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TV 끄고 당장 움직여라
  • 김태형 (의료 전문 프리랜서) ()
  • 승인 2009.03.03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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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비만, 약도 수술도 ‘무용지물’식사와 운동이 ‘모범답안’…‘밥 먹기 전 물 한 잔’도 효과적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 하계동에 사는 차 아무개씨(38)는 최근 2년 사이 몸무게가 갑자기 20㎏이나 불어난 아들 석주(가명·12)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며칠 전에 찾아간 비만 전문 클리닉에서는 ‘고도 비만’이라는 진단까지 받았다. 담당 의사는 “석주의 경우 지방간은 물론 간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간 섬유화가 이미 간문맥까지 진행되었다. 비만으로 생긴 지방간과 간 섬유화를 방치할 경우 어른이 되었을 때 간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석주처럼 10대 비만으로 고민하는 소아·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07년 국민건강 영양조사에 따르면 만 2~18세 소아·청소년 10명 중 1명(10.9%)은 체질량지수(BMI)가 25 이상인 비만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장 비만 유병률이 높은 남자 중·고등학생(12~18세)의 경우 10명 중 1.8명이 비만으로 조사되어 같은 또래 여자들(1.2명)보다 더 심각했다.

BMI란 키와 몸무게로 산정한 비만 판정 지수로 25 이상은 비만, 30 이상은 고도 비만, 35 이상은 초고도 비만으로 분류된다. 키 1백65㎝, 몸무게 90㎏인 석주의 경우 BMI 33.1로 초고도 비만에 육박하는 만큼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한 상태이다.

비만 전문가들은 개인마다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BMI 30 이상일 경우 전문 비만클리닉을 찾아 식이요법과 운동요법 등 체계적인 관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비만에 대해 정확한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 살이 찌는 원인은 크게 유전적인 원인과 환경적인 원인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밖에도 심리적인 요인이나 질병 및 약물에 의한 경우도 있다. 특히 부모가 모두 비만일 경우 자녀가 비만이 될 확률이 80%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프랑스 농공학자인 피에르 베일은 <빈곤한 만찬>이라는 책에서 “당신이 뚱뚱한 것은 당신만의 책임이 아니다”라면서 비만의 원인을 유전자에서 찾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잘 먹는  데 비해 운동량이 부족한 경우를 비롯해 환경적 요인이 비만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교 체육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실외보다 실내에서 생활하는 비율이 높다 보니 10대나 젊은 층의 비만이 자연히 늘어났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성장기 비만의 주범

학교 성적과 입시로 인한 과다한 스트레스도 10대 비만의 주 원인으로 꼽힌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호르몬을 배출하는데, 이 호르몬은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도록 조절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너무 많이 분비되면 신체의 리듬을 비정상적으로 만든다.

한의사 박해웅 원장(하늘토한의원)은 “코르티솔은 각성제와 비슷한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밤에도 잠이 들지 않는 각성 상태를 일으키고 몸에 있는 지방을 저장하게 만들어 비만의 원인이 된다”라고 지적했다.

간혹 특정 질병 때문에 비만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갑상선기능저하증이나 부신피질 과다분비증에 걸리면 많이 먹지 않아도 살이 찐다. 아무리 먹어도 배고픔을 느끼는 프래더윌리증후군 환자는 비만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이런 경우에는 식이요법이나 운동으로 살이 빠지지 않으며 관련 질환을 근본적으로 해당 병을 치료해야 한다.

BMI는 ‘정상’인데 체성분검사 결과 비만으로 나오는 이른바 ‘마른 비만’ 환자의 경우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성장기 어린이는 살이 찌면 체지방 세포에서 분비되는 렙틴이 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성장 발육에 지장을 주는 성조숙증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소아나 청소년 등 젊은 층의 비만은 약물 치료나 지방 흡입, 베리아트릭(Bariatric) 수술 등 인위적인 방법보다는 식사량 조절, 운동요법과 같은 생활교정요법을 통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연스럽게 살을 빼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비만으로 판정된 뒤 의사들에게 처방받아 먹을 수 있는 약으로는 식욕억제제나 지방분해효소억제제가 있다.

독일계 다국적 제약회사 크놀이 만든 ‘리덕틸’은 뇌를 속여서 배고픔을 못 느끼게 하는 원리를 적용했고, 스위스 로슈가 개발한 ‘제니칼’은 지방을 소화하는 효소인 리파아제의 기능을 억제해 살을 뺀다. 두 약 모두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한국 식약청의 판매 승인을 받았고, 국내 제약사에서도 이와 약효는 비슷하고 가격은 저렴한 제네릭(복제약)을 만들어 판매 중이다.

그러나 이런 약물요법을 소아·청소년에게 처방하면 성장 장애 등 각종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때문에 보건 당국은 지방흡수억제제는 12세 미만, 식욕억제제는 16세 미만에게 처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인풋 줄이고 아웃풋 늘려야

▲ 어린이 건강교실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비만을 해소하는 데 효과적인 체조를 배우고 있다. ⓒ연합뉴스

비만 치료법은 병원보다는 집과 학교에 있다. 너무 뻔한 답이지만 어쩔 수 없다. 소아나 10대의 비만은 식사와 운동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비만 전문가들은 ‘인풋(input)은 줄이고 아웃풋(output)을 늘려라’라는 말로 설명한다. 결국,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라는 얘기이다.

하지만 먹는 것을 조절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식욕이 가장 왕성한 시기이면서도 자기 절제력은 턱없이 부족한 10대 아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럴 때는 식사량을 무턱대고 줄이기보다 과식과 폭식, 각종 인스턴트 음식과 군것질을 줄이는 방법을 써야 한다. 먹는 시간을 정해 그 시간에만 먹고, 저녁보다는 아침을 든든히 먹는 것이 좋다.

식사 전에 ‘물 한 잔’을 먹는 것도 과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밥 먹기 전 물 한 잔은 식사량을 줄이는 효과와 함께 체내 지방을 분해시키는 역할도 한다.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박혜순 교수(울산대 의대)는 “고기는 소갈비보다는 등심이나 살코기 위주로 먹고, 돼지고기도 삼겹살보다는 역시 살코기 위주로 먹는 것이 좋다. 생선은 통조림을 피하고 기름이 들어간 요리, 즉 튀김·볶음·부침 등은 적게 먹어야 하며 잡곡밥, 신선한 채소, 김치, 나물, 해조류는 좋다”라고 권했다.
먹는 것을 줄였다면 활동량은 늘려야 한다. 조금만 멀어도 자동차를 타거나 운동장보다 집이나 PC방에서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보는 습관은 비만 체형을 만들 뿐이다. 학교가 가까우면 걸어가고 조금 멀 경우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고 공부할 때도 1시간마다 일어나서 움직여주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비만일 경우 걷기, 속보, 자전거 타기나 수영처럼 심폐기능을 높여주는 운동이 좋다. 운동 시간은 1회에 30~40분 정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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