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1년, 너무 다른 색안경
  • 김영화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09.02.17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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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법질서 세우고 좌편향 바로잡아” “민주주의 후퇴·남북관계 파탄” 상반된 평가

▲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MB 정권 역주행 1년 평가 토론회’에서 고려대 박경신 교수(왼쪽에서 세 번째)가 기조 발제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1년 전 이명박 대통령은 사상 최대 표차인 5백28만표 차이로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계층과 지역, 성별과 연령의 구분이 없는 폭넓은 지지였다. 대기업 CEO와 청계천 성공 신화 이미지가 덧씌워진 그의 중도 실용주의가 경제 회생에 목말라하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는 여야 정치권의 시선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기대가 컸던 만큼 30%대에 맴도는 낮은 지지율은 정말 참담한 결과이다. 물론 촛불 시위와 미국발 금융 위기로 촉발된 경제 위기로 늘 쫓기는 신세였던 이명박 정부가 집권 1년 만에 무언가를 남기기가 어려웠던 것 또한 현실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이명박 정부의 공적을 입에 담는 사람을 찾기가 힘든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여야 입장에 온도 차이는 난다. 홍준표 원내대표가 비유했듯이 한나라당은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심정이다. 이명박 정부가 제대로 기지개를 켜지 못한 것은 무척 아쉽지만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는 데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야당은 지난 1년을 엄혹한 겨울 공화국에 비유한다.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기 전으로 후퇴했다는 의미이다.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도 한나라당은 정권 교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근본적인 변화가 물밑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아직 완벽하게 자리 잡은 것은 아니지만 우파 정권의 이념이 서서히 사회 전반에 착근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법질서 확립, 법치주의의 정착이다. “지난 10년간의 진보 정권을 거치는 동안 우리 사회는 불법 집단행동이 난무하고 법질서가 무너졌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무고한 시민에게 돌아갔다”(홍준표 원내대표)라는 것이 여권의 인식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출범 이후 ‘떼법’ ‘국민정서법’ 같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데 주력해왔다. 한나라당이 2월 임시국회에서 불법 시위에 관한 집단소송 제도, 사이버모욕죄 도입, 시위 중 복면 착용 금지 법안을 재추진하는 것도 이같은 정부의 법질서 확립 노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기 위해서이다.

그 성과는 지난해 촛불 시위에 대한 경찰 수사를 기점으로 차츰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평가이다. 문화제 또는 야유회 형식으로 빌어 진행된 초기 시위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대처했던 경찰이, 시위가 폭력 양상을 띠자 물대포 등을 동원해 어느 때보다 강경하게 대처했다. 대통령의 사과로 촛불 시위가 잦아든 뒤에도 경찰은 유모차 부대를 이끌었던 주부들을 소환 조사할 정도로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해서는 예외나 관용이 없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용산 철거민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여섯 명의 사망자가 났는데도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문책론을 놓고 찬반 기류가 팽팽하게 맞섰던 것도 ‘공권력 바로 세우기’가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은 사회 전반의 ‘좌편향 바로잡기’도 나름의 성과로 꼽는다. 물론 아직은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이 많다. 또, 좌편향 바로잡기가 중간 지대로의 회귀를 지나쳐 우경화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정권 교체 1년 만에 정부 소속 기관은 물론 산하 기관에 이르기까지 인적 청산은 이제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 임명되었던 좌파 성향의 문화예술기관 단체장들에 대한 인적 청산은 문화 권력의 대이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격적으로 진행됐다. 민중미술 계열인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퇴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공영방송 위상 재정립 작업도 비슷한 맥락이다. KBS 정연주 전 사장이 퇴진하는 과정에서 ‘역(逆)코드 인사’ 논란이 일었지만,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촛불 시위 국면 등에서 공영방송 KBS가 보였던 정치적 편향이 거의 시정되어 어느 정도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고 자평한다.

이에 반해 지난 1년에 대한 야당의 평가는 낙제점에 가깝다. 여당이 나름의 성과라고 여기는 법치주의 확립, 좌편향 시정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민주주의의 후퇴, 국민 편 가르기로 평가절하한다. “군사 독재가 물러난 지 20년 만에 대한민국에 민간 파시즘의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라는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의 발언은 이같은 평가를 집약해 보여준다.

야권이 꼽는 이명박 정부의 과오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바로 경제 정책의 실패, 민주주의의 후퇴, 남북 관계의 파탄이다.

경제 정책과 관련해 민주당은 세계적 불황이라는 외생 변수가 현재의 경제 위기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책임을 가려주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대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고환율에 기반한 성장 위주 정책을 추진한 것이 위기의 파고를 더 높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이명박 정권은 부유층에 대한 감세, 친재벌 중심, 무분별한 규제 완화, 토목건설업 중심의 경기 부양책을 정책 기조로 밀어붙이고 있다. 현 정권의 성장 정책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투쟁할 시기로 돌아갈 줄 몰랐다”

▲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박희태 대표(맨 오른쪽)가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야당은 또, 지난 1년을 ‘민주주의의 후퇴’ ‘과거로의 역주행’으로 규정한다. ‘<PD수첩> 수사’, 네티즌의 조·중·동 광고 중단 운동 수사, ‘미네르바’ 구속, 국가인권위원회 축소, 용산 참사 등이 이들이 내세우는 구체적 사례이다. 여권이 2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마스크금지법, 휴대전화 도청법, 댓글처벌법도 이 목록에 포함된다. ‘숨 막히는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12일 열린 민주당의 ‘MB 정권, 역주행 1년 평가토론회’ 첫 회에서는 “미디어법 개정안은 정권 연장을 위한 언론 장악 기도이다”(최문순 의원),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확대하는 국정원법은 과거 안기부로 회귀하려는 것이다”(박영선 의원), “통신사의 감청 설비를 의무화한 통신비밀보호법은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는 악법이다”(변재일 의원)라는 등의 혹독한 평가가 나왔다. 박병석 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다시는 민주주의에 관해서 거론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자유권적 기본권에 대해서 심각히 고민하고 투쟁할 시기로 돌아갈 줄은 정말 몰랐다”라고 토로한다.

야권은 또 남북 관계도 사실상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한다. ‘비핵·개방·3000’이라는 상호주의 대북 원칙을 앞세우고 6·15, 10·4 선언을 전면 부인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 북한을 자극함으로써 남북 관계가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송민순 의원은 “정부는 한·미 공조가 튼튼하므로 문제가 없다고만 강조하고 있다. 지금 우리 정부의 목소리는 미국 내 강경파보다 더욱 강경하고, 이로 인해 북한의 강경파도 목소리를 높이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가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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