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지원 정책‘고용’에 맞춰라
  • 정재훈 (인하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
  • 승인 2009.02.10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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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나누기는 대기업 위주로 해야 효과

▲ 서울 중구 장교빌딩에 있는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 사무실 유리벽에 비친 구직자들의 모습. ⓒ시사저널 임준선

전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청년층 고용 문제를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의 고용 동향 발표 자료(2009년 2월4일)에 의하면 특히 20~30대의 취업 감소세가 두드러진다. 20대 취업자는 2008년 3백89만4천명으로 전년에 비해 2.5%나 감소했고, 30대 역시 0.4% 줄었다. 반면, 40대 취업자는 1.0% 증가했으며, 50세 이상 취업자 역시 3.4% 늘어났다.

청년층 중 80%가 대졸자인 상황에서 이들의 취업난 가중은 당사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 성장 기반의 훼손이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위축된 고용 상황을 비유하는 용어도 더욱 강도가 높아져 외환위기 직후 유행했던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에서 지금은 ‘이퇴백(20대에 스스로 직장을 뛰쳐나옴)’, ‘삼초땡(30대 초반이면 명예 퇴직을 생각해야 함)’ 등으로 변했다. ‘일단 어디라도 들어가고 보자’라는 급한 마음에 취업했다가 적성이나 근무 조건이 맞지 않아 조기 퇴사하는 경우가 많음을 보여주고 있다. 취업 대란의 원인을 짚어보면 크게는 세계화로 인한 기업 간 무한 경쟁 상황이 상대적으로 경력자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신규 졸업자들의 취업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무엇보다 먼저 경기 요인을 들 수 있다. 금융 위기로 시작된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기업들의 고용 창출 능력을 저하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경기 요인 이외에 구조적 요인이 대졸 고급 인력의 실업을 가중시키고 있다. 우선, 수요 측면에서의 일자리 급감을 들 수 있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면서 대졸자들이 선호하는 수출 대기업의 일자리는 거의 늘지 않고 있다. 반면, 공급의 경우 대졸자 공급은 면 단위까지 대학 설립 확산으로 인해 초과잉 공급 상태이다. 거기에다 과거 신규 졸업자 위주로 이루어지던 대기업의 채용 패턴이 경력직 중심으로 급격히 전환되었다. 따라서 경력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신규 졸업자들의 취업난은 더욱 가중되고 있으며 기업들의 신규 졸업자들에 대한 입맛은 더욱 까다로워지고 있다.

대학도 경쟁력 있는 대졸자 배출해야

이에 따라 대학 신규 졸업자들의 취업 스펙(취업 자격 요건)도 더욱 고도화·다양화되고 있다. 학점과 토익을 비롯해 아르바이트, 공모전, 사회 봉사 활동, 인턴 교육, 어학연수, 해외여행, 각종 자격증 취득 등 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할 요건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4년제라고 하지만 4년 만에 졸업하는 것은 이미 옛말이다. 대부분 적게는 6개월에서부터 많게는 1년 이상 어학연수, 인턴십 등의 이유로 평균 체류 기간이 5년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개별 공급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눈물겨울 정도로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는 이들의 노력을 지원하는 대학의 역량 증대가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공급 과잉을 초래하는 대학 난립 해소를 위한 대학 구조조정과 대학 수준의 학생별 맞춤형 경력 개발과 품질 관리가 실시되어야 한다. 대학이 실업자 양성소라는 오명을 덮어쓸 수는 없지 않은가? 2년제를 포함한 전체 대학 입학 정원이 고교 졸업생 수를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은 대학 간의 구조조정을 통한 통폐합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백화점식의 학과 나열로 경쟁력 없는 대졸자를 양산하는 운영 방식의 개선도 시급한 과제이다. 학생별 맞춤형 경력개발과 품질 관리는 입학할 때부터 졸업까지 밀착형 지도를 통해 4년 동안의 학습 과정을 전공 지식과 전공 관련 현장 학습이 합리적으로 연계된 프로그램이 되도록해 해당 분야의 준 전문가 수준까지 끌어올림으로써 기존 경력자들과의 경쟁이 가능하도록 뒷받침해줄 필요가 있다. 취업 스펙의 설정과 취득도 당사자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대학 차원에서 체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인턴십의 경우를 예로 들면 각 학부 내지 학과 수준에서 개별 기업들과 학생 현장 실습을 위한 협약 체결을 통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현장 학습이 가능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대기업들의 엄살과 기존 대기업 취업자들의 제 몫 챙기기, 정부의 정책 한계가 문제로 지적된다. 대기업들은 위기 관리라는 이름으로 미리부터 명예퇴직 등을 통한 대량의 고용 조정을 예고하고 있지만 외환위기 때의 경험에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고용 조정이 위기 타개의 능사가 아닐뿐더러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의 육성과 핵심 경쟁력 관련 유전 형질의 유지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일자리 나누기는 근로 조건이 열악한 중소기업들이 아니라 대기업 위주로 해야 고용 증대를 통한 소득 개선 등의 정책 효과가 얻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기업 노사는 임금 수준의 동결을 통한 재원 마련이나 근로 시간의 단축을 통한 워크셰어링 등을 통해 고용 창출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중소기업은 현재의 일자리 유지에, 대기업은 현재의 일자리 유지 및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하는 데 지원 정책의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한편에서 공공 부문의 강력한 구조조정을 주문하면서 다른 한편에서 잡 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을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정서적으로는 당사자들의 납득을 얻어내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청년층 실업 해소책의 일환으로 비정규직과 다름없는 행정인턴의 확대를 얘기하면서 지금은 고용의 질을 따질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소치가 아닌가 한다.

비정규직 문제, 청년 실업 악화시킬 수도

지금 청년 실업자들이 원하는 것은 좋은 일자리이다. 그리고 이들이 도전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도전할 기회를 갖지 못할 뿐이다. 단기적인 일자리라도 공급해야 한다는 정부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비정규직 문제가 청년 실업 문제를 악화시키는 주요한 원인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으로 대학원생들을 모집하는 국회의 공고문에서 기껏 ‘월급 90만원’을 제시하면서 ‘통계에 능하고, 정책 마인드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구절이 눈에 밟혔다. 우리나라에서 통계 전문가는 정말 귀하다. 게다가 통계 전문가가 정책 마인드까지 있다면 그야말로 최상의 전문가에 해당한다. 그런 대학원 졸업자가 매일 출근해서 8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90만원을 받는다?”(<88만원 세대> 20쪽) 이럴 바에는 구직을 단념하는 편이 낫다.

청년들이 원하는 조건은 간단하다. 차별이 없을 것, 생계비가 보장될 것. 자기 계발의 기회 혹은 훈련이 제공될 것 등이다. 공조직일수록 사람값을 제대로 쳐줘야 한다. 경기 조절용으로서 비정규직 청년층을 활용해서는 곤란하며, 이런 점에서 청년층 실업 대책은 비정규직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청년 인턴제로 취업했다가는 경력 인정도 못 받고 나이만 든다’는 취업 재수생의 지적을 곱씹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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