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를 두려워 마세요”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3.10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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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성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 / “일부 의사들과 언론이 위험 과장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누구나 한 번쯤은 식도를 타고 넘어온 신물을 되삼키거나 속이 쓰린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위장(胃臟)질환이 흔하다는 이야기이다.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위염, 위궤양, 역류성 식도염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헬리코박터가 위암, 위염, 위궤양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위장질환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지고 있다.

송인성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는 속이 좋지 않다고 해서 모두 위장질환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또, 헬리코박터를 무조건 없애야 한다는 일부 의사들의 견해도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내 위장질환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로 여겨지는 송교수로부터 최신 치료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위장질환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에서는 1930년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위장질환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80년대 냉장고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위장질환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음식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과거처럼 염장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소금 소비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위장에 탈이 나는 일도 줄어드리라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짜고 맵게 먹는 식습관에 변화가 없어서 그런지 위장질환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위장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저염식을 해야 한다. 하루 5g 이하의 소금 섭취를 저염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20g을 소비한다. 일본인도 우리처럼 짠 음식을 먹지만 먹는 양이 적다. 게다가 우리는 국과 찌개를 좋아한다. 소금이 듬뿍 녹아 있는 국에 밥까지 말아먹으니 위에 좀더 많은 부담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평소 위장에 또 하나의 뇌가 있다고 말하는데.

위장에도 뇌에서 발견되는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이 거의 있다고 보면 된다. 뱃속의 이런 물질들이 머릿속의 같은 물질들과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해서 위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한다. 한마디로 머리가 위장을 지배하고 위장도 머리를 조절한다고 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많고 복잡한 현대 생활에서 위장질환이 많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 병에 걸리지 않았는데  증세만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종의 심리적 장애라고 할 수 있다.

병은 없는데 증세만 나타나는 경우란?

대표적으로 비궤양성 소화불량을 들 수 있는데, 흔히 말하는 신경성 증세이다. 속 쓰림을 호소하는 환자의 위장을 내시경으로 살펴보면 정상인 경우가 많다. 아무 이상이 없다고 알려주면 환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속이 편해졌다면서 병원을 나선다. 하루에 1백50명 환자를 진료해보면 한 100명은 그런 환자이다. 일부는 그래도 속이 쓰리니 약이라도 처방해달라고 한다. 그런 환자에게 신경안정제만 주어도 며칠 후면 속 쓰림이 없어졌다면서 감사해한다. 

복통을 일으켜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는가?

조사를 해보니, 복통으로 응급실에 온 환자의 절반은 가벼운 식중독이나 월경통에 걸린 경우였다. 또, 처음에는 심각한 것 같아 입원한 환자 중에서도 절반은 사실 입원까지 필요 없는 가벼운 증세였다. 집에서 갑자기 복통이 생기면 당황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병원 응급실로 달려갈 것이 아니라 조금 지켜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증세가 호전된다. 갈수록 복통이 점차 심해지거나 구역·구토·고열을 동반하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최근 위식도 역류질환(GERD)이 늘었다는데.

위산이나 내용물이 위에서 식도로 역류하는 위식도 역류질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식도 손상이다. 위는 위산에 견디도록 되어 있지만, 식도는 그렇지 않다. 역류된 위산으로 식도에 미란성 궤양이 생기는 것이 역류성 식도염이다. 일부 의사들은 환자가 목이 아프다고 하면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내시경으로 확인해보면 식도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비미란성 역류질환(NERD)인 경우가 많다.

정확한 진단은 산도를 측정하는 ‘24시간 pH모니터링’으로 할 수 있다. 그 결과를 증세에 따라 A등급부터 D등급까지 분류하는데, 가장 심한 D등급은 거의 없으며 가장 약한 A등급도 많지 않다. 특히 서양인처럼 궤양이나 협착을 동반한 심한 역류성 식도염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서양인보다 우리나라 사람의 식도가 강하기 때문인가?

그렇게 추정하고 있다. 서양인이든 한국인이든 위산은 역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슴이 타는 느낌의 심각한 흉부 작열감(heartburn)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증상의 역류성 식도염이 서양인에 비해 훨씬 적다는 말이다.

원인을 분석해본 결과, 우선 식도와 위 사이에서 역류를 막는 하부식도 괄약근의 압력, 산도(pH), 식도의 연동운동, 침의 중화작용 등은 서양인과 비슷했다. 하지만 항암 작용이 있다는 마늘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한국인의 식도 점막이 유달리 강하다. 점막의 방어기전이 좋기 때문에 위산이 역류해도 잘 견뎌내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식도 점막이 강한 이유를 밝혀내면 관련 질환 치료에 도움 되지 않을까?

좋은 지적이다. 과학적 근거를 확인하면 역류성 식도 질환에 대한 예방 또는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위산 역류를 막는 하부식도 괄약근을 치료할 수는 없는가?

위의 내용물이 식도로 역류하는 것을 막는 일종의 밸브 역할을 하는 것이 하부식도 괄약근이다. 어떤 이유로든 하부식도 괄약근이 느슨해지거나 장시간 열리면 위산이 식도로 역류한다. 비만이나 임신으로 배에 압력이 높아지면 위산이 역류하기 쉽다.

아쉽지만 이런 하부식도 괄약근을 치료할 방법이 없다. 다만, 역류하는 위산을 중화시키는 약을 사용해서 식도를 보호하는 치료를 하고 있다. 신물이 역류하더라도 맹물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위장질환이 암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환자들이 많다.

역류성 식도염을 오래 방치하면 궤양이 생겨 출혈할 수 있고, 식도가 협착되어 음식을 삼키기 어렵게 된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식도 조직이 위장의 상피세포처럼 변하는데 이를 바렛 식도(barrett’s esophagus)라고 한다. 바렛 식도가 10년 이상 되면 10명 중 1명은 암에 걸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바렛 식도를 암 전 단계라고 하는데, 사실 그렇게 흔한 경우가 아니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만성 위염도 꼭 위암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만성 위염이 암의 전 단계라며 환자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복시 속 쓰림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그럴 때 물만 마셔도 증세가 가라앉는다. 위궤양의 전형적인 증세이다.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서 느끼는 속 쓰림은 위궤양이 아닌 경우가 많다. 호르몬제, 아스피린, 관절염약, 비스테로이드성 진통제 등을 장기 복용하는 사람 10명 중 1~2명에게는 위궤양이 있다. 이런 약들로 인해 위궤양이 생겨도 통증을 느낄 수 없어서 병이 심해질 때까지 발견하지 못하기도 한다. 다행히 위궤양 치료제는 1970년대 초 개발된 이후 발전을 거듭하면서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다. 

약물로 치료되지 않는 경우는 없나?

약을 6~8주 정도 사용하면 위궤양 환자 10명 중 9명은 완치된다. 그런데 약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암을 의심해야 한다.  만일 암이 아니라면 천공성 위궤양일 수 있다. 위궤양을 적절한 시기에 치료하지 않아 궤양이 터지는 경우를 말한다. 이 정도가 되면 수술로 치료해야 한다.

위장질환의 주범으로 헬리코박터를 지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헬리코박터는 위염 및 위궤양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인과관계를 연상할 필요는 없다. 헬리코박터가 있으면 위염에 걸릴 수 있지만, 이 균이 없어도 위염에 걸린다. 우리나라 인구의 70~80%가 헬리코박터에 감염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 중 1%만 위궤양을 앓고 있다. 위궤양 환자의 70~80%에게서 이 균이 발견되었다. 따라서 헬리코박터를 치료하면 위궤양 환자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지만 사실은 별 차이가 없었다.

씨 뿌린 데서 다 싹이 나는 것이 아니다. 토양과 공기가 잘 맞아야 싹이 나는 것처럼 체질적으로 위궤양에 걸릴 조건에 놓여 있는 사람이 헬리코박터에 감염되면 위궤양에 잘 걸린다.

분명한 것은 재발률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십이지장궤양의 경우, 궤양 치료제로 치료한 후 1년 내에 재발률이 70~80%에 이른다. 그러나 헬리코박터를 없애버리면 재발률이 10%로 뚝 떨어진다.

건강하다면 헬리코박터를 치료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건강 검진을 받고 헬리코박터가 있다고 하면 꼭 치료해야 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50~60대의 연령층에서는 이 균이 흔히 발견된다. 그렇지만 그들이 모두 위염이나 위궤양 등 위장질환을 앓지는 않는다. 일부 의사들과 언론이 헬리코박터의 위험을 과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마치 위장질환과 암의 주범으로 몰아가 불안감을 조성하는 측면이 있다. 환자의 나이가 50세 이상이라면 굳이 균을 없애려고 할 필요가 없다.

위점막의 림프조직에 생긴 림프종(MALToma)이나 초기 위암을 내시경으로 절제한 경우에 헬리코박터를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헬리코박터는 슈퍼박테리아처럼 내성이 생겨 정작 필요한 때에 제거되지 않는다. 따라서 암 예방을 위해 헬리코박터를 없앤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위궤양을 앓았던 사람에 한해 헬리코박터를 없애라고 권하고 싶다. 

소화불량에서 벗어나기 위해 헬리코박터를 없애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헬리코박터를 없애서 만성 위염을 치료해도 소화불량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 헬리코박터를 없앤 환자 그룹과 그렇지 않은 환자 그룹을 비교해보면 병이 낫는 정도에 별 차이가 없다. 즉, 헬리코박터가 소화불량의 원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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