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싸우다 ‘괴물’ 되다
  • 이재현 (yjh9208@korea.com)
  • 승인 2009.01.20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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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들을 ‘관찰’하다 광기에 사로잡힌 보호 관찰 요원

▲ 감독: 유위강 / 주연: 리차드 기어, 클레어 데인즈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이 어느 날 낯선 모습으로 다가온다.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았던 그들이 모니터 속에서, 스크린 위에서 반백의 연기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석양의 무법자> <더티 하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벌써 80을 바라보고 있다. <인디아나존스>의 해리슨 포드는 67세, 죽고 나면 자신의 전 재산 4천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성룡은 올해로 55세이다.

승마장에서 집에 가다 납치당한 소녀 <귀여운 여인>에서 냉혹한 기업 사냥꾼으로 등장해 거리의 여자로 분한 줄리아 로버츠와 사랑에 빠진 리차드 기어도 벌써 60이다. 핸섬 가이로 여성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가 이제는 더 이상 미남으로 배역을 맡기는 힘들 것 같다. 영화 <트랩>에서 리차드 기어는 <귀여운 여인>을 보았던 관객들을 다소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늙어도 너무 늙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연기는 익을 대로 익어서 오래된 배우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지금 미국에서는 2분에 한 명꼴로 여자가 강간을 당하고 50만명의 성범죄자가 등록되어 있으며 한 명의 보호관찰 요원이 1천명의 재범 용의자들을 ‘관찰’하고 있다. 에롤(리차드 기어 분)은 은퇴를 앞두고도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요원이다. 그는 너무 열심히 일을 해서 상사에게서도, 용의자들에게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트랩>은 17세 소녀가 승마장에서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납치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에롤은 그의 후임으로 오는 앨리슨(클레어 데인즈 분)을 데리고 돌아다니며 범인을 추적한다. 그의 지론은 성범죄자는 언젠가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에롤은 어린 소녀들이 강간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에 광적인 분노를 표시한다. 풋내기 보호관찰 요원 앨리슨은 그런 그가 무섭고 두렵다. 그는 관찰 대상자들을 찾아다니며 범죄의 냄새를 맡는다. 납치당한 소녀가 그가 관할하는 구역 안에 있음을 알아챈 에롤은, 천천히 그리고 집요하게 포위망을 좁혀나간다. 괴물만 상대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간다. 그는 자신이 괴물이 되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유위강 감독은 범죄 영화 <트랩>을 마치 공포 영화처럼 찍었다. 스크린은 제멋대로 흔들리고 효과음은 관객을 떨게 만든다. 토막 살인 사진도 여과 없이 보여주어 눈이 찡그려진다. 강간이 얼마나 치명적인 범죄인지 보여주는 영화. 1월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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