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돈 흐름’이 수상하다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9.02.10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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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 송금 크게 줄고 외국 자본 썰물처럼 빠져나가 … 외환보유고도 2004년 이후 최저

▲ 상하이의 증권거래소에서 한 투자자가 주가를 알리는 전광판을 보고 있다. ⓒAP연합

베이징의 한 부동산 중계회사는 최근 미국의 경매 부동산을 구입하기 위해 40인 구매단을 모집했다. 신청자가 쇄도하는 바람에 4백명은 되돌아갔다. 상하이에서는 돈 많은 중국 회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미국 회사들의 채권을 사느라 법석이다. 이렇듯 해외 구매 러시가 일자 중국인들이 외국에서 번 돈은 거의 외국에 투자되고 본국으로 송금되는 액수가 급격히 줄었다. 홍콩에서는 본토의 부자들이 대거 몰려와서 보석과 다이아몬드 사재기에 나섰다. 5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와 6캐럿짜리 귀고리를 싹쓸이했다. 보석상 주인은 중국 경제 전망이 어두워지자 사람들이 귀금속 투자로 눈을 돌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은 해외에서 돈을 더 많이 쓰고 있고, 중국 시장에 투자된 외국 자본은 밀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 5년간 국제 금융시장에서 일어난 최대 이변이다. 그동안 국제 무역과 금융계에서 일종의 균형자 역할을 해온 중국은 충격에 빠졌다. 75년 만에 최악의 금융위기가 미국과 유럽을 강타했을 때 상대적으로 느긋했던 터라 더욱 경악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통화 위안화 절상을 막기 위해 본토로 몰려오는 달러를 계속 사들였다. 그 결과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일본보다, 사우디와 러시아의 보유고를 합친 것보다 많은 2조 달러에 육박했다. 또한, 위안화를 계속 찍어 달러를 사들이고 그렇게 모은 달러의 3분의 2는 미국의 유가 증권, 특히 재무부 채권에 투자했다.

지난해 12월 수출이 감소하기는 했으나 무역 흑자로 인한 달러 유입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옛날의 영화는 사라졌다. 개인 자본의 급격한 유출과 외국 투자 감소로 달러의 유입과  유출은 거의 균형점에 도달했다. 중국의 분기별 외환보유고는 계속 줄어 4분기의 보유고는 2004년 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외환보유고가 일본보다 적었던 때로 되돌아간 셈이다. 홍콩의 펀드 매니저는 중국 경제가 기울고 있는데 누가 본국에 돈을 두겠느냐고 반문했다.

본토 부자들, 홍콩 보석 싹쓸이 하기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해외 채권 매입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으나 이 발언 자체가 구매 능력의 퇴조를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런던의 중화은행 지점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이 해외 채권 매입을 지속하느냐, 또한 얼마를 매입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외화 가치의 안정성이 보장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 말에는 경우에 따라 채권 매입이 중지될 수 있다는 여운이 담겨 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미국 대표를 향해 자본주의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일갈하면서 중국 경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친 그로서는 뼈아픈 고백이기도 하다.

경제학자들의 최대 관심은 왜 중국 시장에서 돈이 빠지며, 이 추세가 얼마나 갈 것이냐 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중국 경제의 붕괴 조짐이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인출하는 자본 유출 현상이라면 앞으로 중국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중국에서는 최근 2천만명의 근로자가 직장을 잃고 빈털터리로 고향에 돌아갔다. 자본 유출과 맞물리는 우울한 이야기이다. 중국 아닌 다른 곳에 투자를 하기로 한 개인들의 결정을 애써 모른 척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급속도로 자본이 빠져나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홍콩 보석상들의 움직임은 본토의 경제 동향을 측정하는 바로미터이다. 홍콩에서는 본토와는 달리 사치품에 높은 소비세를 부과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 이동의 신호는 보석상의 매출에 즉각 반영된다. 본토의 졸부들이 홍콩 보석상점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부터이다. 매출은 1년 전보다 50% 증가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중국 경제의 미래를 점칠 수는 없다. 중국인들은 보석 따위를 사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또 다른 요인은 글로벌 금융 위기의 틈을 타 헐값에 보석을 사려는 심리에도 있다. 미국 경매 부동산을 사기 위해 10일간의 미국 여행을 기획한 베이징의 온라인 부동산 중개사는 2월24일부터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라스베이거스, 뉴욕을 방문할 예정인데  팔 물건보다 살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미국 부동산값이 많이 하락한 데다 장기적으로 미국은 매력적 투자지라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게다가 지난해 봄 베이징, 상하이, 홍콩 등지에서 일었던 부동산 매입 붐에 거품이 빠지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경제학자들은 중국의 자본 유출에 ‘오바마 효과’가 작용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오바마가 취임해 전세계가 기대감에 들떠 있을 때 중국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중국 지도층은 8천억 달러나 되는 오바마의 구제금융 법안 속에 보호 무역 조항이 삽입된 것을 보고 향후 중·미 관계에서 험로를 예측했다. 이런 판단은 오바마 행정부를 은근히 비판한 중국 언론의 논조에 나타났다.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한다는 오바마의 원칙이 언젠가는 중국의 원칙과 충돌한다는 것이 중국 지도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중국 개인들의 생각은 이와 다르다. 경제 회복에 ‘올인’하는 오바마의 몸부림에 중국보다는 미국 경제가 먼저 소생하리라 기대한다. 이것이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을 부추기고 있다.

자본 유출에 ‘오바마 효과’ 작용한 측면 있어

▲ 원자바오 중국 총리(위)가 다보스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

또한,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미국이 유일 강대국으로서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고 특히 민주주의를 중국으로 확산시킬 가능성을 우려한다. 지난 20년간 연 평균 10%대의 경제 성장을 지속해온 중국은 성장률이 8% 이하로 내려갈 때 폭동이 일어난다는 전망도 나왔다. 원자바오 총리는 8% 성장을 장담했으나 국제 기관들은 5~6%, 심지어 4% 성장까지 낮춰 예측하고 있다.

중국은 사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에 미국이 함몰된 상황을 이용해 상당한 어부지리를 챙겼다. 그러나 오바마의 등장으로 이런 기회는 사라졌다. 오바마의 실용주의 외교는 중국에는 도전으로 다가온다. 오바마의 정책이 케네디나 레이건 시대처럼 강력한 미국을 재건한다면 그만큼 지구촌에서 중국의 몫은 줄어든다. 오바마는 취임사에서도 권위주의적 ‘이즘(isms)’을 ‘역사의 잘못된 흐름’으로 규정하고 이에 맞서 자유를 수호할 것임을 천명했다. 중국은 미국인들에게 매력적인 대통령보다 부시처럼 실망스러운 대통령을 바라고 있다. 이런 속내를  먼저 눈치 챈 자본들이 속속 중국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다보스 포럼은 경제를 소생시킬 아무런 방도도 찾지 못한 채 말의 잔치로 끝났다. 러시아의 푸틴 총리가 원자바오와 함께 서방에 자본주의 강의를 한 것이 주의를 끈 유일한 뉴스였다. 이 포럼에 참가한 어느 경제학자는 세계 경제가 어디로 갈지는 신(神)만이 알고 있다는 자조 섞인 농담까지 했다. 지금의 경제난이 언젠가는 극복될 것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 중국의 자본 유출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세계 조류(潮流)의 중심이 미국에서 다른 곳, 어쩌면 중국으로 이동할지 모른다는 분석이 유력했다. 그러나 이 전망은 단견으로 판명났다. 뉴욕타임스는 금융 위기의 초점이 돌연 중국으로 옮겨갔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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