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담’의 화려한 부활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3.10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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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라디오 등에서 웃음·재미 이끌어내며 각광

▲ 지난 3월4일 KBS 공개홀에서 녹화가 진행되고 있다. ⓒKBS 제공

만담(漫談)이 웃음을 주는 수단으로 다시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만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장소팔·고춘자 콤비이지만 이들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만큼 오랫동안 귀퉁이에 버려져 있던 만담이 다시 웃음 전장의 최전선에 진입했다.

만담의 새로운 선두 주자는 KBS 2TV <박대박2>의 박영진·박성광 콤비와  SBS라디오 파워FM <두시 탈출 컬투쇼>의 정찬우·김태균 콤비이다. 이들 외에도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 <DJ변> <그냥 가> 등에서 만담은 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박대박2>은  합을 맞추어 주고받는 빠른 템포의 대화 속에 짜임새 있게 구성된 내용을 전달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는 만담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박영진의 뻔뻔한 우격다짐에 외모만으로도 억울해 보이는 박성광이 당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피할 수 없다.

만담 형식 <두시 탈출 컬투쇼>, 청취율 1위

목소리 크고 뻔뻔한 놈이 약한 상대를 핀치로 몰아가는 모습에도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것은 박영진이 부리는 억지가 말이 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대화의 합이 잘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학 신입생으로 만나 10년을 같이 살며 개그를 준비해온 박영진·박성광의 빛나는 콤비 플레이도 한몫한다. 두 만담꾼 중 어느 한쪽이 주춤하거나 실수를 하면 만담의 재미가 살지 않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도 만담은 웃음의 도구로 자주 이용된다. SBS의 <패밀리가 떴다>에서 ‘덤 앤 더머’로 불리는 MC 유재석과 빅뱅의 대성은 만담 형제라는 애칭을 얻었으며, 이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한 배우 차태현과 빅뱅의 탑이 보여준 만담은 화제를 불러모았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만담의 약진이 더욱 뚜렷하다. 음악보다 DJ가 진행하는 비중이 더 높아가고 있는 라디오에서 더블 DJ 체제의 프로그램이 많아진 것도 두 명의 진행자가 펼치는 대화가 주는 재미에 대중들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특히 <두시 탈출 컬투쇼>는 개그맨 정찬우와 김태균 콤비가 늘어놓는 만담이 주는 웃음의 힘으로 몇 년째 청취율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두시 탈출 컬투쇼>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으로 스튜디오에 청취자가 입장한 상태에서 진행된다. 이들 앞에서 두 명의 개그맨 출신 DJ가 진행하는 모습은 공개 코미디 녹화 현장을 옮겨놓은 듯하다. 청취자들이 보내주는 다양한 사연은 이들의 만담을 풍요롭게 해주는 소재의 창고이다.

만담은 슬랩스틱과 콩트가 주류를 이루던 시절 공개코미디의 등장으로 말을 통한 스탠드업 코미디가 주목을 받으며 인기를 누렸다. 초반의 만담에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를 활용하거나 비슷한 발음의 단어를 사용한 가벼운 말장난이 많았지만, 최근의 만담에서는 억지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일종의 궤변 개그가 주를 이룬다. 이 중에는 음식값을 더 받으려는 악덕 주인의 억지(<그냥 가>)도 있지만, 당연하다고 여긴 사실을 한 번쯤 뒤집어서 생각하게 하는 억지(<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 <박 대 박2>)도 있다. 만담의 부활을 주도하고 있는 개그 코너에서 풍자 개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되는 것은 바로 인식의 전환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담이 가벼운 말장난을 넘어 힘을 가지려면 풍자라는 요소가 필수적이다. 온갖 개그 장르 중에서 시사와 세태를 풍자하는 데 가장 적합한 도구가 만담류의 말 개그이기도 하다. 대중문화가 정치적으로 억압을 받던 제5공화국 시절에도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등을 통해 풍자 개그를 시도했던 고 김형곤이 스탠드업 코미디를 통한 말 개그를 끊임없이 시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시사와 세태 풍자에 적합

김웅래 인덕대 방송연예과 교수는 “정치 상황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를 뒤트는 지적인 말 개그에 호감을 가지곤 한다. 말 개그가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말 개그를 선호하는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시사·뉴스 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소재와 표현의 제약은 풍자 개그, 말 개그, 만담의 부흥을 가로막고 있다. 표현이 조금만 선정적이거나 욕설이 나오면 언론이나 각종 단체에서 들고 일어난다. 시사를 건드려도 조금 강하게 풍자하면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쪽에서는 난리가 난다.

개그맨 박영진은 “개그가 좀더 발전하려면 포용력이 넓어져야 한다. 개그는 개그일뿐이라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되면 개그맨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조금씩 더 늘어나고, 시청자들에게 줄 수 있는 웃음도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개그콘서트>는 신구 개그맨의 조화 속에 꾸준히 새로운 스타를 배출하고 있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개그맨은 개그맨 박영진이다. 10년 지기이자 개그 콤비인 박성광에 묻혀 있다가 조금 늦게 개그 본능이 폭발했다. <박 대 박1, 2>에서는 박성광과 <봉숭아학당>에서는 허경환과 함께 만담 개그의 부활을 이끌고 있는 박영진을 <개그콘서트> 녹화 직전 만나보았다.

 

박영진 개그의 웃음 코드는 무엇인가?

말도 안 되는 것을 말이 되는 것처럼 우기는 것. 굳이 정의하자면 억지 코드가 아닐까 한다.

<박 대 박1, 2>를 보면 만담이 떠오르는데.

박영진·박성광의 개그가 장소팔·고춘자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는데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처음에 짤 때도 만담 형식은 아니었다. 박성광과 10년을 함께 동고동락하다 보니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만담 같은 대화가 이루어졌고, 그것이 개그로 발현된 것이다.

평소 대화가 만담 같다는 것인가?

개그맨을 꿈꾸던 시절부터 한 명이 ‘저게 뭐야’ 하고 상황을 만들면 ‘뭔데’ 하고 되묻기보다는 ‘어, 저거는…’ 하고 되받아치고는 했다. 일상생활이 연습이고 아이디어 회의였다.

매주 만담 개그를 구성하는 것이 어렵겠다.

개그를 짜면서 어려운 것은 항상 새로운 웃음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재에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아 어렵다. 계속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 <박 대 박>은 비주얼보다 대화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소재를 공유하는 등 선배와 제작진의 도움을 받다 보니 1년 가까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대중들이 왜 만담 개그를 왜 좋아한다고 생각하나?

취향 문제이다. 동방신기와 빅뱅 모두 최고의 가수이지만 어느 한쪽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 아버지는 아들이 출연함에도 <박 대 박>보다 <달인> 같은 몸 개그와 분장 개그를 더 좋아한다.

만담류의 말 개그를 고급, 슬랩스틱류의 몸 개그를 저질로 평가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고급과 저질로 나눌 것이 아니라 각각이 개그 장르의 하나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김치를 싫어하는 분에게 김치 안 먹는다고 한국인이 아니라고 할 수 없듯이 개그도 장르의 다름을 옳고 그름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개그콘서트>가 인기를 잃지 않는 이유도 조합이 잘되어 있기 때문이다. 슬랩스틱, 말 개그, 분장 개그, 캐릭터 개그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어우러져 있다.

만담 개그에 담고 싶은 내용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내용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너무 무리해서 시사나 세태 풍자로 가기보다는 웃음을 준다는 큰 전제 하에 시사와 세태에 대한 문제들을 녹여가고 싶다.

앞으로도 만담 같은 말 개그를 계속할 생각인가?

여러 장르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지만 말로 하는 개그도 계속해서 시도할 것이다. 박영진만의 개그 색을 가지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심형래·이주일 선배님처럼 딱 봤을 때 ‘저건 박영진 개그야’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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