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녹색 혁명에 유리한 나라”
  • 김세원 편집위원 ()
  • 승인 2009.03.03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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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관계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 / “IT와 ET 간 신융합 기술 개발 필수적”

국제 문제 전문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칼럼니스트,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세계에서 영향력이 큰 경영 대가(Guru)’ 랭킹 2위. 오바마 행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에 청사진 제공, 퓰리처상 3차례 수상,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이상은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에게 붙는 수식어들이다. 주 2회 뉴욕타임스에 실리는 그의 칼럼은 워싱턴 정가와 뉴욕 월가에서 화제에 오르고,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세계는 평평하다> 같은 그의 저서는 출간될 때마다 세계의 CEO와 지식인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신작 <코드 그린(Code Green: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은 공교롭게도 정당은 달라도 한·미 현 정부가 똑같이 역점을 두고 있는 ‘녹색 성장’을 다루고 있어 미국은 물론 한국의 관가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그가 최근 한국을 다녀갔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동 주최로 열린 ‘글로벌 코리아 2009’ 국제회의와 이상네트웍스가 주최한 ‘그린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청와대의 초청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정보기술(IT)에 이은 청정 에너지 기술(ET)이 미래의 승부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강조했고, ‘글로벌 코리아’ 회의에서도 “미국식 발전 전략의 문제점을 해결할 대안은 녹색 혁명뿐이며 이를 위해 ET와  IT의 새로운 융합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지난 2월23일 ‘글로벌 코리아 2009’가 열린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난 프리드먼 씨는 세계적인 명성에도 ‘자만하지 않는다’는 그의 신조처럼 친절하고 겸손했다. 말끝마다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고 빡빡한 일정임에도 돌발 인터뷰 요청에 선뜻 응해주었다. 

<세계는 평평하다> 등 저서를 통해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와 미국식 세계화의 전도사 역할을 했는데, 이번에 <코드 그린>을 내놓으면서 환경 전도사로 변신했다. 전향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말하는 ‘그린’은 환경주의나 생태주의로의 회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풍부하고 저렴하며 깨끗한 에너지 기술(ET)을 개발한 나라가 안보와 경제 성장에서도 가장 앞서나가는 대국이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전세계 주요 국가들은 이미 ET 선점과 녹색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 경쟁에 돌입했다. 지구촌이 당면한 에너지 문제는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로 풀어낼 것이 아니라 신기술 개발로 해결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지난 1백50년 동안 성장 과정에서 엄청난 환경오염을 일으켰다. 그런데 이제 메인 코스를 끝내고 디저트 커피까지 마시고 난 선진국들이 뒤늦게 경제 발전 가도에 뛰어든 개발도상국들에게 비용을 같이 지불하자고 하면 불공평하다고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코드 그린(녹색 성장 전략)’이란 무엇인가?

미래의 국가 경쟁력은 ‘녹색 혁명’의 성패에 달려 있다. 현재 인류는 다섯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첫째 에너지 및 천연자원에 대한 수요 증가, 둘째 석유 강국 및 석유 독재자에게로의 부의 이동, 셋째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파괴적 기후변화, 넷째 갈수록 심화되는 에너지 빈곤, 다섯째 수많은 동식물의 멸종으로 인한 생물 다양성 감소이다. 예를 들어 지구상에는 전력 공급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16억명이 존재한다. 이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값싸고 풍부하면서 깨끗한 에너지원을 찾아내 보급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녹색 혁명’뿐이다. 날로 줄어드는 석유 자원을 둘러싼 경쟁에서 탈피해 청정 에너지의 개발과 보급에 앞장서는 나라가,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에서 중심 국가가 될 것이다.

전에는 IT(정보기술)를 강조하지 않았나? 이제 IT는 가고 ET의 시대가 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새롭게 시작된 에너지 기후 시대(ECE)에 최대의 성장 잠재력을 보유한 산업은 신재생 에너지, 에너지 자원의 효율화, 환경오염 저감 등을 포괄하는 ‘녹색 산업’이다. IT와 ET의 가장 큰 차이는 IT는 휴대전화처럼 존재하지 않았던 효용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가격이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ET의 경우는 이미 제공되어 온 서비스의 에너지원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가격 신호(price signal)가 매우 중요하다.

이미 싼값에 전등을 사용하고 있는데 몇 배 값비싼 태양광 전등을 사라고 하면 안 팔리는 것처럼 수많은 투자와 실험 끝에 새로운 청정 에너지 기술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구매자의 지갑을 열려면 가격이 적절해야 한다. 뜨겁고 평평하고 비좁은 세계에서 개인과 국가가 다투지 않고 잘 살아가려면  ‘에너지 인터넷’이라 불리는 IT와 ET 간의 신융합 기술 개발이 필수적이다. 화석 에너지는 쓰면 쓸수록 가격이 비싸지지만 ‘에너지 인터넷’은 규모의 경제에 의해 갈수록 가격이 떨어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IT 선진국이면서 우수한 인적 자원과 산업 경쟁력을 지닌 한국은 녹색 혁명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고 본다. 더욱이 한국은 석유·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녹색 혁명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 
 
 <코드 그린>의 부제를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라고 했는데.

2005년 펴낸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글로벌 광네트워크와 호환 가능한 소프트웨어의 등장과 확산으로 세계는 높낮이가 없이 평평해지고 있다고 했다. 웹으로 연결된 평평한 세계에서는 지리와 거리, 언어에 상관없이 언제든 실시간으로 개인이 지구촌의 다른 개인과 접속해 지식과 노동, 오락을 공유하면서 한편으로는 경쟁한다. 이는 규제와 통제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수평으로 협력하며 연결된 세상으로 바뀌어간다는 의미이며, 한편으로 중국·인도 같은 개발도상국들이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과 동일선상에서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좁아져가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세계화의 진전으로 미국 중산층의 라이프스타일을 갈망하는 중국·인도 등 개발도상국의 중산층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에너지 수요가 감당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치닫고 있다. 에너지 부족 사태에다 중국, 인도와 바나나 공화국(중남미)의 인구 증가까지 더해져 지구는 폭발 일보 직전에 와 있다. 인구 대국인 중국과 인도가 미국식 발전 전략과 소비 모델을 계속 따라간다면 인류는 환경적 대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전세계가 미국발 금융 위기로 시작된 글로벌 경기 침체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이 위기가 세계화의 결과라는 비판도 있는데 세계화 낙관론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글로벌 경기 침체의 원인이 세계화라고 비판하는 것은 교통사고가 났을 때 고속도로 탓을 하는 것과 같다. 교통사고의 원인은 자동차 운전자들의 판단 때문이다. 세계화로 국경을 넘는 금융 거래가 손쉬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금융 위기의 원인은 세계화가 아니라 경제 주체들의 탐욕(greed)이다. 금융시장을 감시·감독하는 규제의 부재도 원인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집을 사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들이 욕심 때문에 집을 사고, 그들에게 모기지를 주지 말았어야 할 은행들이 다투어 모기지를 주고 월가에서는 리스크를 따져보지도 않고 모기지를 묶어 채권으로 만들어 판 것이 문제이다. 2008년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자연과 시장이 동시에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음을 경고하는 심장마비가 지구촌에 발생한 해이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기상 이변으로 인한 자연재해는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과거에 추구했던 방법으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부터 신작 <코드 그린>에 이르기까지 중산층의 증가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각국의 빈부 격차가 갈수록 커져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만 하더라도 경제 위기 이후 많은 사람이 중산층의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인정한다. 사회주의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가난하게 만들었다. 자본주의는 불균등한 부의 축적을 가져왔지만,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는 기여했다. 특히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에서 중산층의 증가는 두드러진다. 다만, 빈부의 격차가 커지고 있을 뿐이다.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부를 배분해서 소득 격차를 좁히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세계는 평평하다>가 나온 뒤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라는 비판서가 나올 정도로, 쓰는 칼럼과 책마다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비결은 무엇인가?


어떤 주제를 택해야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 논지를 어떻게 전개해야 독자들의 눈길을 계속 잡아둘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한다. 책을 쓰는 데 보통 1년 정도 걸리는데 자료 수집과 정리에 한두 달, 제목을 정하는 데만 한두 달이 걸린다. 글의 힘이나 영향력은 확고한 바탕에서 나온다. 나의 모토는 ‘현장 제일주의’이다. 내 칼럼의 논지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거기에 가지 않아 잘 모르면서 썼다’라는 말은 듣지 않고 싶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만해서는 안 된다. 자만하는 순간 현장에 가지 않고 취재원도 만나지 않게 된다. 지난 3주간 내가 다닌 도시를 보면 파리, 다보스, 이스라엘 요르단강 서안, 암만, 카타르, 뉴델리 등이다. 내 책이나 칼럼에는 실제 경험담,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내가 중국, 인도 등 세계 곳곳에 취재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두고 있다고 여기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다. 뉴욕 사무실에 비서가 있을 뿐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훌륭한 칼럼이란 어떤 것인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반응 중 하나를 얻는 칼럼이다. 첫째 독자가 ‘그건 몰랐네’라고 느끼도록 지식을 알려주거나, 둘째 독자에게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하고 새로운 시각을 알려주는 칼럼. 셋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생각을 대신 정리해주었다’라고 여기게 만드는 칼럼, 넷째 ‘당신과 가족을 모두 죽여버릴거야’라고 할 정도로 논란이 되는 칼럼, 다섯째는 독자를 웃기고 울리는 칼럼이다.

회의 중간에도 수시로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고 기자와 만난 밤늦은 시간에도 자신의 방에서 데스크탑과 노트북 컴퓨터를 켜놓고 글을 다듬고 있는 그를 보며 위대한 칼럼니스트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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