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합의 없는 대결 시대’로 가는가
  •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02.10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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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사일 발사 움직임 등 위기 조성 수위 높여…맞대결 피하고 미래 대비한 전략 세워야

▲ 북한의 ‘대남 전면 대결 태세’ 선언으로 긴장이 감도는 연평도 해안 초소. ⓒ연합뉴스

남과 북이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면서 분단 정권을 수립한 이후 남북 관계는 ‘대화 없는 대결 시대’(1970년대 초까지), ‘대화 있는 대결 시대’(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화해·협력 시대’(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로 구분할 수 있다. 남북 관계의 발전 추세로 보면 이제 화해·협력을 제도화하고 통일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남북은 관계 설정에 실패하고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 1년여 동안 남과 북이 관계 설정을 하지 못하고 갈등을 지속하는 것은 이전 정부와 차별화된 이명박 정부의 대북관이 한 원인이다. ‘좌파 정부 10년의 대북 퍼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지도부의 본질적 변화가 없다는 것이 이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평가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 ‘원죄론’에 입각해서 북한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남북 관계는 없다는 식으로 대북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벼랑 끝 전술의 ‘말로 하는 위기 조성’ 단계로 관측

남북 갈등의 중심에는 무엇보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계승 문제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을 강조하면서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이행 의지를 밝히지 않고, 핵시설에 대한 ‘선제 타격’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이전 정부와는 현격히 달라진 대북관을 보였다. 북한은 이에 반발하면서 ‘이명박 역도’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고 퍼부었다. 두 선언에 대해 북한은 전면 이행하겠다는 것을 선언하고 협의하자는 입장인 데 비해 남측은 이행을 위한 협의를 하자는 입장이다.

북한은 지난해 12월1일 군사분계선 통행 제한 등 남북 관계를 부분적으로 차단하는 조치를 취한 데 이어 지난 1월17일 인민군 총참모부의 ‘전면 대결 태세 선언’과 1월3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한 남북 합의 전면 무효화 정식 선언’ 등을 잇달아 내놓음으로써 한반도의 위기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전통적인 벼랑 끝 전술에서 볼 때 지금까지는 주로 ‘말로 하는 위기 조성’ 단계로 볼 수 있다.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으면 ‘행동으로 하는 위기 조성’으로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시험 발사 움직임은 미국·일본·한국 등을 동시에 겨냥한 ‘행동으로 하는’ 위기 조성 카드로 볼 수 있다. 북·미 핵협상을 앞두고 내놓을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내밀고 담판해보자는 의도로 보인다.

북측이 기존 남북 합의의 전면 무효화를 선언함으로써 남북 관계는 화해·협력 시대에서 냉전 시대로 되돌아갔다. 북측이 6·15와 10·4 선언은 남측의 이명박 정부가 전면 이행을 선언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문화되었다고 간주하고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에 관한 합의를 파기함으로써 남북 관계는 ‘합의 없는 대결 시대’로 되돌아갔다.

북한이 위기 수위를 높이는 까닭은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을 전환시키기 위해 압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새 통일부장관의 임명을 지켜본 북한은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서 “이제 북남 관계는 더 이상 수습할 방법도, 바로잡을 희망도 없게 되었다. 전쟁 접경까지 왔다”라고 위협하고 나섰다.

조평통 성명에서 북측이 주도하거나 북측에게 유리한 합의라고 할 수 있는 7·4 공동성명과 6·15와 10·4 선언에 대한 언급 없이, 남측이 주도적으로 만든 기본합의서의 파기를 들고 나온 것은 맞불 성격이 강하다. 남측이 6·15와 10·4 선언에 대한 전면 이행 의지를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남측이 강조한 기본합의서의 파기를 선언한 것이다. 북방한계선(NLL) 문제는 10·4 선언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합의를 통해서 갈등을 봉합해두었던 것이다. 남측이 10·4 선언 이행을 확약하지 않자 기본합의서의 불가침 합의를 파기해 서해 NLL 인근을 분쟁 수역화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북측의 위기 조성에 남측은 의연하게 대처한다고 하면서 ‘무시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북측이 도발하면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도 정권 출범 초기에는 대화가 중단되었다고 하면서 기다리면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흔히들 남측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의례적으로 길들이기 또는 기싸움 차원에서 집권 초기 대화가 중단되는 예가 많았다고 한다. 정부 당국은 지금의 갈등이 남북 관계 조정기에 있을 수 있는 불가피한 정체나 교착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지금은 ‘잘 진행되던’ 남북 관계가 부분 차단되고 남북 합의 전면 파기 선언이 나오는 등 상황이 악화되고 있어 문제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러다가 남북 간에 국지적인 충돌이 벌어지지 않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남과 북이 서해에서 서로 다른 경계선을 고집할 경우 우발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서해의 긴장이 고조되고 어로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적 도발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북·미 적대 관계를 해소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기 때문에 도발을 감행할 경우 ‘불량 국가’ 이미지를 강화하고 북·미 관계 진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또 남북 간 군사력 격차가 커 북측이 도발한다고 해도 이기기 어렵다. 패전은 지도자의 리더십 위기를 불러오기 때문에 지는 전쟁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북한이 의도적으로 도발할 경우 국제적인 비난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남한의 대북 강경 정책이 옳았다고 정당화시키는 의미가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 남측 지역을 주시하며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북한 병사. ⓒ연합뉴스

‘무시 정책’보다 위기 관리 차원 ‘포용’ 필요

이러한 약점을 간파했는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조금도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늦더라도 제대로 시작하겠다’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제대로 시작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과거’를 부정하고 제대로 시작하기는 어렵다.

남북 합의가 사문화된 지금의 대결 시대에 재검토해보아야 할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선핵폐기론과 선변화론의 적실성 문제이다. 핵문제는 6자회담 틀에서 동시 행동 원칙과 북·미 직접 협상에서 포괄적 접근을 통해서 단계별 일괄 타결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북한 지도부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선변화론은 김정일 정권의 태생적 한계 등을 고려할 때 쉽지 않다. 그래서 과거 정권들은 접촉·제공·대화라는 수단을 통해서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집중했던 것이다. 외부 압력을 통한 변화는 대안이 없을 때 가능하다. 북한은 남측에서 압력을 가하면 중국 등에서 출로를 찾는다. 

북한은 선변화론을 급변 사태론과 동일시하면서 선제 타격 주장 등을 문제 삼고 있다. 남북 대결의 격화는 북한의 핵보유 동기를 강화시킨다. 접촉·제공·대화의 중단은 북한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하면서 시민사회의 변화를 지연시킬 뿐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 변수’를 고려할 때 지금 시점에서 김정일 정권과 맞대결하기보다는 위기 관리 차원의 포용을 지속하면서 김정일 이후를 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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