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입’에서 여권 거물도 튀어나올라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3.03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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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여권 핵심 인사 연루 첩보 입수 검찰 관계자 “박연차 리스트 수사 본격화”

ⓒ시사저널 임준선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수사는 3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지난 2월 중순 기자와 만난 대검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해 12월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박회장이 전·현직 정치권 인사들에게 로비를 벌인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검찰은 박회장을 구속한 후 주로 탈세와 뇌물공여 등의 혐의에 대해 집중적으로 수사를 벌여왔다. 이 부분에 대한 수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기업 탈세와 관련해 시쳇말로 ‘사업 하는 사람치고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사람이 있겠느냐’라는 것이 우리 사회 밑바닥에 깔린 정서이다. 박회장 역시 경남 김해 지역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사업을 벌였고,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제법 ‘큰 사업가’로 통한다. 게다가 홍콩과 베트남 등지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명실상부한 중견 기업인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탈세 의혹은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그럼에도 국세청이 지난해 7월부터 11월까지 태광실업에 대해 한 세무조사는 ‘표적 조사’ 논란을 빚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인이라는 원죄 때문에 ‘재수 없게’ 걸려들었다는 동정론까지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의 후원인 3인방으로 불리는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정화삼 전 제피로스 골프장 대표 등이 현 정부 들어 검찰에서 고초를 겪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여하튼, 박회장은 사업 과정에서의 불법성 여부로 검찰의 조사를 받아왔다. 이와 함께 지난해 11월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가 검찰로 넘어가면서 항간에는 ‘박연차 리스트’가 나돌기 시작했다.

박회장이 전 정권과 현 정권, 여당과 야당을 포괄해 정치권 인사들과 두루두루 절친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박연차 리스트’가 나돈 것도 여기서 비롯한다.

‘현재까지’ 없다던 ‘박연차 리스트’ 실체 규명 의지 강해져

박회장은 2000년대 초에 한나라당 재정위원을 맡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에는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 20여 명에게 1억여 원의 정치 후원금을 제공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지난해 총선 직전에도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 4명에게 자신의 최측근인 정승영 정산개발 대표 명의로 수천만 원의 후원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차용증을 받고서 15억원을 빌려주었던 사실이 최근 드러나기도 했다.

그런데 박회장의 로비 정황이 담겨 있는 ‘박연차 리스트’가 실재하느냐는 미지수이다. 여야 정치권 인사들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나기는 했지만, 그것이 어떤 대가를 바라고 준 뇌물인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검찰 역시 “박연차 리스트에 대해 확인된 것이 없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았고, 실제로 존재할 것이라는 관측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지난 2월 중순을 지나면서 또다시 박연차 리스트가 서초동 법조계와 여의도 정가에 나돌았다. 일부 언론에서는 정계 인사들의 이니셜까지 거론했다. 그 가운데 박관용 전 국회의장만이 지난 2006년 한 기관의 연구원장으로 일하면서 박회장으로부터 합법적인 후원금을 받았다고 인정했을 뿐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박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박회장은 검찰에서 리스트가 존재한다고 진술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또다시 ‘리스트’와 관련한 말들이 나돌자 홍만표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은 “세간에서 말하는 ‘박연차 리스트’라고 부를 만한 단서는 현재까지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현재까지’라는 단서를 달았다. 향후 리스트가 나올 가능성은 열어둔 셈이다.

검찰 안팎에서 확인한 바로는, ‘박연차 리스트’의 실체는 아직 안갯속에 가려진 상태이다. 리스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박회장의 진술도 없었고, 검찰이 결정적인 단서도 확보하지도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 의지는 강하다. 지난해 12월 박회장이 구속될 당시만 해도 “리스트에는 관심이 없다”라던 태도였으나, 지금은 바뀌었다. 지난 1월, 이인규 대검 기획조정부장이 중수부장에 임명되면서 분위기가 상당히 바뀌고 있다. ‘박연차 리스트’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의지가 강해졌다는 말이 중수부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이다. 리스트에는 다수의 정계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박회장이 입을 열어야만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검찰은 박회장의 ‘무거운 입’을 열기 위해 다양한 압박 카드를 쓰고 있다. 우선 박회장의 가족뿐 아니라 측근들에 대해 광범위한 계좌 추적을 벌이고 있다. 태광실업 등에서 압수한 물품에 대해서도 정밀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

특히, 박회장의 자녀가 회사의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는 전언이다. 박회장을 대신해 태광실업 전무로 회사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박회장의 큰딸을 출국 금지해놓고 소환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 정치권 인사들과의 교류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통화 내역까지 분석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박회장의 홍콩 현지 법인인 APC의 배당 수익 6백85억원의 사용처를 추적하고 있다. 전방위로 박회장을 조여가고 있는 형국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기업인 통해 유력 정치인에게 거액 전달”

검찰의 또 다른 관계자는 “중수부가 박회장 수사뿐 아니라 노무현 정부 당시에 수사하다 종결했던 사건들에 대해서도 다시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거 10년 동안 급성장했던 기업들에 대한 조사도 벌일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래서 검찰 내에서는 중수부 검사와 수사관들은 앞으로 6개월 동안 집에 못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대검은 최근 박연차 사건과 관련해 ‘특급 첩보’를 입수했다. 첩보 내용은 이렇다. “노무현 정부 시절, 박회장은 자신과 상당히 가까운 지인들에게 ‘내가 기업인 ㄱ씨를 통해 유력 정치인 ㄴ씨에게 거액을 주었는데, ㄴ씨는 그 돈을 특별당비로 냈다’라고 말했다. 당시 박회장은 ㄱ씨에게 거액을 주며 차용증을 받아두었다. 그런데 거액을 받은 유력 정치인 ㄴ씨는 현재 ‘여권 핵심 인사’이다.” 

공교롭게도 기업인 ㄱ씨는 요즘 나도는 ‘박연차 리스트’에도 오르내리는 인물이다. 일각에서는 여권에서 ㄱ씨를 경계하고 있으며, 심지어 ‘청와대 출입 금지령’까지 내려졌다는 소문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이와 관련해 사정 기관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해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ㄱ씨를 조사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ㄱ씨는 박연차 사건뿐 아니라 다른 이권 개입 의혹들에도 연루되어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설사 검찰이 ㄱ씨를 조사하더라도, 현재의 ‘여권 핵심 인사’ ㄴ씨에 대해서는 조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ㄴ씨가 여권의 거물급 인사여서 검찰이 조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 이 관계자의 관측.   

대검이 입수한 첩보 내용이 사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검찰의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수사 의지가 강해진 만큼, 이 첩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이와 함께 검찰이 굳게 닫힌 박회장의 ‘입’을 통해 항간에 나도는 리스트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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