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돌아오자 ‘환상의 커플’ 뜨나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9.02.0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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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한 최양락, 강호동과 호흡 척척…막강 콤비 탄생 가능성

▲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컴백한 최양락(오른쪽)은 강호동(왼쪽)과 공동 MC를 맡아 맛깔스러운 진행 솜씨를 선보였다. ⓒ뉴시스

그가 돌아왔다. 과거의 ‘황제’ 최양락이다. 줌마테이너가 열어 놓은 문으로 과거의 용사들이 귀환했다. 최양락, 이봉원, 김정렬 등이 <야심만만2-예능선수촌>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대중은 열렬히 환영했다. 특히 최양락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최양락은 그 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잇따라 출연하며 한 주 동안 가장 주목받은 연예인이 되었다. 최양락의 딸이 눈물을 흘렸다고 할 정도로 의미 있는 귀환이었다.

오랫동안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이영자가 예능 초대 손님으로 등장했을 때도 인터넷상에서는 신드롬에 가까운 반응이 있었다. 이영자는 출연하는 프로그램마다 좌중을 압도하며 폭소탄을 난사했었다. 그러나 고정 MC가 되자 반응은 이내 시들해졌다.

최양락이 초대 손님으로 출연했을 때 웃기는 능력은 모두가 인정했다. 그러나 고정 MC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초대 손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을 이용해 준비해온 개그를 펼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예능 MC, 특히 전쟁터와도 같은 집단 MC 체제에서 준비된 개그는 무용지물이다. 초대 손님으로 웃기는 것과 고정 MC로 살아남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다. 초대 손님일 때는 폭소탄을 선사하면서 고정 MC만 되면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는 지상렬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최양락은 초대 손님으로 폭소탄을 터뜨린 후 바로 <야심만만2-예능선수촌>의 고정 MC로 발탁되었다. 최양락에게 간 자리는 입담으로 유명한 김제동이 적응하지 못하고 하차한 자리이다. 최양락은 강호동과 최신 블루칩인 윤종신 사이에서 존재감을 각인시키지 못하면 제2의 김제동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고정 MC로 성공해야 최양락은 진정으로 ‘귀환’했다고 할 수 있었다. ‘황제’다운 귀환 말이다. 그런 연유로 최양락의 고정 MC로서의 첫 방송은 많은 이들의 관심사였다. 과연 나이 많고 공백 기간도 길었던 그가 최신 트렌드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한다 하는 젊은 개그맨이나 예능 스타들을 앉혀놓아도 한 시간 동안 변변한 말 한마디 못하는 것이 작금의 예능 분위기이다. 잘 나가는 ‘건도’ 유세윤도 건방진 독설이라는 정형화된 캐릭터에서 빚어지는 멘트 이외에는 자연스러운 토크를 하지 못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아저씨’ 최양락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최양락, ‘소심 형님’으로 연착륙 성공

이보다 더 성공할 수는 없었다. 최양락의 MC 컴백 무대는 ‘대박’이었다. 초대 손님으로 나와 웃겼던 사람이 MC로도 똑같이 웃기는 보기 드문 광경을 선사했다. 공형진이나 김수로처럼 초대손님 블루칩도 MC 자리에만 앉으면 얼어버리기 일쑤이다. 최양락도 얼기는 했다. 그런데 웃겼다.

최양락은 캐릭터를 잘 잡았다. 그의 캐릭터는 ‘소심 형님’이다. 뭘 해도 자신 없어하고, 주눅 들고, 눈치 보는 캐릭터이다. 강력하게 나대는 캐릭터가 아닌 것이다. 이영자, 김수로, 공형진, 지상렬 등은 모두 강한 캐릭터이다. 강한 캐릭터는 매 순간 순간 웃겨야 한다. 못 웃기면 당사자나 주변 사람 모두 뻘쭘해진다. 소심한 형님은 매번 웃기지 않아도 된다. 실수해도 된다. 주눅 들어 얼어도 된다. 원래 그런 캐릭터이니까.

황제의 귀환으로는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김종국은 진짜 ‘황제의 귀환’처럼 <패밀리가 떴다>에 등장했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요즘에는 순박하고 잘 당하는 청년 캐릭터로 전환했지만 내상이 깊다. 최양락의 소심 형님 캐릭터는, 마치 <무한도전>에서 전진의 ‘어리바리’ 캐릭터처럼 자연스러운 프로그램 진입을 가능케 했다. 유재석도 강호동도 잘 당하는 캐릭터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이영자는 잘 당하지 않는 캐릭터이다. 최양락은 당하면서 사는 길로 갔다.

최양락의 목소리는 집단 MC 체제에 최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오늘의 트렌드를 위한 맞춤 목소리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아무리 여러 사람과 함께 있어도 최양락의 목소리는 튄다. 그런데 그것이 이영자처럼 강력한 성량과 기세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러면 시청자는 거북함을 느낀다. 최양락의 목소리는 강하거나 위압적이지 않으면서 선명하게 꽂힌다. 이것은 축복이다.

최양락에게는 결정적인 무기가 있다. 아무리 소심 형님이고 목소리가 좋아도 못 웃기면 그만이다. 최양락에게는 선천적이며 결정적인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바로 ‘깐족거림’이다. 최양락의 깐족거림은 타고난 것이다. 너무나 자연스럽다.

최양락은 소심하게 눈치 보다가 실수해서 허둥대면서도 깐족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서 김구라의 장기인 ‘실명 개그’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소심한 황제 형님이 후배들의 눈치를 보면서 순간순간 터뜨리는 깐족거림은 엄청난 폭소를 유발했다. 거기에 타고난 목소리가 힘을 보탠 것이다.

강호동이 최양락을 살렸다. 강호동은 그 체구와 목소리 자체가 최양락을 살리기 위해 타고난 사람 같다. 후배인 강호동이 엄청난 덩치와 호탕한 목소리로 좌중을 휘어잡을 때, 바로 옆에 소심하게 쪼그려 앉은 과거의 황제 대선배가 허둥대며 깐족거리는 모습은 환상의 조화였다. 이 둘은 마치 콤비를 하기 위해 과거부터 준비해온 것처럼 잘 맞았다.

강호동이 다시 보이는 이유

강호동의 역할은 단지 선천적인 몸매와 목소리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최양락은 허둥대다가 중간에 방송 사고를 냈다. 퀴즈를 내는 역할인데 정답을 말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맥락과 아무런 상관없이 밑도 끝도 없는 실수였다. 스튜디오에는 일순간 정적이 돌았다. 윤종신은 최양락에게 실수했다고 알려주었다. 보통의 경우에는 여기서 한 번 웃고 핀잔 주고 끝냈을 것이다.

강호동의 ‘오버 액션’이 이것을 핵폭탄으로 만들어버렸다. 강호동은 정말 노련하게 최양락을 쥐었다폈다 하며 그를 궁지로 몰았다. 마지막에는 언성을 높이며 ‘지적질’을 해댔다. 가뜩이나 웅크렸던 ‘소심 형님’ 최양락은 어쩔 줄 모르며 당황스러워하더니 급기야는 같이 흥분하며 강호동에게 항변했다.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은 강호동이 최양락을 너무 몰아붙였다고 비난했다. 아니다. 강호동이 최양락의 실수를 살린 것이다.

강호동은 최양락이 치면 치는 만큼 반응하는 순발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실수 후에 일단 ‘간’을 보고 감이 오자 ‘연예대상’ MC답게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강호동이 몰아치자 최양락은 ‘꽁트’의 대가답게 상황극을 펼쳤다.

최양락의 실수로 인해 빚어진 이 상황극은 놀랄 만큼 웃겼다. 그리고 강호동의 캐릭터와 최양락의 캐릭터가 선명하게 대비되며 이들의 콤비로서의 가능성을 각인시켰다. 강호동의 뒷받침 덕분에 최양락의 소심 형님 캐릭터는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막판에는 최양락이 단지 영어를 번역하기만 해도 웃기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강호동이 다시 보였다.

순발력과 노련함을 공유하되 대비되는 캐릭터를 가진 이 두 사람. 체구와 목소리, 개그 스타일까지 모든 것이 대비되는 가운데 선보인 놀라운 호흡. 막강 콤비의 가능성이 느껴진다. 강호동은 유재석-박명수 콤비에 버금가는 파트너를 아직 얻지 못했었다. 최양락의 등장이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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