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중 3명은 ‘물갈이’
  • 정락인. 안성모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2.17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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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 1급 공무원, 어떻게 바뀌었나 / 경제 부처 교체 폭이 상대적으로 커

▲ 지난 1월31일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장·차관급 워크숍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공직 사회에서 수직 이동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직급은 1급(관리관)이다. 그래서 1급은 ‘공무원의 꽃’으로 불린다. 1급은 중앙 부처에서 차관보나 실장에 해당하고, 산하 기관의 기관장을 맡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6년 1~3급을 ‘고위공무원단’으로 통합하면서 사실상 1급이라는 직급은 사라졌다. 가, 나, 다, 라, 마 다섯 등급으로 구분하고 있을 뿐이다. 언론에서는 편의상 직급을 구분하고 있다.

1급 공무원들은 자신들을 흔히 ‘파리 목숨’에 비유한다. 실제 1급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1~2년에 불과하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월30일 1급에 대한 ‘신분 보장’ 조항을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1급 공무원의 입지가 더욱 약하게 되었다.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생사가 갈리기도 한다. 특히 정권 교체기에는 목숨을 장담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쳐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사람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정부 부처의 실권을 쥐고 있는 1급 공무원들은 교체 0순위이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출범 후 ‘고소영’ ‘강부자’ 논란으로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집권 2기에 들어서면서 고위 공직자에 대한 물갈이를 단행했다. ‘1급들의 환란’이라고 불리는 숙청 작업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되었다. 집권 2년차의 새판 짜기를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고위 공직자의 물갈이는 지금까지 약 두 달 간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일부 부처는 자리 이동으로 인해 장기간 공석으로 남아 있기도 하고, 사표를 받고 후임자 인선을 미루고 있는 곳도 있다. 

코드와 전문성에 인사 중점 

지금까지 단행된 정부 부처의 1급 인사를 보면 코드 인사와 전문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전 정권과 코드를 맞춘 인사들은 대부분 솎아냈다. 새로운 인적 구조를 통해 지난 정권의 색채를 바꾸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다. 교체 비율은 부처마다 천차만별이다. 정부 중앙 부처는 5명 중 3명이 교체되었고, 차관급 부처는 3명 중 1명이 교체되었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초기와 비교해보자. 우선 그때에는 1급직이 1백24명에 달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보다 40명이 늘어난 1백64명이다. 2월13일 현재 7명이 공석으로 남아 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초에 단행된 1급 공무원의 교체 비율은 80%에 달했다. 10명 중 8명이 바뀐 것이다. 당시 교체된 1급 공무원들의 특징은 비고시 출신의 중용과 세대 교체였다. 김대중 정부 말기에 비고시 출신 1급 공무원의 비율이 29.6%였으나 노무현 정부에서는 36.8%로 대폭 늘어났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고시 출신 비율이 77%에 달한다. 행정고시 기수별로 보면 김대중 정부 때는 14회가 주류를 이루었고, 노무현 정부 때는 17회가 대세를 이루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23회가 38명(34.2%)을 차지하고 있다.

정권에 따라 출신 지역도 대이동했다. 김대중 정부 말기에는 광주·전남, 대구·경북, 부산·경남 순이었으나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부산·경남이 부쩍 늘어나 가장 많은 1급 공무원을 배출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는 대구·경북 31명, 서울 26명, 광주·전남 21명, 대전·충남 20명 순이다. 반면, 부산·경남은 15명에 불과하다. 영·호남과 충청 지역을 좀더 들여다보면 영남(46명), 호남(31명), 충청(27명) 순이다. 영남 지역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지역적인 불균형은 심하지 않다. 특히 호남 지역에도 상당한 배려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북고·고려대 ‘약진’

▲ 과천 정부청사 벤치에 앉아 있거나 청사를 오가는 공무원들. ⓒ시사저널 이종현

출신 고교는 전 정권에 이어 경기고의 강세가 여전하지만 경북고가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경기고는 노무현 정부 초기에 단행된 1급 인사에서 김대중 정부 때보다 2배 정도가 늘어났다. 김대중 정부 때 광주일고에 빼앗겼던 최고 자리를 되찾아온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경기고 11명에 이어 경북고가 10명을 배출해 경복고와 대전고를 따돌렸다.

출신 대학은 이대통령의 모교인 고려대가 서울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서울대는 김대중 정부(37.3%), 노무현 정부(37.5%)에서도 1급 공무원 배출 1위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전체 44명으로 고려대(23명), 연세대(15명)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고려대는 김대중 정부에서는 2위였으나, 노무현 정부 때는 성균관대나 연세대에 밀려 4위로 찬밥 신세였다. 비록 서울대를 뛰어넘지는 못했으나 전 정권에 비하면 약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에 단행된 1급들의 교체 비율을 보면 경제 부처의 교체 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기획재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제2기 경제팀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해 윤증현 장관과 코드가 잘 맞는 인물로 엄선했다. 1급 10명 중 7명이 바뀌었다. 지식경제부는 전체 1급 공무원 8명 중 3명이 유임되고 4명은 보직을 변경했으며, 1명은 공석이다. 지식경제부 1급직의 출신 지역을 보면 서울 3명, 부산·경남 2명, 제주 1명, 전북과 전남 각각 1명이다. TK로 구분되는 대구·경북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행정안전부는 본청 1급직 8명 중 7명을 교체했다. 자리를 지킨 것은 김진항 재난안전실장이 유일하다. 그는 경북 성주 출신으로 대구고와 육사를 나온 전형적인 TK(대구·경북)이다. 국토해양부는 본청 1급직 9명 중 3명이 사표를 제출했다. 주로 김대중·노무현 정권 사람들로 분류되던 인물들이다. 전체 교체 폭은 5명이지만 자리를 수평 이동하거나 승진 인사로 채웠다.

정부 부처의 고위직 ‘인사 태풍’ 진원지였던 교육과학기술부는 일괄 사표를 냈던 1급 공무원 7명 가운데 박종용 인재정책실장과 김왕복 교원소청심사위원장은 명예 퇴직했다. 이걸우 학술연구정책실장은 1급에서 한 단계 직급이 낮은 대구시 부교육감으로 옮겼다.

통일부도 1급직 5명 중 3명을 교체했다. 홍재형 남북회담본부장은 유임되었고, 나머지 세 자리는 모두 교체되었다. 보건복지가족부도 1급 7명 중 3명을 교체해 인사 폭이 컸다. 국정원은 원세훈 원장 내정자가 취임하면 1급직 중 상당수가 물갈이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정원은 지난해 3월 1급 이상 고위 간부 70%를 물갈이했었다.

국세청, 기상청 등 정부 부처 산하 1급 중에서는 검찰청(사무국장), 국세청, 농촌진흥청(국립농업과학원장), 산림청(차장), 공정거래위원회(사무처장, 상임위원) 등이 바뀌었다.

특히 국세청은 지난 1월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그림 상납’ 의혹과 부적절한 골프 회동에 휘말렸고 결국, 물러났다. 1급인 차장, 중부지방국세청장, 서울지방국세청장도 모두 교체되었다. 이 중 허병익 차장과 이승재 중부청장은 고려대를 나왔고, 이현동 서울청장은 경북 청도 출신으로 TK(대구·경북)이다. 4대 권력 기관 중의 하나인 국세청을 고려대·TK가 장악한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행안부가 임명하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부지사나 행정부시장도 대거 새 인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교체된 지자체는 경상북도, 대전시, 경기도(제2부지사), 부산시, 경상남도, 강원도 등이다.

정부는 공석 중이거나 아직 교체하지 않은 1급직 중 상당수를 순차적으로 새로 임명할 것으로 보여 향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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