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빛’을 찾는 사람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3.10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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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경제적 희망 찾는 귀농 인구 크게 늘어…지자체들도 자금 지원하며 ‘손짓’

그림 이우정

 은근히 뭉긋하게 끓였던 찹쌀물이 볼그레한 조청으로 알맞게 졸아든 오후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고추장 담그는 작업이 진행됐다. 옆에 사시는 어르신의 자문과 나의 실험정신을 보태어서 조청 물에 곱게 빻은 고춧가루, 메주가루, 물엿, 소금, 청주, 매실청 등을 넣어 주걱으로 정성껏 고루 저어 섞은 후 맛을 보았다.  … (중략) 잠자리에 누워서 내 정성과 기쁜 노고가 녹아든 고추장을 보내주고 싶은데 내 생애에 있어서 눈물 나도록 고마운 지인을 꼭 두 명만 떠올려 보련다.” (진안 뿌리 생활 문학상 우수작 중)

진안군청이 올해 두 번째로 뿌리생활문학상을 개최했다. 말 그대로 생활문학상이다. 귀농·귀촌인들의 희로애락을 담은 글들이 대상이다. 진안군은 귀농인들이 지역 공동체에 녹아들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런 행사를 자주 개최하고 있다. 제2의 삶을 진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진안군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97년 1월1일 이후부터 2008년 12월30일까지 진안에 정착한 사람들은 총 3백91명이다. 그리고 현재의 사회분위기라면 앞으로 진안에 적을 두려는 도시민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다시 ‘귀농’이 화두이다. 최근 귀농이 하나의 사회적인 현상으로 정착되고 있다. (사)귀농운동본부가 개설한 생태귀농학교에는 문의 전화가 몰려들고 있다. 귀농운동본부의 이수영 간사는 “매번 생태학교 때 50명 정도를 모집하는데 지난 2월10일부터 실시하는 교육은 55명으로 시작했다. 문의가 너무 많이 들어와 지원자들을 다음 기수로 넘겼다”라고 말했다. 귀농지원센터를 운영하는 천안 연암대학에도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25명을 선발하는 도시민농업창업교육과정 제5기 선발 과정에는 1백30명이 지원했다.

지원자들은 합격을 위해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치는 살벌한(?) 전형 과정을 거쳐야 했다.

최근 귀농이 주목받으면서 외환위기 때의 귀농 현상과 비슷한 분위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 침체 때문에 도시민들이 되레 농촌으로 내려간다는 이야기이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자료에 따르면 전체 귀농 인구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6천4백9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감소해 2003년까지는 8백여 명 안팎을 유지하며 제자리걸음을 했다. 다음 해인 2004년 1천3백2명을 기록하며 증가세로 돌아선 귀농 인구는 2005년 1천2백40명, 2006년 1천7백54명, 2007년 2천3백84명으로 늘어났다.

전국적인 집계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2008년 귀농 인구는 크게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계가 이루어진 충남의 경우 2008년에 도내로 귀농한 사람들은 모두 2백27명으로 2007년의 1백57명에 비해 44.6%가 늘어났다. 경남의 경우도 2007년 2백77명보다 34.7%가 늘어난 3백73명이 지난해 귀농했다. 비단 충남과 경남뿐만 아니라 다른 지자체의 귀농 인구 역시 지난해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 역시 귀농 분위기를 감지했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장관은 지난 3월5일 기자간담회에서 추경안 편성과 관련해 “귀농과 귀촌을 지원하는 예산을 마련해 다른 곳에서 실직했거나 농업으로 전환하려는 사람들에게 출구 역할이 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지자체들은 지금을 고령화된 농촌에 젊은 피를 수혈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이미 20여 개가 넘는 지자체에서 귀농 관련 지원 조례를 제정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도 예산 마련하는 등 적극 나서

지자체의 지원은 보통 귀농 정착금을 비롯한 금전적인 지원 방안으로 이루어진다. 전남 강진군은 가구당 3천만원의 귀농 정착금을 준다는 소식이 한 TV의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었다. 경남 거창군은 3년 이상 다른 행정 지역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다가 영농을 목적으로 전입한 가구 중 만 60세 이하의 가구주를 대상으로 가구당 5백만원의 정착금을 지원하고 있다. 광역단체 차원에서도 귀농 대책을 마련 중이다. 전남은 55세 이하의 도시민이 귀농할 경우 각종 영농 교육 자금을 지원하고 시설 자금으로 최대 1억원을 저이자(2%)로 빌려준다. 충북 역시 만 50세 이하 귀농인을 대상으로 1인당 5천만원의 시설 자금을 연이자 1%로 제공한다.

지자체의 지원금은 양날의 칼이다. 귀농인을 유치할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귀농에 대한 진정성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지원금 때문에 접근하기도 한다. 지난 2005년 한 자치단체에서는 2천만원의 정착금을 일시불로 지원했는데 이 돈을 받은 뒤 사라지는 이른바 ‘먹튀’가 발생했다. 역효과가 나면서 이 제도는 사라졌다.

최근 전남 영암군은 전 가족이 귀농한 뒤 영농을 할 때는 월 40만원씩 연간 4백80만원을 귀농 후 3개월이 지난 후부터 3년간 지원한다는 지원책을 내놓았다. 앞선 자치단체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영암군 관계자는 “하루에 대여섯 통의 문의전화가 걸려온다. 하지만 막연하게 지원금을 바라는 분들이 많아서 문의를 받는 입장에서도 안타깝다. 영암군도 고령화되고 있어서 젊은 사람들 위주로 뽑겠다는 당초의 우리 생각과는 좀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두 명이 접수를 끝내고 영암군을 귀농지로 결심한 상태이다.
이수영 간사는 “귀농자들 중에서 돈은 없지만 귀농에 대한 열정이 있는 분들이 피해를 본다. 규제를 하는 쪽도 이런 분들을 잘 가려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잘 가려내지 못할 경우 피해를 받는 쪽 역시 귀농자들이다.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안다는 농촌에서는 평판이 중요한데 지원 대책의 역효과가 계속될수록 지역민들이 귀농자에게 갖는 편견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 연암대학의 송기선 팀장은 “귀농자들이 왜곡된 시선을 받는 것도 현실이다. 마치 도시에서 실패한 뒤 인생의 도피처로 귀농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그런 인상이 마을에 정착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한다”라고 설명했다.

“불량 귀농자들 때문에 진짜 귀농자들이 피해 입어”

사실 외환위기 이후의 귀농과 지금의 귀농은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경제 위기로 귀농에 대한 문의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외환위기 때처럼 도피처로 농촌을 택하기보다는 농촌에서 개인적인 혹은 경제적인 희망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3월3일 시작된 천안 연암대학의 ‘도시민 농업 창업 교육 과정’을 수강하는 25명을 조사해본 결과 대학과 대학원 졸업자들이 상당수였다. 교사, 은행 지점장, 기업체 임원 등을 지낸,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군이 포함되었다. 그만큼 농촌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다양해졌음을 의미한다. 연암대학의 송기선 사업운영팀장은 “경제 한파 때문에 농촌으로 내려가는 사람이 늘어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보다는 사람들이 농업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생태적인 삶을 꿈꾸는 사람들 역시 귀농운동본부에서 제공하는 교육 과정에 참가하고 있다. 지난 2월부터는 제44기 생태귀농학교 교육 과정이 진행 중이다. 귀농자들의 상당수는 귀농운동본부의 교육에서 농사, 특히 유기 농업에 대한 개념을 익혔다고 말한다. 이수영 간사는 “그냥 막연히 내려가는 것보다는 귀농학교에서 현장성 있는 교육을 먼저 수료하는 것이 좋다. 지역에도 학교와 연계된 귀농지원센터가 있기 때문에 어려움에 대처하는 요령 등을 배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자료:진안군 제공

진안군 “굳이 농사 지을 필요 없다”

특히 최근에는 굳이 농사일이 아니더라도 귀농하며 농촌에 정착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전북 진안군에서는 정착금 등을 지원하지 않는다. 진안군의 귀농·귀촌 정책은 단순히 젊은이를 늘리고 인구 수를 늘리는 작업이 아니다. 1960년대 인구 10만을 넘었던 진안군의 현재 인구는 3만명 정도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농촌 공동체는 무너졌다. 농촌 공동체의 90%가 농사를 짓는 고령자이기에 빈자리가 많았다. 진안군의 농촌 공동체(마을 만들기)가 자립 가능한 발전 모델로 복원되려면 그 빈자리를 채워야 했고, 도시에서 인재를 유입해야 했다. 마을 만들기 팀을 맡고 있는 곽동원 계장은 “물질적인 지원은 배제했다. 돈을 보고 온 사람들은 결국, 떠나기도 쉽다. 농촌에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의 마을 만들기에 동의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로 맺어진다면 쉽게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진안군은 귀농보다는 귀촌 개념을 사용한다. 그 사람이 농촌에 와서 무엇을 할 것인지보다는 도시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더 궁금해한다. 자신이 잘하는 일을 여기서도 하라는 개념이다. 곽계장은 “대를 이어 지어도 어려운 것이 농사인데 도시민들이 도전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귀촌인들에게 굳이 농사를 지을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진안군의 귀농인 자료를 살펴보면 2008년에 93명이 귀농했는데 농업과 특목 작물을 경작하는 데 종사하는 사람은 44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사람들은 회사원, 문화예술, 건축 설계, 교사, 마을 간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귀농은 농촌 출신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는 U턴형이 많지만 진안은 도시 출신이 농촌으로 가는 귀농 형태, 즉 I턴형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진안군의 U턴형 귀농인은 1백87명, I턴형의 귀농인은 1백99명이다.

특히 마을 간사 제도는 ‘마을 만들기 사업’과 진안군의 귀촌활성화 정책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제도는 귀촌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25명 정도를 모집해 마을의 사무를 보는 제도이다. 이장을 보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마을의 역량을 높이는 일을 한다. 마을 간사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마을 만들기 사업의 실무를 맡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잡음이 적어지고 고령의 주민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다. 간사 개인에게도 스스로가 농촌 생활과 잘 맞는지, 마을과 잘 어울릴 수 있는지를 가늠하고 귀촌을 결정하는 사전 준비 작업이 된다. 진안의 사례는 농사에 머물러 있던 귀농이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농촌에서 살며 도시인처럼 일하라"

최태영 진안군 귀농지원센터 사무국장 인터뷰

 
 

귀농을 위해 전북 진안군 귀농지원센터를 방문해본 사람들은 최태영 사무국장의 배려와 활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최사무국장 역시 진안으로 귀촌한 사람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은행에서 근무하던 그는 진안의 마을 만들기 사업과 자신의 생각이 일치해 진안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삼았다.

진안의 귀농은 그 개념이 조금 독특해 보인다.

시골에 와서 농사를 지으라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 잘하던 일을 여기서도 하라는 얘기이다. 이대로 가면 군은 다 없어지고 시만 남을 것이다. 지역의 자립 가능한 발전 모델을 만들기 위해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지역공동체에 녹아들면 된다.

도시의 인재를 영입한다는 개념인가?

이전 정권에서도 농촌에 많은 것을 지원했다. 하지만 시설만 지어놓고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디어도 없고 사람도 없었다. 정보화마을이라고 만들어봐야 컴퓨터를 못하니까 텅텅 빈다. 그런 식의 정부 보조는 헛물이다. 결국, 운영할 브레인이 도시에서 와야 한다.

진안에 정착한 사람들 중에서도 적응에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을 사람들과의 융화이다. 여기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다. 항상 방이 없을 정도로 바빠 마을 사람들과 터놓고 지내지 못했다. 결국, 갈등이 일어나 불과 1년 만에 잘되는 펜션을 남겨두고 도시로 돌아간다고 했다.

외지에서 들어온 귀농인에게 지역민들도 경계심이 있을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기존의 다수가 주장하면 그것이 옳은 것처럼 여겨져왔다. 지역민들 역시 이런 고정 관념에서 빨리 빠져나오지 못하면 마을의 발전이 더딜 것이다. 변화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도시 영세민들의 귀농이 늘어난다는 분석이 있다.

도시 영세민 중에 쉽게 생각하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다. 시골에 오면 공짜도 많고 보조금도 나오고…. 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진안은 돈덩어리를 주지 않는다. 대신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귀농을 희망하는 문의가 많은 것 같다.

전화가 와서 어떤 지원책이 있는지 묻는 사람도 많다. 막상 듣다가 도와주는 것도 없지 않느냐며 끊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고기를 잡아 주지 않는다. 대신 잡는 법을 알려줄 뿐이다. 고기 잡는 것조차도 귀찮아하는 사람은 농촌에 오면 안 된다.

열정은 있지만 여유가 없는 영세민들의 귀농을 위한 대책은 없나?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창업지원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시골에서 농사만 지을 수 있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대장간도 필요하고 방앗간도 필요하다. 그것을 채워 넣기 위한 작업이 있어야 된다. 시골에서도 농사 이외의 창업을 도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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