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도 고단한 ‘군자의 비행’
  • 김연수 (생태사진가) ()
  • 승인 2009.02.0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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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우리나라에서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는 산수화나 연초 연하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아마도 예로부터 학수천년(鶴壽千年)의 장수를 상징하는 두루미일 것이다. 두루미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북아의 상징적인 새이다. 세계 조류학자와 야생동물 애호가들이 한국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철원평야의 두루미이다. 세계적으로는 북미 흰두루미 다음으로 희귀한 두루미류의 한 종이다. 드넓은 설원에서 학춤을 추며 3~4마리의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두루미는 평화의 상징이요, 화목한 가정의 상징이다. 옛 선비들이 그린 산수화에 자주 등장하며, 성큼성큼 걷는 자태가 양반들이 뒷짐 지고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닮았다. 한 번 인연을 맺은 짝은 저버리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같이하는 절개와 고고함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길이 남은 것 같다.

현재 두루미는 지구상에 5천여 마리 정도가 살아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과 러시아의 아무르강 유역, 일본의 북해도 동북 연안에 분포한다. 겨울철이 되면 우리나라와 중국 동북지방에서 월동한다. 지구를 통틀어서 오직 극동아시아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새이다.

우리나라의 파주, 강화 등 서부 휴전선 인근 지역과 민통선 이북 철원평야에서는 겨울철에 최대 3백여 마리까지 관찰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두루미 개체군의 분포상 특기할 만한 것은, 이 종이 휴전선 일대와 민통선 북방에서만 겨울을 난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해서는 한반도의 서남 해안과 경남 지역 일원에서도 드물게 관찰·채집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에는 한반도 중부 이남에서 관찰된 기록이 없다. 두루미는 사람의 간섭을 싫어하며, 서식지 변화에 특히 민감하기 때문에 전 국토가 도시화해가는 우리나라에서는 설 땅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김연수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로 알려졌지만, 자연 상태에서 건강한 두루미의 수명은 20~30년이다. 평생 일부일처를 지키면서 해마다 알을 두 개 낳는다. 새끼 한두 마리를 키우는 데도 어미의 손길이 많이 간다. 새끼가 자립하는 이듬해까지 어미와 새끼로 이루어진 가족이 함께 이동하며, 좀더 큰 무리와 함께 겨울을 지낸다. 두루미 개체군이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는 것은 이동 중에 갖은 사고를 당하거나 어느 정도 자란 새끼들이 월동지에서 겨울을 넘기다가 곧잘 죽기 때문이다. 

두루미는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에서 멸종 위기에 놓인 국제보호조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 2백2호,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해놓고 있다. 한반도 곳곳에 살던 이들이 이제는 겨울철에 인적 드문 철원, 연천, 파주 등 접경 지역의 농경지에서 조그맣게 무리 지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고구려 벽화부터 조선시대 관복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문화 속에 깊이 스며들었던 두루미들이 접경 지역의 개발 논리에 밀려 또다시 설 땅을 빼앗기지나 않을까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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