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은 노·사·정 결실을 보고 싶다
  • 전남식 편집국장 (niceshot@sisapress.com)
  • 승인 2009.03.03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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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이 11년 만에 또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4자 형태의 틀을 갖추었다. 오로지 성장만 거듭하며 몸집을 불려왔던 한국 경제가 IMF 환란으로 한순간 허물어졌을 때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한 번 버린 몸, 또 버리기 쉽다”라는 자기 환시적인 불길한 예언까지 쏟아내며 몸서리를 쳤던 게 불과 엊그제였던 것 같다. 세계 경제가 깊숙한 수렁으로 빠져들면서 당시의 악몽이 다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앞집 청년, 이웃집 아저씨, 옆집 아줌마가 일자리를 잃고 불황의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가 가만히 있을 수 없고, 노동자든 사용자든 방관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위기가 다가왔음을 알리는 메시지를 접한 듯하다.

그러나 모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벌써부터 노사가 자신들이 제시한 타협안을 놓고 옥신각신하며 삐걱대고 있다. 우리의 노사 문화는 타협의 기술에 약하고, 상생의 모드에는 여전히 미숙하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역학 관계가 상당한 균형을 이루었음에도 이들의 협상 전략에는 양보와 배려의 룰을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운동이 독재와 반독재, 민주와 반민주의 이분법 구도에 의한 흑백 논리에 편승해 곡절을 겪은 때문인지, 아직도 무조건 이기고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승리 지상주의에 푹 빠져 있다. 그렇다 보니 서로 타협의 기회를 갖기란 쉽지 않았고, 상생은 노사 양측에 싸움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쯤으로 여겨진다.

지난 환란 당시의 노·사·정이 국민적 기대를 저버리고 흐지부지되었던 것도 이렇듯 일그러진 노사관의 탓이 크다. 만일 네덜란드의 ‘바세나 협약’처럼 노사가 모든 기득권을 내놓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면 지금도 그 기능을 살려 난세를 좀더 순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는 제 몫을 내놓지 않겠다고 버티고, 노동자는 제 몫을 챙겨주지 않는다고 뛰쳐나가 판을 깨버렸다. 노와 사가 떠난 그 공간을 몇몇 시민단체들이 독차지했고, 이들이 이념 논쟁을 펼쳐가며 ‘시민 없는 시민운동’을 주도했던 과거는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노·사·정 만남의 의미는 크다. 모든 국민이 참여해서 각자의 이해를 털어놓고 절충점을 찾는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노·사·민·정은 각계각층의 고충을 해결하고 희망과 비전을 내놓아야 할 대표들이다. 자신이 대표하는 국민의 관심사와 욕구를 충실하게 수렴해 테이블에 올려놓고 상생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 비록 타협안 자체가 구속력이 없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의제는 얼마든지 다루어 공론화할 수 있다. 당장 잡셰어링(Job Sharing)이나 워크셰어링(Work Sharing)이 신입 직원 또는 비정규직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식으로 벌어지는 불합리를 바로잡아야 한다. 사용자와 노동자라면 누구나 공평하게 고통을 분담하게 해야 한다. 여기에는 민주노총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야만 너와 나는 물론 우리의 이웃을 위기에서 탈출시킬 수 있다. 노·사·정의 만남이 이번에도 허울 좋은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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