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간’ 앓는 10대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3.03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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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 비만은 건강·성장·학업·운동·정신 등에 여러 가지 장애를 일으킨다. 그 심각한 실상을 들여다보았다.

ⓒ시사저널 이종현

최근 초등학교 5학년인 임만준군(12·가명)의 부모는 아들의 몸무게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불과 1개월 사이에 3kg이 늘어나 60kg을 넘겼기 때문이다. 임군의 아버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많이 먹으면 ‘키가 크려나 보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1월 병원에서 ‘잠복고환’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까지 받은 후부터 아이 체중에 민감해졌다. 잠복고환은 고환이 몸 밖으로 나오지 않은 상태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살이 찌면서 고환이 몸 안으로 더 밀려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또, 검사 과정에서도 체중 관리를 해야 한다는 진단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성장기 젊은 층 비만의 심각성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1994년 대한소아학회 보건위원회 보고에 따르면 서울 시내 초·중·고등학교 고도 비만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고콜레스테롤증이 48.1%, 지방간이 38.6%, 고혈압이 7.4%, 당뇨병이 0.4%로 전체 대상자 중 78.7%에서 한 가지 이상의 합병증이 발견되었다.

최근 성장기 비만의 심각성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이유는 막연하게 추측했던 비만의 폐해가 여러 가지 장애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전문의들의 소견을 종합해보면 성장기 비만은 크게 5가지 장애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건강 장애·성장 장애·학업 장애·운동 장애·정신 장애 등이다.

특히 최근 서울대병원이 발표한 연구 결과는 성장기 비만으로 인한 건강 장애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평균 연령 12세 비만아 80명을 대상으로 검사한 결과 전원 지방간이 발견되었다. 또, 일부에서는 지방간염까지 확인되었다.

서정기 서울대병원 소아소화기학과 교수는 “비만아 4명 중 1명에 해당하는 22.5%에서 단순 지방간(simple steatosis)이 발견되었고, 77.5%에서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도 발견되었다. 지방간이 모두 지방간염·간경화·간암으로 진행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지방간에 염증세포가 침윤해서 지방간염으로 발전하고 섬유화가 되어 간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지방간 환자의 20%가 간경화로 진행된다는 사실도 최근 밝혀졌다. 간과해서는 안 될 수준이다”라며 성장기 비만에서 생기는 지방간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실제 미국 등 서양에서는 지방간을 간경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가까운 미래에 비알코올성 지방간에서 진행된 간경변이 증가할 수 있다.

대한간학회 자료에 따르면 20년 전인 1987년에는 지방간 환자가 성인 10명 중 1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성인 남성 10명 중 4명에게서 지방간이 나타난다. 특히 여성과 20대 젊은 층 환자의 증가가 눈에 띈다. 여성 10명 중 1명, 20대 10명 중 2명이 지방간이다. 과거와 달리 음주와 무관한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비만을 가장 먼저 꼽는다.

또 최근 보고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만인 사람의 30~90%에는 지방간이 있으며, 지방간 환자 중 10~20%는 지방 간염에 걸린다. 이들 중 3~5%는 간경변으로 이어진다. 극히 일부는 간암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윤중원 강북삼성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우리나라 인구의 18%가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방간과 간암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서양에서 간암의 원인으로 C형 간염에 이어 비알코올성 간경변을 꼽고 있는 만큼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잘 치료해야 하는 이유는 당뇨·고혈압 등 대사증후군과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잠 못 자서 키도 안 크고, 공부도 안 되고…

비만은 단순히 잉여 에너지를 체내에 비축하는 것이 아니라 인슐린 저항성(insulin resistance)을 증가시킨다. 즉, 당뇨의 위험성이 커지는 것이다.

성장기 비만은 성장 장애도 일으킨다. 수면이 성장에 중요하다는 사실은 다 알고 있다. 잠을 잘 때 깊은 수면과 얕은 수면을 반복하는데, 깊은 수면 상태에서 성장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된다. 그러나 성장기 비만아는 체중 때문에 수면 중 무호흡증에 걸릴 수 있으며 자주 뒤척이기 때문에 수면의 질도 나쁘다. 비만이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이유이다. 또, 체중이 무릎 성장판을 압박해 성장세포 분열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동 장애도 생긴다. 늘어난 지방을 유지하기 위해 발달하는 근육이 주로 붉게 보이는 근육인 적근이다. 적근은 발달하면서 점차 부피가 커지고 당분을 에너지로 삼기 때문에 더 많은 탄수화물을 요구하게 된다. 순간적인 힘은 쓸지 몰라도 지구력은 없어진다. 이로 인해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유산소 운동은 30분도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뚱뚱하면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비만이라고 해서 공부를 못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지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뇌는 당분을 에너지로 사용하므로 양질의 탄수화물을 적절히 공급해야 한다. 그러나 비만 상태에 놓이면 더 많은 탄수화물을 섭취하기 위해 초콜릿, 과자, 빵을 항상 찾게 된다. 부족하면 짜증이 나고 게을러지므로 공부에 지장을 받게 된다. 또, 뚱뚱하다는 콤플렉스로 인한 스트레스로 공부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성장기 비만은 정신 장애도 동반한다. 지난 1월 부산에 사는 한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 방문에 넥타이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여학생은 자신의 키가 작은 데다 체중이 70kg이나 나가는 것을 고민해왔으며 체중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낙심했다고 한다. 결국, 비만이 죽음을 부른 것이다.

▲ 텔레비전을 보면서 과자를 먹는 어린이. 과다한 음식 섭취와 운동 부족은 비만의 주된 원인이 된다. ⓒ시사저널 박은숙

성장기는 ‘증식형 비만’이어서 문제 더 심각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비만 청소년은 또래 집단에 잘 섞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게으르거나 못생겼다는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다. 왕따에서 우울증까지 겹치면 심각한 정신 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이처럼 심각성이 매우 복잡하게 나타나지만 성장기 비만의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칼로리 섭취량은 많은데 운동 부족으로 배출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많이 먹고 운동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첫 번째가 음식을 습관적으로 먹고 체내에 저장하려는 유전적 본능이다. 이런 본능이 식문화가 풍부해진 현대 환경과 맞아떨어져 비만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다시 말해, 유전적으로 비만 형질을 가진 청소년은 환경적인 영향까지 받아 비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환경적인 영향은 신체적 움직임이 거의 필요하지 않는 현대적 생활 습관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TV, 컴퓨터, 게임기 등에 빠져 움직임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음식물을 계속 섭취하는 것이다.

2006년 초·중·고생의 체력급수가 2000년과 비교해 1급은 약 3%, 2급은 약 5% 줄어든 반면, 4~5급은 9% 이상 증가하는 등 나빠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경훈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교수는 “술래잡기 놀이는 한 시간에 5백㎈를 소모하지만 TV 시청은 한 시간에 15㎈ 정도만 필요하다. 아이들이 방과 후 자동차로 학원으로 이동해 하루 종일 앉아서 생활하지만 섭취하는 칼로리는 과거보다 크게 늘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먹는 양을 줄여서 비만을 치료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성장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지 못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장기 비만은 성인 비만과 달리 치료해야 한다. 성인이라면 먹는 양을 줄여 체중을 조절해도 좋지만, 청소년은 신체적으로 성장을 해야 하므로 식사량을 줄이기보다는 운동으로 치료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체중을 줄이더라도 너무 갑작스레 줄이면 지방간에 섬유화가 생길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따라서 1주일에 0.5kg, 또는 6개월 동안 체중의 10%를 줄이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성장기 비만을 피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지방세포에 있다. 성인 비만은 지방세포가 커지는 ‘비대형 비만’이다. 그러나 성장기 비만은 지방세포가 커지면서 세포 개수도 늘어나는 ‘증식형 비만’이다. 근육 세포는 아무리 발달시켜도 커지는 데 한계가 있지만 지방세포는 계속 발달한다. 지방세포가 성장기에 늘어난 데다 성인이 되어 커지기까지 하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의사와 상담한 후 약물로 비만을 치료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미성년자에게 약물 사용을 금했지만 최근에는 약한 약부터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산화 작용을 막기 위해 비타민E가 주로 쓰인다. 비타민C도 효과가 있다는 설이 있지만 아직 명확하게 검증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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