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편 가르기 없고 나눔은 많다
  • 원희룡 의원 ()
  • 승인 2009.02.10 07: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 다보스포럼 참관기“처음 연 ‘한국의 밤’에 가슴 뿌듯”

스위스의 작은 마을 다보스에 1천5백명이 넘는 세계의 지도자와 전문가들이 모였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 러시아의 푸틴 총리, 일본의 아소 다로 총리, 영국의 브라운 총리, 독일의 메르켈 총리 등 국가 원수급만 40여 명이 참석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전세계 유력 기업인들도 얼굴을 보였다.
여러 차례 다보스포럼에 참가하고 있지만 매번 느끼는 긴장과 부담은 여전하다. 수많은 글로벌 리더와의 만남과 토론, 그 속에서 얻어낼 미래의 어젠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

이번 다보스포럼에서는 2백22가지의 토론회와 행사가 진행되었다. 최대 관심은 역시 경제 문제였다. 세계 금융 체계의 문제점, 경제 위기의 전망, 일자리, 정부의 공공 투자, 자본주의의 재평가 등을 주제로 토론이 진행되었다. 그밖에도 다양한 회의들이 열렸는데 나는 특히 기후 변화와 녹색 성장, 정보통신, 실업과 일자리 문제, 사회적 기업과 관련한 회의에 열심히 참석했다. 전과 달리 특별했던 것은 ‘코리아 나이트(한국의 밤)’를 개최한 것이다. 대단한 감동이었다. 다보스포럼 기간에는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파티를 열어 국력을 과시하고 교류의 장을 만드는데, 그동안 한국은 그런 자리가 없어 항상 아쉬웠다. 최초의 코리아 나이트 행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한승수 국무총리, 체코와 르완다의 대통령 등 3백50여 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같은 시간에 일본의 ‘스시 나이트’도 열렸는데 우리 쪽이 참석 인원도 많았고, 관심도 훨씬 높았다. 전에 일본의 ‘스시 나이트’에 참석해서 맛있는 스시를 먹고 일본측 인사들과 만나면서도 속이 불편했었는데, 이번 코리아 나이트의 성공으로 속이 확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유창한 영어보다 중요한 것은 국력

일본은 기업의 힘을 배경으로 정치인들이 다보스포럼에 대거 참여한다. 일본 국회의원들은 참가 멤버들이 자민당 코커스, 민주당 코커스를 구성해서 단체로 움직이며 국제적인 안목과 인맥을 키운다. 올해도 일본 정치인은 40여 명이 참여했다는데 한국의 정치인은 사실상 혼자였다.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것이 항상 안타깝다.

▲ 지난 1월28일부터 2월1일까지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원희룡 의원·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문정인 연세대 교수(오른쪽부터).

다보스포럼에서는 엄격하게 참가를 제한하기 때문에 통역이나 비서진을 데리고 다닐 수 없다. 영어가 서툴면 불편하다. 하지만 영어 사용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콘텐츠이다.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이 있다면 그 값어치가 유창한 영어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 언어나 콘텐츠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았다. 그것은 국력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영어가 서툴고 콘텐츠가 부족해도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모두가 관심을 기울인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유난히 관심이 높았던 국가는 중국이다.

미국 소비 시장이 줄어든 만큼을 중국이 만회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번 위기를 국가 위상을 높이는 기회로 삼기로 작정한 것 같다. 원자바오 총리는 중국이 내수를 살려 세계 경제를 뒷받침하겠다고 연설했다. 질의·답변에서는 중국은 걱정이 안 되는데 미국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기후 변화 토론에서 가장 주목된 사람은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었다.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했던 미국이 오바마 정권의 출범 이후 가져올 변화나 올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 변화 당사국 총회에서 미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어는 세계를 실망시켰다. 그는 북극과 히말라야, 그린란드의 얼음, 해수면 상승 등 이제는 상식이 된 기후 변화 현상만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세계 금융 위기와 관련해서는 ‘어떻게 신뢰를 다시 구축하고, 자신감을 회복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토론이 진행되었다. 적정한 규제와 책임을 무시한 시장 만능주의는 실패했다는 것, 실물 생산의 뒷받침 없는 금융 거품은 파탄이 난다는 것, 적정한 규제를 다시 확립해야 한다는 것, 시장의 실패를 보완할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많은 토론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허전해했다. “세계 경제가 최대 위기인데, 자기가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라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었다.

깊은 생각에 빠졌다. ‘세계 경제의 대국, 미국’ ‘기후 변화 대책의 전도사, 앨 고어’ 그들의 화려한 말들에서 리더십을 느끼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과 인도의 책임을 묻기 전에 미국의 선도적 역할을, 세계 경제 위기를 초래한 자본주의 탐욕에 대한 냉철한 비판 위에서 모두의 노력과 협력이 얘기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자기 희생과 책임 이행이 없는 리더십은 없다’라는 진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다보스의 겨울은 온통 눈이다. 마을 전체가 자연 상태의 스키 코스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물가는 엄청 비싸다. 다보스포럼 기간에는 특히 더하다. 이번에 참석한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가 침대를 접어 벽에 붙이는 작은 여관방에 묵었는데 침대에 누우니 발이 밖으로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이렇게 모두들 고생하면서도 다보스에 오는 이유는 세계 최고 글로벌 리더와의 네트워킹, 다보스의 뛰어난 어젠다 설정 능력, 그 속에서 세계의 이슈와 관심사를 듣고 콘텐츠를 발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의 정치’ ‘진화의 정치’ 확신 가져

다보스포럼에는 좌파·우파의 이념적 편 가르기가 없다. 세계의 빈곤, 양극화, 교육 격차, 기후 변화, 물 부족, 전쟁과 갈등, 자원 문제 등 다양한 입장이 제기되고 토론된다. 인류의 문제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아이디어, 선택 가능한 해법들이 제시되고 교류된다. 이스라엘 페레스 전 총리가 팔레스타인을 공격한 것이 정당한 조치라고 주장하자 터키 총리가 이스라엘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항의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정치적으로는 득실이 있었을지 몰라도 다보스의 토론 문화를 저해했다고 평가되었다.

우리 정치는 생각이 다르면 배제해버린다. ‘다름’을 ‘틀림’으로 해석해버린다. 색깔론의 껍데기에 가로막혀 실사구시로 들어가지 못한다. 해결 방법의 선택 폭이 너무 좁아지고 유연성을 잃게 되어 문제 해결의 시기를 놓쳐버리곤 한다. 다보스에서 다시금 ‘통합의 정치’ ‘진화의 정치’에 확신을 갖게 된다. 다보스포럼은 세계화와 자유 시장 경제를 확고하게 지지하는 사람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다보스는 성장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발전은 ‘나눔과 기부가 있어야 한다’라는 점을 강력하게 권고한다. 빌 게이츠는 아프리카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3억 달러를 즉석에서 기부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의 유누스가 참여한 ‘사회적 기업’에 대한 토론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유누스는 인상적인 발언을 했다. “이윤이 목적이 아닌 사업을 한다니, 미친 게 아니냐고 이야기하지만 워렌 버핏이 이윤을 벌어 사회에 돌려주면 미쳤다고 하지 않는다. 사업 과정에서 사회에 돌려주느냐, 이윤을 모아놓은 다음에 돌려주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사회적 기업에는 돈을 모으는 것 이상의 목적과 보람이 있다.” 나눔에서 오는 풍요의 법칙은 좌파 논리가 아니다. 나눔이 있는 자본주의, 나눔이 있는 경제 성장으로 가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