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의 정수기 소변검사로 지키자”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2.24 01:5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성권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 / “자각 증세 없어 조기 발견만이 합병증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


암보다 무서운 질병을 꼽으라면 콩팥병(신장질환)을 들 수 있다. 등 쪽의 갈비뼈 밑에 있는 한 쌍의 콩팥은 하루 2백ℓ의 피를 깨끗이 걸러주는 ‘우리 몸의 정수기’이다. 정수 기능이 현격하게 떨어지면 생명이 위태로워지고 여기에 고혈압이나 당뇨까지 겹치면 생존율이 암보다 낮아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6백만명이 콩팥병을 앓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5만명은 말기 신부전증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러나 뚜렷한 자각 증세가 없기 때문에 병에 걸린 사실조차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성권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국내에서 콩팥병의 권위자이다. 김교수는 콩팥병 환자가 심장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실제 콩팥병에 걸리면 콩팥이 아니라 심장의 이상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김교수는 소변검사를 통한 조기 발견만이 콩팥병과 합병증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책이라고 설명한다. 그로부터 최신 콩팥병 치료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콩팥병 환자가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은가?

환자가 콩팥병 자체보다는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 밝혀졌다. 콩팥병 환자가 약 6백만명이면 그중에서 투석을 받는 만성 콩팥병 환자는 5만명이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과거에는 이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들을 추적해보니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콩팥병 환자가 일반인보다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10~100배나 높다는 점이다. 또 4~5년 전, 가벼운 콩팥병이 말기 신부전으로 악화되기도 전에 심장질환으로 사망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바 있다. 국제신장학회는 콩팥병으로 인한  합병증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콩팥병이 뇌졸중이나 심장질환과 관계가 깊은 이유는 무엇인가?

말초혈관덩어리인 콩팥은 간이나 뇌보다 혈액이 많이 모이는 장기이다. 따라서 혈액이나 혈관에 문제가 생겨 콩팥에 이상이 발생할 정도라면 심장이나 뇌도 안심할 수 없다. 발병 원인이 동일한 셈이다. 물론 동물 실험에서는 콩팥이나 심장 중 한 장기만 나빠지게 하는 혈관병도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가 따로 진행 중이다.

반대로 심장에 이상이 있으면 콩팥도 나빠지는가?

그런 경우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그렇지만 심장질환이 있는 환자는 콩팥 기능을 잘 유지해야 한다. 심장이 나쁜 사람은 콩팥 기능이 조금만 떨어져도 사망률이 3~4배나 높아진다. 심근경색 환자의 사망 요인 1위가 콩팥병으로 인식되면서 미국에서는 심장질환 환자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오면 콩팥 기능 검사부터 한다.

고혈압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가?

콩팥병과 고혈압의 관계는 닭과 달걀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라고 묻는 것처럼 밀접하다. 과거에는 고혈압이 콩팥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요즘에는 그 반대의 연구 결과도 많이 나와 있다. 1960년대에 고혈압과 콩팥병을 앓는 환자에게 건강한 콩팥을 이식했더니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콩팥이 나빠지면 혈압이 올라간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성인병 증가가 콩팥병 증가와 비례하는가?

잘사는 나라일수록 젊은 층의 질환은 줄어드는 대신 노인성 질환이 늘어난다. 성인 7명 중 한 명, 65세 이상 노인 중 절반 이상은 콩팥병을 앓고 있다. 게다가 과거보다 수명이 길어져 병이 더 많이 발견되기도 한다. 지난 1986년의 자료에 의하면 투석이 필요한 말기 신부전 환자가 2천5백명에 불과했지만, 불과 20여 년이 지난 요즘에는 5만여 명으로 20배 이상 증가했다.

고혈압과 당뇨가 늘면서 콩팥병도 증가한다. 고혈압 환자 10명 중 2명은 콩팥병 환자이다. 당뇨 환자 10명 중 4명은 콩팥병 환자이다.

그렇다면 성인병 치료를 병행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

▲ 혈액 투석 중인 환자. 고령 환자에게는 콩팥 이식보다 투석이 낫다. ⓒ서울대병원 제공

성인병 치료를 곧 콩팥병 치료로 보면 된다. 콩팥병보다 다른 병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당뇨나 고혈압이 있는 사람이 가족력까지 있다면 1년에 한 번은 검사를 받아야 한다. 특히 가족 중 당뇨로 인해 콩팥병을 앓은 경우가 있다면 미세 알부민 검사 등 정밀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

치료의 요체는 정기 검사로 콩팥병이 발견되면 만성으로 진행되는 것을 늦추는 것이다. 식이요법과 약물요법으로 혈압과 혈당만 조절해도 병의 진행을 10년 이상 늦출 수 있다.

콩팥병이 어느 정도 진행된 환자는 심장질환 등 심각한 합병증을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콜레스테롤·체중·고혈압 조절이 절대적이다. 이 정도 선까지는 성인병 예방 및 치료법과 거의 유사하다.
그러나 신장 기능이 15%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라면 투석과 이식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때에는 완치보다는 불편한 상황을 피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치료 목표를 둔다.  

환자 입장에서 투석과 이식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고민하게 된다.

치료를 경험한 환자들에게 투석 또는 이식을 선택한 이유를 물어보면 여러 대답이 돌아온다. 소변을 잘 보면 소원이 없겠다는 사람부터 아무 음식이든 실컷 먹고 싶다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이런 대답들에는 병 자체를 인정하고 여생을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투석과 이식 모두 좋은 치료법이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좀더 편안하게, 오래 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게 옳은 답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투석과 이식의 선택 기준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이가 최우선이다. 고령이라면 수술이 필요한 이식보다 투석이 유리하다. 1970~80년대에 45세 이상 환자는 이식을 하면 투석을 했을 때보다 오래 살지 못했다. 인간 수명이 길어지면서 기준 연령이 55세 이상으로 높아졌지만 이식 수술에 대한 위험 부담 때문에 고령 환자는 투석이 바람직하다.

일반적으로 콩팥병은 50세 이상에서 많이 생기므로 이식보다는 투석 치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60세 이상이면 이식보다 투석 치료가 환자의 생명 연장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이식은 한 번 수술로 콩팥병을 잊고 지낼 수 있지만 위험 부담이 크다. 투석은 평생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고령 환자가 굳이 위험부담을 안고서 이식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말기 신부전은 완치가 안 되기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콩팥병에서 급성과 만성의 기준은 발병 시점으로 보면 된다. 환자가 며칠 전부터 가슴이 아팠다고 말할 정도로 정확한 발병 시점을 알면 급성이다. 그러나 한 10년쯤 되었을 것이라며 그 시점을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면 만성이다. 발병 시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콩팥병의 치료가 발병  시점과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동물 실험에서는 발병 시점을 알아내 만성 콩팥병을 완치한 바 있다.

발병 시점을 알려면 꾸준히 정기 검사를 받아야 하는가?

프랑스에서는 온 국민이 매년 소변검사를 하도록 되어 있다. 최소한 발병 시점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가 훨씬 수월하다. 이 질환은 조금만 일찍 발견하면 완치할 수 있다. 그런데 자각 증세가 없기 때문에 병원을 찾는 환자가 거의 없다. 오히려 의사가 나서서 환자를 찾아다녀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콩팥병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담위원회까지 만들어 만성 콩팥병 환자 퇴치에 나선 것이다. 만성 콩팥병을 완치하지는 못하지만, 병을 조기에 발견해서 환자를 줄여보겠다는 국가 차원의 전략에 의한 것이다. 일본신장학회 소속 의사들은 국민에게 소변검사지를 나누어주는 것도 훌륭한 연구 성과만큼 중요하다면서 실제로 지하철역에서 검사 용지를 나누어주고 있다.

콩팥병의 치료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콩팥병이 많은 일본의 경우 전문의들은 ‘친구만큼 살게 하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대대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대병원에도 33년 동안 투석하면서 천수를 살고 있는 환자가 있다. 말기 신부전을 완치하지 못한다면, 사는 동안 고통과 불편을 덜어주어 환자가 자신의 삶을 다 살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치료법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적극적으로 나서 콩팥병 환자를 찾아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1970년대에만 해도 콩팥병을 발견해도 치료할 능력이 없었다. 그 이후에도 의사는 병원에 오는 환자만 치료했다. 그러나 현재는 치료 능력과 약물이 발달되어 있어 치료 효율이 높아졌다. 그래서 적극적인 치료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어떤 치료 방법이 나올 것 같은가?

궁극적으로 예측치료(preemptive treatment)가 바람직하다. 현재 발병 원인에서 30% 정도가 유전성으로 알려졌지만, 그 원인이 10~20년 후에는 60%, 한 100년 후에는 90% 정도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미래에 개인별로 유전자 지도를 확보하게 되면 태어나기 전부터 어떤 질환이 몇 살에 생길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질환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방향으로 치료 개념이 바뀔 것으로 본다.

또, 환자에게 당장 필요한 ‘실용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콩팥병 환자를 면회하러 오는 가족은 같은 병에 걸릴 확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5~10배 높다. 이런 사람을 미리 검사하면 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콩팥병에 대한 연구도 중요하지만 계몽을 통해 질환의 심각성을 인식시키는 것이 더 실용적인 치료이다. 대표적인 방법이 소변검사를 독려하는 일이다. 

소변검사로 콩팥병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는가?

나는 평소 다른 것은 몰라도 소변검사는 매년 하라고 권한다. 소변검사만으로도 콩팥병의 90%를 확인할 수 있으며, 환자 7명 중 한 명을 살릴 수 있다. 소변검사와 더불어 혈압 체크를 하고, 이상이 발견되면 크레아티닌(creatinine) 농도를 측정하면 된다. 크레아티닌은 뇌, 근육, 심장에서 에너지를 보관하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 크레아틴(creatine)의 노폐물인데, 콩팥의 이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5분 만에 검사 결과를 알 수 있다. 

콩팥의 사구체와 세뇨관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어떻게 확인하는가?

세계 의학자들이 지난 1백50년 동안 고민해오고 있는 문제이다. 콩팥 속에 있는 사구체는 몸의 노폐물을 여과하는 기관이다. 배출된 노폐물에서 수분 등을 재흡수하는 기관이 세뇨관이다. 
일반적으로 사구체 여과에 문제가 있으면 혈압이 높아지고 몸이 붓지만 빈혈은 생기지 않는다. 세뇨관 재흡수에 이상이 생기면 혈압과 붓기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빈혈이 생긴다. 공통적으로 단백뇨가 나오지만, 소변에 섞여 있는 단백질 종류는 각기 다르다.

콩팥병 환자 3천명 중 2천5백명에게는 사구체 여과에 이상이 있으며, 이 중에 20~30%는 세뇨관 재흡수 기능 장애도 함께 가지고 있다. 여과 기능이 좋지 않아 단백질이 배출되면서 세뇨관도 못 쓰게 된다. 이런 관계를 사구체-세뇨관 피드백(tubuloglomerular feedback)이라고 정의할 정도로 사구체 여과와 세뇨관 재흡수 기능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김성권 교수는 누구?

div align="justify">1974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77년과 1979년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현재까지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08년 서울대학교 신장연구소장을 맡았다.

1985~87년까지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대학 내과에서 교환교수로 근무했다. 2006~08년까지 대한신장학회 이사장을, 2007~08년까지 신장학연구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8년부터 대한의료정보학회장과 한·중·일 신장컨퍼런스 한국 대표를 맡고 있다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