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그네, 아쉬운 ‘고별 합창’
  • 김연수 (생태사진가) ()
  • 승인 2009.03.03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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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꾸룩 꾸룩 꾸욱.” 겨울철새의 낙원 천수만 간월호에서 2백여 마리 남짓한 큰고니(천연기념물 201호)들이 내는 합창 소리이다. 큰고니들은 지금 한창 고향인 시베리아로 먼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한다. 호수를 뒤덮은 물안개 속에서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큰고니들의 우아한 자태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떠올리게 한다. 몇 해 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러시아 볼쇼이 오페라단의 <백조의 호수>를 본 적이 있다. 발레리나의 선녀 같은 율동에 흠뻑 빠져 차이코프스키의 교향악을 매일같이 반복해 듣던 때가 있었다. 그 발레리나의 원조가 바로 큰고니들이다.

흔히 백조라고 부르는 큰고니는 11월 말쯤 되면 러시아 툰드라의 추위를 피해 우리나라 해안가의 호수를 찾았다가, 이듬해 3월에 돌아가는 희귀한 겨울 철새이다. 겨울철이면 수많은 탐조객들이 하얀 천사 같은 이들의 평화로운 춤사위를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갈대밭 속에 위장 텐트를 치고 녀석들이 가까이 접근하기를 기다린다. 뼈 속까지 파고드는 한겨울의 한기에 온몸이 움츠려들다가도 얼어붙은 호숫가에 있던 그 선녀들이 얼지 않은 호수 한가운데로 서서히 움직이면서 하나 둘 입을 모아 노래 부르면, 팽팽한 긴장감과 추위 속에서 느꼈던 지루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곧 이어 <백조의 호수>가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질 테니까….

크기가 1백40cm나 되는 육중한 몸매의 큰고니는 가벼운 새처럼 단숨에 하늘로 날지는 못해. 육상에서 도움닫기를 하듯이 수면 위 4~5m를 박차고 탄력을 받아야 비로소 하늘로 날 수 있다. 큰 비행기에 긴 활주로를 필요하듯이, 대형종일수록 날기 위한  예비동작이 힘차고 웅장하다.

큰고니들을 서울 근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경기도 하남시 팔당대교 주변이다. 100여 마리가 넘는 개체 수가 여기서 월동하는데, 이동기인 3월이 되면 남녘에서 날아온 녀석들까지 합세해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올해는 많은 녀석들이 이미 이곳을 떠났다. 하남시가 정월대보름 행사를 하면서 미사리 습지의 갈대밭을 태워버린 탓이다. 하늘을 뒤덮은 연기와 화기, 그리고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의 함성에 놀라 큰고니를 비롯한 겨울철새들이 황급히 이곳을 떠나버렸다. 갈대, 부들 등 습지의 수생식물들은 큰고니의 주요 먹이인데 한순간의 행사를 위해 겨우내 이곳에서 생활했던 큰고니들을 쫓아버린 것이다.

경남 화왕산 참사에 묻혀 언론의 이목을 끌지 못했지만 미사리의 달집태우기는 큰고니에게는 대참사와 같다.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 선진국들은 새로운 성장 모델로 녹색 정책을 실천하고 있고 우리 정부도 녹색 성장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구호만 요란할 뿐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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