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 경기장에 올라간 까닭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2.17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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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투, 20대부터 50대까지 아우르며 인기 몰이…갖가지 전략으로 예측 불허 승부

ⓒ시사저널 임영무

지난 2월12일 바투 인비테이셔널 대회 결승전이 열리는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는 평소와 다른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e스포츠 경기가 열리고 관중으로 가득 찬 것까지는 다를 것이 없었다. 팬들이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오는 ‘치어플’이라는 e스포츠 경기의 독특한 응원 문화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 등이 열릴 때 20대 이하의 젊은 관객이 대다수를 이루었던 것과는 달리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함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관객도 눈에 띄었다. 바로 바둑에서 출발한 바투라는 게임이 만든 독특한 장면이었다.

경기장에서 만난 유광룡씨(55)는 “원래 바둑을 좋아하는데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홈페이지를 발견해 바투를 즐기게 되었다. 바둑하고는 다른 독특한 재미가 있다. 머리싸움이 더 치열하게 펼쳐지는 것 같다. 경기장에는 처음 왔는데 직접 와서 보니까 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대회에 직접 참가하기도 한 조훈현 국수는 “실제 경기장에 가서 응원하는 재미는 바둑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선수들과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이 팬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될 듯하다. 지켜야 할 예의가 분명히 있지만 예의도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내에서 조용한 가운데 펼쳐지는 바둑과 특설 경기장에서 많은 관중과 함께 열리는 바투에 요구되는 예의가 다르다는 것이다.

조훈현 국수 등도 참가해

바투 인비테이셔널 대회에는 조국수를 비롯해 유창혁, 이창호, 박지은, 허영호 등 대표적인 국내 프로기사와 구리, 칭하오 등 중국 프로기사들이 참가해 두뇌 전략 게임인 바투로 대결을 펼쳤다. 이날 열린 결승전에는 허영호 6단과 여류기사 박지은 9단이 올랐다. 조훈현, 이창호 등 바둑판의 강자들은 일찌감치 떨어졌다. 바둑의 절대 강자가 바투의 강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바둑과는 게임의 형식도 다르고 변수도 많다. 결승에서는 허 6단이 박 9단을 3 대 1로 물리치고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관중들은 프로기사들의 한 수 한 수에 열광했고, 전광판을 가리키며 나름으로 해석을 하고는 했다. 가장 큰 변수인 히든을 선택하고 찾아낼 때는 더 큰 소리의 탄성과 환호가 터져나왔다. 특히 82%라는 말이 안 될 정도의 히든 적중률을 기록하고 있는 박지은 9단의 히든을 찾아내는 능력에는, 승패를 떠나 박수가 쏟아졌다.
바투는 논리로 승부가 겨루어지는 최고의 전략 게임인 바둑에 심리전, 연막 작전, 운 등의 요소를 집어넣어 승부에 변수를 많이 주었다. 바투는 11줄의 작은 바둑판에 특정 위치에 보너스 점수와 마이너스 점수가 부여된 좌표와 점수 가치가 다른 돌들이 존재해 점수 계산이 쉽지 않다. 여기에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돌 3개를 놓는 베이스빌드, 선제 공격권을 잡기 위해 점수를 접어주는 턴베팅이 초반 긴장감을 높인다. 무엇보다도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 ‘히든’과 이를 찾기 위한 ‘스캔’은 심리전을 통해 상황을 반전시키는 역전의 묘미를 준다.

e스포츠로서 바투의 가능성은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바둑TV에서 확인되고 있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둑TV에서 방송되는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시청률이 높지는 않지만 시청자층이 확대되고 있다. 바투 인비테이셔널의 시청률은 동시간대 프로그램에 비해 20대 남성에서 16%가 증가했고, 30대 남성에서는 무려 60%나 증가했다. 바둑 TV의 관계자는 “기존 바둑TV 시청자층 외에 젊은 시청자의 유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바투 인비테이셔널은 바둑TV 외에 젊은 시청자의 접근이 쉬운 곰TV를 통해 생중계되며, 온게임넷과 수퍼액션을 통해서 재방송되고 있다.

바투 유저인 김승민씨(34)는 “바둑을 알지 못하면 처음 바투 방송을 보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바둑에 대한 기본적인 것만 알면 바투를 두거나 보는 데 무리가 없다. 대회가 거듭될수록 전략 면에서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는 바투의 재미가 더할 것으로 생각한다. 최고 인기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에서 임요환, 마재윤 같은 선수들이 기존 관념을 깨는 플레이로 장수를 누려왔다면, 바투는 이런 재미를 줄 수 있는 여지가 더 많다”라고 평가했다.

바투가, 보는 e스포츠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하지만 역시 온라인 게임은 직접 하는 재미가 우선이다. 이 점에서 바투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학생인 강형문씨(25)는 “초보자들도 간단한 규칙만 알면 재미있게 게임을 할 수 있다. 바투에 재미를 느낀 사람들 중에는 바둑을 배워보자는 생각에 책을 사고 학원을 알아보기도 한다. 빨리 끝나니까 속도성이 있고 심리적이고 게임적인 요소가 있어서 흥미진진하다”라고 말했다.

바투는 어린이들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 주의력과 집중력을 높여주는 바둑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바둑학원을 찾는 어린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둑을 하는 아이들이 바투에도 쉽게 빠져들고 바투에 재미를 느낀 아이들이 바둑에 관심을 갖는 윈윈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경기장에서 박지은 9단을 응원하는 모습으로 방송 화면에 자주 등장한 김현민(8) 어린이의 어머니 정미영씨(36)는 “바둑을 두시는 할아버지와 지내면서 바둑에 관심을 가졌다. 자연히 바투에도 흥미를 가졌다. 메이플스토리 등 다른 게임도 하지만 바둑과 바투에 몰입하는 정도가 더 강하다. 바둑이나 바투가 두뇌 스포츠이다 보니 나쁘지 않게 생각한다. 단, 요일과 시간을 정해주고 시킨다”라고 말했다.

일부 기사 “바둑의 본질 훼손시킨다”

▲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을 찾은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 기사를 응원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바둑의 대중화는 유명 프로기사들이 바투 인비테이셔널에 적극 참여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바둑의 인기가 하향세에 있고 바둑을 즐기는 인구의 연령이 계속 높아지다 보니, 바투에서 터닝포인트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조훈현 국수는 “바둑판이 정체기에 와 있는 상황에서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바투라는 게임은 기존의 바둑과 조금 다르고 접근하기도 쉬운 것 같다.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바둑을 대중화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젊은 프로기사들 사이에서의 호응도 좋다”라고 전했다.

바투에 대해 바둑계가 모두 찬성의 목소리만 내는 것은 아니다. 바투가 바둑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투가 바둑 인구를 늘리기보다 바둑 인구가 바투에 흡수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기원 홍보팀 관계자는 “바투에 대한 프로기사들의 생각은 찬성과 반대가 반반 정도이다. 한국기원의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계획은 없고, 회원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바투가 바둑계와 게임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제작사인 이플레이온은 이 바람을 바둑 인구가 많은 중국, 일본, 타이완 등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대회에 참가한 창하오 기사도 중국의 바둑 팬들이 바투를 좋아할 것이라고 예상한바 있다. 이플레이온 윤인호 마케팅팀장은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중국에 시범 서비스를 하고 있고, 일본 서비스는 준비 중이다. 5월에 열릴 월드바투챔피언십을 시작으로 각국 선수들이 참가하는 리그를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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