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인 ‘비극의 3월’
  • 조홍래 편집위원 ()
  • 승인 2009.03.10 01: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티베트-중국, 대규모 유혈 봉기 1주년 맞아 다시 긴장 감돌아

▲ 타이완에서 새해를 맞이한 티베트 시위자들이 중국에 항의하는 철야 기도를 올리고 있다. ⓒAP연합

해마다 3월이면 티베트와 중국은 긴장한다. 티베트의 역사와 비극을 상징하는 세 가지 기념일이 3월 한 달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3월10일은 티베트 봉기 50주년 기념일이고 3월28일은 중국의 티베트 합병 50주년 기념일이다. 또, 3월14일은 지난해 수도 라싸에서 일어난 대규모 유혈 봉기의 1주년이 되는 날이다. 티베트인들은 통상 3월에 신년 축제를 벌인다. 그러나 이번 3월 ‘소의 해’ 축제는 축제라기보다는 애도의 기간이 될 듯하다. 지난해 소요 때 희생된 19명의 원혼을 달래야 한다. 50년 전의 봉기 때 죽은 사람들의 영혼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티베트의 독립과 민주화를 향한 결의를 다지는 일이 최우선이다. 

중국은 티베트 봉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티베트 영내에 사실상의 계엄령을 선포하고 있다. 티베트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으나 고민은 깊다. 이런 일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느냐 하는 자문 앞에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다. 중국 관리들은 적어도 겉으로는 티베트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티베트 때문에 지난해 베이징올림픽마저 조용히 치르지 못할까 전전긍긍했다. 올림픽 성화가 세계를 돌면서 가는 곳마다 항의 시위를 만난 것도 티베트 때문이었다. 그래도 올림픽은 큰 장애 없이 끝났다. 중국은 고무되었다.

그 이후 티베트는 세인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통제권을 유일하게 인정하지 않던 영국도 지난해 10월 태도를 바꿔 중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최근 미국 국무장관으로서 처음 베이징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마저 금융 위기 극복을 위한 중국의 협조를 우선하면서 티베트와 인권 문제를 슬쩍 비켜갔다.

중국, 티베트 자치구와 인근 주 경비 강화하며 사실상 ‘봉쇄’


▲ 달라이 라마의 초상을 든 티베트 시위자들. ⓒAP연합

그러나 2월 말부터 갑자기 티베트 자치구와 인근 주에 대한 경비가 강화되었다. 외국인들의 출입이 금지되면서 티베트는 사실상 봉쇄되었다. 티베트가 잘 되어가고 있다던 중국 관리들의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현상이다. 항의 시위가 일어나면 진압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과연 티베트를 영원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통치하는 방법인가를 놓고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은 정답을 찾지 못한다. 

1959년 달라이 라마는 10만명의 추종자를 이끌고 티베트를 떠나 인도로 피신하면서 하나의 ‘신화’를 창조했다. 당시 중국 공군의 공습으로부터 달라이 라마 일행을 보호해준 신비한 구름층이 티베트 상공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군사 지배를 증오하는 티베트인들의 결의로 이 구름이 현신(現身)했다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티베트 합병 이후 중국은 그 땅에 많은 공을 들였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생활 수준을 높였다. 많은 한족을 이주시켜 티베트족에 대한 동화 정책도 추진했다.

티베트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많은 한족들이 이주한 것은 종족 간 동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티베트인들의 경제적 기회를 착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중국이 티베트인들 내면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는 것도 불만이다. 그들이 보기에는 티베트 언어와 문화는 소멸되고 주요 상권을 한족이 독점했다. 한족이 티베트인들을 멸시하는 것도 참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티베트의 말살이 중국의 최종 목표라고 이들은 믿는다.

그동안 티베트와 중국 간에는 불안한 평화가 유지되었다. 중국이 티베트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동안 달라이 라마는 망명 세력에 대한 지구촌의 지원과 동정을 규합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말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기로 결정한 것도 그 일환이다. 중국은 이에 반발해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을 보이콧했다. 중국은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것을 이용해 달라이 라마에 대한 국제 사회의 지원을 차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마침 금융 위기가 터지자 반동 세력과 제휴하는 국가에는 금융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위협도 했다.


조직적 봉기 아닌 게릴라식 저항 있을 듯…타협점 찾아야


3월 고비를 맞으며 중국의 일부 강경파는 티베트 승려들이 지난해처럼 유혈 시위를 벌이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강경 진압의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혈 사태가 빚어지면 시위자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달라이 라마에 대한 도덕적 신망도 쇠락하리라는 것이 강경파들의 희망이다.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티베트 전문가 로비 바넷 교수는  심지어 온건파들마저 티베트 문제에서 약세를 보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이 공산당 내에서 권력 기반을 쌓은 것도 강경파인 양 행동한 덕이었다. 이 과정에서 강경파와 온건파 모두 자승자박의 딜레마에 빠졌다. 이제 와서 양보를 하거나 달라이 라마와의 회담 같은 것을 추진하면 권력 기반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에게도 약점은 있다. 그는 올해 73세이다. 건강도 좋지 않다. 많은 망명자는 중국 지배 하에서의 자치권 강화만을 요구하면서 비폭력을 고집하는 그의 중도 노선을 비판한다. 중국과 사생결단의 대결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중국의 철통 같은 감시를 받으며 조직적인 봉기를 감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다만, 티베트인들이 중국 내에서 게릴라식 저항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지난주 베이징에서 일어난 한 사건은 중국의 보안 체계에 허점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3명의 위구르 무슬림들이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분신한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죽었을 때 그에 대한 애도의 감정이 폭력으로 비화할 위험도 잠재되어 있다. 달라이 라마는 제14대 생불(生佛)로 알려져 있다. 이제 그의 고령과 함께 후계 문제에 관심이 쏠린다. 망명 그룹과 베이징은 후계자 지명을 두고 한바탕 신경전을 벌일 공산이 크다. 중국은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한 명목상의 후계자를 물색할 것이고 망명자들은 티베트의 진정한 지도자를 모색할 것이다. 중국은 1995년 제10대 생불로 판첸 라마를 옹립했다가 격렬한 반대에 직면한 경험을 잊지 않고 있다.

달라이 라마가 생존해 있는 한 티베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중국은 알고 있다. 달라이 라마 역시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그는 자치권이 아닌 실질적인 자치권을 요구하는 선으로 후퇴했다. 독립과 폭력도 반대한다고 했다. 이를 중국이 거부함으로써 일이 꼬였다. 티베트의 소요가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