업을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다시 태어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미디어법을 ‘이념의 영역’에서 ‘경제의 영역’으로 끌고 나오기 위한 홍보전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고립무원' 김형오의 선택은?

2월 임시국회에서 가장 고독한 사람은 김형오 국회의장이 될 듯하다. 김의장은 지난 임시국회 파행 과정에서 합리적인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며 여야의 대화와 타협을 촉구하는 등 나름의 역할을 한 면이 있지만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 민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하자,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에 머무르며 ‘모종의 결단’을 내릴 듯한 모습도 보였지만, 그는 정치권의 대화와 타협만을 촉구하며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친정인 한나라당에서도 “김영삼(YS) 전 대통령처럼 대선 출마를 선언할 줄 알았다”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여당에서는 그런 김의장을 두고 “배신자다” “친정을 버렸다”라는 험한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는 노골적으로 김의장에게 “직권상정하라”라고 압박했다. 청와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2월 임시국회 역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쟁점 법안을 두고 한 발짝도 물러설 조짐을 보이지 않자, 김의장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1월에 체면만 구긴 김의장에게 2월에 또다시 똑같은 지형이 펼쳐진 것이다.

지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듯 김의장은 지난 1월11일 “(2월에) 직권상정 카드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가 직권상정 카드를 꺼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의장의 한 측근은 “의장은 직권상정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퇴임 후 ‘뒷방 늙은이’로 주저 앉거나 정계 은퇴를 선언한 역대 국회의장과 달리 김의장에게는 정치적 미래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정가에는 김의장이 퇴임 후 한나라당 대표에 도전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다. 당 대표 이상을 넘볼 수 있다는 소문도 있다.

그는 올해 61세이다. 원로 취급을 받기에는 아직 젊다. 친정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지만 민주당 등 야당의 반대가 불 보듯 뻔하다. 여러 가능성을 보고 있는 김의장이 야당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강경 카드를 뽑아들 수 있을지 주목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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