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넘친 ‘살인마’의 재산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2.10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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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서남부 연쇄 살인 피의자 강호순이 현장 검증에서 범행을 재연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강호순, 상가·예금·전세보증금 등 수억 원대 보유…피해자 유족들, 가압류 신청 10년 동안 화재 등으로 타낸 보험금만 7억원대…보험사들, 고의성 입증 나서

연쇄 살인범 강호순(38)이 경찰 조사를 받고 검찰로 넘어갔다. 경찰은 강씨의 여죄를 캐내기 위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지만 결국 실패했다. 검찰 수사도 진척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제 남은 것은 강씨가 수령한 보험금이 자작극에 의한 것이냐 아니냐를 밝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2005년 10월에 발생한 장모 집 화재로 네 번째 부인과 장모가 사망한 사건이 최대 관건이다. 강씨는 이 사고로 4억8천만원이라는 거액의 보험금을 챙겼다. 하지만 강씨는 여전히 자작극 혐의에 대해서 부인하고 있다. 만약 자작극이 밝혀지면 받은 보험금 전액을 다시 토해내야 한다. 이것이 고의성 여부를 밝혀내는 최대의 장벽이기도 하다.

강호순이 타낸 보험금이 ‘사기’일 가능성에 대해 심증은 99%에 가깝다. 강씨 집에서 <교통사고의 법률지식>이라는 제목의 책이 발견된 것과 강씨 친구가 MBC와의 인터뷰에서 “강호순이 형편이 안 좋아도 보험 사기 한 방이면 다 끝난다고 했다”라고 말한 것을 종합하면 고의성이 다분하다. 하지만 심증과 정황에 비해 범행을 입증할 만한 물증은 1%도 채 안 된다. 그렇다고 심증만 가지고 강씨를 ‘보험 사기범’으로 몰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강씨는 지난 10년 동안 30여 개 보험에 가입한 뒤 7억2천만원을 타냈다. 그가 보험금을 타기 시작한 것은 1998년이다. 당시 자신 소유의 덤프 트럭이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로 3천6백20만원의 보험금을 탔다. 1999년 5월에는 사고가 난 덤프 트럭에 화재가 나서 1천6백13만원을 받았다. 두 달 뒤인 7월에는 불이 난 트럭이 도난당했다며 약 5천7백90만원의 보험금을 챙겼다. 이렇게 덤프 트럭 한 대로 강씨가 받은 보험금은 약 1억2천여 만원에 달한다.

강씨의 보험금 수령은 계속 이어진다. 지난 2000년에는 13개 보험사 17개 보험 상품에 무더기로 가입했는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는 속담처럼 이상하게 사고가 잇따랐다. 안산시 팔곡동에서 운영하던 순대국 집에 화재가 발생해 3천6백57만원, 같은 해 10월에는 티코 승용차 전복 사고로 5천100만원을 받아냈다.
5년 뒤인 2005년 10월에는 문제의 ‘장모 집 화재 사고’가 일어난다. 이 사고로 네 번째 부인과 장모가 사망했고, 보험금 4억8천만원은 고스란히 강씨가 수령했다. 강씨에게 일어난 불행이 결국, 그를 ‘보험금 부자’로 만드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한 셈이다.

강씨는 이 보험금으로 상가 건물을 매입했고, 축사를 임대했으며, 빌라 전세금을 마련하는 종자돈으로 사용했다. 또한, 부녀자들을 살해하는 미끼가 된 에쿠스(어머니 명의)와 무쏘 그리고 리베라 화물차 등을 구입했다. 보험금이 강씨의 ‘범행 자금’으로까지 사용된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보험금 지급의 허술함이다. 강호순은 지금까지 화재 등의 이유로 수차례에 걸쳐 보험금을 타냈다. 그런데도 보험사들은 ‘자작극 가능성’을 배제한 채 하나같이 거액의 보험금을 순순히 내주었다. 만약 강호순이 고의로 불을 지르고 보험금을 타낸 것이라면 제2, 제3의 보험 사기에 완전히 노출된 것이나 다름없다.

▲ 강호순은 상가 건물과 에쿠스 등 세 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축사(맨 오른쪽)를 빌려 쓴 것으로 밝혀졌다. 오른쪽은 강호순의 범행 재연을 위해 경찰이 마련한 동종의 자동차. ⓒ시사저널 임영무

보험사들, 물증 없어 거액 순순히 지급…보험금이 ‘범행 자금’ 된 셈

이에 대해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보험회사의 시스템 미흡과 화재 사건의 특수성을 이유로 들고 있다. 강씨가 여러 회사에서 보험금을 타냈지만 회사 간에 고객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이전의 수령 내역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생명보험사끼리는 지난 2007년부터 시스템이 만들어져 고객 정보를 교환하고 있지만, 손해보험은 아직까지 나 홀로 시스템에 머무르고 있다.

또 하나는 화재 사고가 나면 그 원인을 밝히는 것이 급선무이다. 하지만 현장 훼손 등의 이유로 고의성을 입증하는 데 엄연한 한계가 있다. 김성 손해보험협회 보험조사팀장은 “당시 경찰 수사에서 무혐의 처리된 데다 현장이 보존되어 있지 않아 고의성 여부를 밝혀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강호순의 재산은 9억원대에 이른다. 피살자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법무법인 온누리에 따르면 강씨의 재산은 은행 예금과 보증금, 부동산 등을 합쳐 9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강씨의 재산 분포를 보면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시가 5억원 상당의 상가 점포 2개를 소유하고 있고, 여기에는  채권최고액 1억5천만원의 은행 대출 담보가 설정되어 있다. 또한 2개의 은행 계좌에 2억8천만원이 예금되어 있다. 강씨가 거주했던 안산시 팔곡동 빌라의 임차보증금이 7천만원이다. 여기에 수원시 당수동 축사의 임차보증금 5천만원을 합치면 총 9억원이 된다. 은행 대출 담보액을 빼더라도 7억5천만원이 순수 재산으로 남는다.

현재 희생자 유족들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위해 강호순의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했다. 유족들 중 수원 여대생 연아무개씨 가족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을 방침이다. 만약 법원에서 가압류 신청을 받아들이고 배상판결이 나오면 강호순은 알거지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결국 강호순은 ‘연쇄 살인자’라는 악명과 평생 죄인처럼 살아야 하는 가족들의 고통만이 남을 것으로 보인다. 


강호순 월 소득이 85만원?

수억 원대의 재산을 가진 강호순은 씀씀이도 컸다. 에쿠스와 무쏘 등 고급 승용차를 두 대나 소유하는 등 차량만 세 대가 있었다. 검거 당시 지갑 속에는 현금과 수표 등 4백50여 만원이 있었다고 한다. 웬만한 대기업 차장의 한 달 월급과 맞먹는 돈이다. 그는 안산에서 스포츠 마사지사로 일하며 한 달에 약 1백50만원 안팎을 벌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강호순의 축사에서 입수한 ‘국민연금 가입 내역 안내서’(2008년 4월 기준)에는 강씨의 월 소득이 현저하게 낮게 평가되어 있었다.

강씨는 2000년 6월1일에 국민연금에 처음으로 가입했으며, 매월 7만5천5백원의 보험료를 냈고, 지금까지 6개월간 납입했다. 보통 국민연금의 월 보험료는 본인의 월평균 소득액의 9%를 기준으로 산정하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한 강호순의 월평균 소득액이 85만원이다. 연봉으로 따지면 1천20만원에 불과하다. 고급 승용차를 굴리며 수백만 원의 현금을 지니고 다녔던 강호순이 아닌가. 이런 그가 월 소득이 85만원밖에 안 된다면 어느 누가 믿어줄까
.

 


 
살인마도 진화하는 것일까? 정남규, 유영철, 강호순 등으로 이어지는 살인마들의 행각을 접하면서 날로 사악해지는 이들의 수법에 많은 사람이 치를 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연쇄 살인’ 하면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1980년대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9명의 여성이 살해된 사건이다. 8차 범인은 검거되었으나 나머지는 영구 미제로 남아 있다. 

연쇄 살인범 중에서 가장 악명을 떨친 것은 유영철이다. 유씨는 지난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여성·노인 등 20명을 살해했다. 이 중 5명 빼고는 모두 여성이다. 유영철 이전에는 1975년 8월에서 10월까지 약 두 달 동안 17명을 살해한 김대두가 있었다. 김대두는 연쇄 살인범 중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이 살해한 기록으로 남았다.

유영철과 김대두를 능가하는 연쇄 살인범은 정남규이다. 그는 2004년 2월부터 2006년 4월까지 13명을 살해하고 20명을 다치게 했다. 특히 정남규는 경찰에 검거된 후 “유영철보다 더 죽일 수 있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네 번째로 많은 인명을 살해한 것은 1996년에서 2004년까지 부산·경남 지역을 활보하며 9명을 살해한 정두영이다. 그 뒤를 이어 연쇄 살인범의 계보를 잇는 것이 바로 강호순이다.

연쇄 살인범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며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다.

유영철, 김대두, 정남규, 정두영 등이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학교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을 겪으면서 적개심을 키웠다. 그 분노의 대상이 바로 부유층과 여성이 되었다. 정남규는 경찰에 붙잡힌 후 “부자를 보면 죽이고 싶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부유층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표출했다.  

17명 살해한 김대두만 사형 집행

이에 반해 강호순의 경우는 다르다. 강씨는 가정환경이 불우한 것은 아니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학대나 폭력을 경험하지도 않았다. 사회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의 상당한 재산과 직업까지 있었다. 강씨는 오직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살인했다는 것이 다른 연쇄 살인범과 다른 점이다. 연쇄 살인범 중에 강호순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사형을 선고받았고, 김대두만 사형이 집행된 상태이다살인마도 진화하는 것일까? 정남규, 유영철, 강호순 등으로 이어지는 살인마들의 행각을 접하면서 날로 사악해지는 이들의 수법에 많은 사람이 치를 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연쇄 살인’ 하면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1980년대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9명의 여성이 살해된 사건이다. 8차 범인은 검거되었으나 나머지는 영구 미제로 남아 있다. 

연쇄 살인범 중에서 가장 악명을 떨친 것은 유영철이다. 유씨는 지난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여성·노인 등 20명을 살해했다. 이 중 5명 빼고는 모두 여성이다. 유영철 이전에는 1975년 8월에서 10월까지 약 두 달 동안 17명을 살해한 김대두가 있었다. 김대두는 연쇄 살인범 중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이 살해한 기록으로 남았다.

유영철과 김대두를 능가하는 연쇄 살인범은 정남규이다. 그는 2004년 2월부터 2006년 4월까지 13명을 살해하고 20명을 다치게 했다. 특히 정남규는 경찰에 검거된 후 “유영철보다 더 죽일 수 있었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네 번째로 많은 인명을 살해한 것은 1996년에서 2004년까지 부산·경남 지역을 활보하며 9명을 살해한 정두영이다. 그 뒤를 이어 연쇄 살인범의 계보를 잇는 것이 바로 강호순이다.

연쇄 살인범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며 학대를 받은 경험이 있다.

유영철, 김대두, 정남규, 정두영 등이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학교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을 겪으면서 적개심을 키웠다. 그 분노의 대상이 바로 부유층과 여성이 되었다. 정남규는 경찰에 붙잡힌 후 “부자를 보면 죽이고 싶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부유층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표출했다.  

17명 살해한 김대두만 사형 집행

이에 반해 강호순의 경우는 다르다. 강씨는 가정환경이 불우한 것은 아니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학대나 폭력을 경험하지도 않았다. 사회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의 상당한 재산과 직업까지 있었다. 강씨는 오직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살인했다는 것이 다른 연쇄 살인범과 다른 점이다. 연쇄 살인범 중에 강호순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사형을 선고받았고, 김대두만 사형이 집행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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