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올리는 ‘물 건너 친환경 기술’ 구경만 하다가 큰코 다칠라
  • 도쿄·임수택 편집위원 ()
  • 승인 2009.02.10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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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다로 일본 총리, 오바마식 ‘그린 뉴딜’ 도입 지시…한국도 엔화 강세 기회 살릴 필요

▲ 아소 정부는 친환경 시장 규모를 키워 80만명의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잡고 있다. 왼쪽은 혼다자동차가 선보인 하이브리드 카. ⓒAP연합

아소 다로 일본 총리는 최근 사이또 환경장관에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지구 온난화 및 경기 활성화를 위한 ‘그린 뉴딜’ 정책의 일본판을 구상하라고 지시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신에너지를 개발하는 데 10년간 1천5백억 달러를 투자해서 5백만명의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참고하라는 것이었다. 연비가 낮은 차량을 보급하고 배기가스 규제도 강화하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두 차례의 석유 위기를 거치는 동안 환경친화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진작부터 환경과 신재생 에너지 분야를 육성해 산업 구조를 고도화해왔다. 미국발 금융 위기는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수출 대국인 일본은 금융 위기와 엔화 초강세로 수출 전선에 비상이 걸린 상태이다. GM을 누르고 세계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던 도요타 자동차는 판매 부진으로 1천5백억 엔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사장을 바꾸는 극약 처방을 했고 종신고용 제도를 고수하던 기업 문화도 바꾸고 있다. 한편, 일본을 대표하던 소니는 최고경영자를 교체하고 인건비를 절감하는 혁신을 통해 회생하는 기미가 보이는 듯했으나 금융  위기와 액정TV 사업이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최근 내세울 만한 뚜렷한 브랜드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소니가 예상보다 긴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파나소닉 사는 국내외 27개의 생산 거점을 폐쇄하고 정규·비정규 사원 1만5천명을 해고하기로 했다.

이처럼 대기업을 비롯한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는 고용 문제를 유발시키고 있다. 쏟아져나오는 실직자가 사회 문제화하고 있다. 게다가 단카이 세대(일본의 베이비붐 세대)가 정년 퇴직하면서 발생되는 숙련된 노동력의 부족 현상과 소자녀·고령화하는 인구 구조는 노동 시장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고용 문제와 경기 침체를 탈출하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로 환경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아소 정부는 친환경 기술 및 제품을 개발하고 보급하기 위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시장 규모를 향후 5년간 현재 70조 엔에서 100조 엔 이상으로 확대해서 80만명의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에코 가전, 전기자동차와 같은 에코자동차의 개발·보급,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 등의 신에너지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일본은 이렇게 노력한 결과 환경과 관련한 분야에서 고도의 기술과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땅 밑이나 해양에 저장·격리하는 기술(CCS)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당장은 건설비가 많이 든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운영비가 싸다는 점이 장점이다. 유럽연합(EU)에서는 CCS에 의해 저장된 이산화탄소를 2013년 이후에 매각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어서 관련 기술을 가지고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큰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 에코 제품들, 가격 비싸지 않아 인기

▲ 일본 홋카이도 와카나이 현에 설치된 태양광 판넬 설비. ⓒAP연합

일본은 연료전지나 전기 하이브리드 자동차 기술에서도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일본 유센과 신닛세키가 공동으로 태양광 판넬을 탑재한 자동차 운반선(6만1천t)을 개발했다. 태양광 판넬 3백28개가 탑재되어 6천대의 자동차를 운반할 수 있다. 이 배는 추진용 동력의 일부를 태양광으로 충당하는 세계 최초의 선박이다.

또, 일본항공은 식물 원료로 만든 바이오연료를 활용해 실험 비행을 하기도 했다. 후쿠시마의 일본 대학 공학부 부지에는 재생 가능한 자연 에너지를 이용해서 생활할 수 있는 실험 시설인 ‘로하스의 집’이 지난 1월30일 완성되었다. 소형 풍차, 태양열 발전기, 지열을 이용한 펌프, 비를 이용한 장치 등 자연 에너지만으로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집이다.

환경 비즈니스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 기업의 경우 일반·산업용 폐기물을 소각하면서 발생하는 다이옥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신기술을 개발·판매하고 있다. 이 기업은 저온 열분해 방식으로 폐기물을 처리해 소각 과정에서 다이옥신이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폐기 처리된 물질을 탄소 제품 원료, 건강 건재, 에너지원 등으로 재활용하고 있다.

일본에서 환경 및 신재생 에너지 시장이 확대되어가는 것은 한국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차세대 에너지로 부각되는 LED 전구와 형광등 그리고 라이트 패널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일본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화 강세 현상과 함께 좋은 기술, 일본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제작비가 들어가는 한국의 에코 제품들은 일본 시장에서 높은 가격 경쟁력을 지닌다. LED 제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메이쿄 주식회사의 이케다 씨는 “한국 제품은 품질도 좋고 가격 경쟁력이 아주 좋다. 지난해 12월에는 LED 시장을 조사하기 위해 서울에도 갔다 왔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천연세제도 가격 경쟁력이 높아 일본 시장에서 약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의 경제 위기, 엔화 강세 상황은 특히 환경이나 신재생 에너지와 관련된 기술·제품 분야에서 한국이 일본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하지만 환경 정책이나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데 소홀할 경우 한국의 대일본 무역 적자 폭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 50년간 일본과의 무역에서 한국이 일방적으로 적자를 면치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일본의 부품 소재 등을 수입해 쓸 수밖에 없는 기술력의 차이 때문이다. 일본의 환경 산업은 70조 엔에 달하는 거대 시장이다. 엔화가 강세인 지금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금융 위기의 폭발력도 크지만 환경 위기는 그보다 몇십 배, 몇백 배 이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늘 위기는 기회를 동반한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면서 IT(정보기술) 산업을 선도해왔듯이 경제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환경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한다면 또다시 산업 구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

이명박 정부도 17가지 분야의 신성장 동력을 선정했는데 이 가운데 신재생 에너지, 탄소 절감 에너지, 친환경적 에너지 건축 기술 등 녹색 기술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환경 산업은 경기 회복이나 고용 창출 효과는 물론 지구 온난화 등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진작부터 ‘환경’에 눈뜬 일본을 면밀히 조사·분석하고 배울 것은 배우면서 기술력을 쌓아 경쟁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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