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를 어찌하오리까”
  • 김영화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09.03.10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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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동영·한광옥 재·보선 출마 싸고 ‘뒤숭숭’…수도권 공천도 ‘안갯속’

▲ 정동영 전 장관의 국회 진출을 지지하는 전북 지역 시민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가의 관심이 재·보선 정국으로 빠르게 옮아가고 있다. 한나라당은 3월11일까지 재·보선 후보 공천 신청을 받기로 했다.  여당 특성상 상대적으로 열기가 덜한 가운데 박희태 대표의 출마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출마 선언이 러시를 이룬다. 전주 지역 공천을 둘러싼 당내 역학 관계도 다시 복잡해지고 있다.

현재 재·보선이 확정된 곳은 인천 부평 을, 전주 덕진, 전주 완산 갑, 경북 경주 등 네 곳이다. 3월 중 대법원의 확정 판결이 예정된 울산 북구와 서울 금천이 재·보선 지역에 포함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의 출마 가능성으로 주목되었던 경남 양산은 10월 재·보선으로 미루어지는 분위기이다.

특히 민주당은 4·29 재·보선 결과가 향후 정국의 풍향을 가를 수 있다고 보고 승부를 거는 분위기이다. 3월10일쯤 공천심사위원회(이하 공심위)를 꾸릴 예정인데 이미경 사무총장을 포함해, 7~9명가량으로 구성될 전망이고, 내부 인사를 주축으로 하되 외부 인사도 일부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재·보선에서 민주당의 관전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수도권 선거에서의 승리 여부이다. 인천 부평 을 선거는 확정된 재·보선 지역구 가운데 유일하게 특정 정당의 텃밭이 아닌 중립 지대에 속해 있어 이번 재·보선 표심의 바로미터로 통한다. 당연히 민주당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지역으로 꼽아두고 있다.

부평 을은 지난 총선에서는 5천여 표 차로 한나라당 후보가 승리했지만, 원래는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꼽힌다. 지역구 안에 있는 GM대우자동차 등 제조 업체 노동자들의 표심이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17대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홍미영 전 의원, 18대 총선에 출마해 38.15%를 득표한 홍영표 당시 후보가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에서 박희태 대표, 김덕룡 전 의원 등 거물급 차출설이 나오는 만큼 당내에 ‘전략 공천’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당 관계자는 “보통 3월 말이면 공천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보이지만 부평 을은 이보다 늦어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호남 공천 문제이다. 전주 덕진·완산 갑 두 곳 모두 민주당의 텃밭으로 낙승이 예상되지만 ‘거물들의 귀환’이 당내 역학 관계와 맞물리면서 복잡한 함수로 등장해 있다. 그중에서도 전주 덕진은 정동영 전 장관의 복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월 초순 신구 주류 간 권력 다툼 양상으로 발전하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의 출마 여부는 2차 입법 전쟁을 앞두고 양측이 휴전 선언을 하면서 물밑에 잠복해 있다가, 2월 임시국회가 끝나자마자 다시 불이 붙는 양상이다.

“공천 안 주면 무소속으로”

▲ 민주당 정세균 대표(위)는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에 부정적이다. ⓒ시사저널 유장훈

김희수 전북도의회 의장을 비롯해 전주 지역 인사 100여 명이 3월5일 정 전 장관의 덕진 출마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은 그 신호탄이다. 정 전 장관 쪽의 일부에서는 “공천을 안 주면 무소속으로라도 나갈 것이다”라는 얘기도 나온다. 공천권을 쥔 정세균 대표를 압박하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의 한 핵심 측근은 “미국에 있는 정 전 장관에게 이미 10여 일 전 출마 또는 불출마 선언문 초안이 전달되어 있다. 그가 선택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참신한 인물을 내세워 개혁 공천을 통해 수도권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정 전 장관의 출마에 부정적이다. 개혁 공천의 시발점을 전주로 삼고 있는데 정 전 장관이 출마하면 이런 구도가 깨진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당내 일각에서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 유재만 변호사,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교수 등 정치 신인을 전주 지역에 내세워 당의 이미지를 제고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지도부 입장에서는 민주당 인사들의 눈과 귀가 정 전 장관에게 쏠려 있는 상황이 달가울 리가 없다. 다만, 당 지도부는 정 전 장관의 거취 표명 전에 선제 공격을 할 경우 논란이 더욱 격화될 수 있다고 보고 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 주류인 한 재선 의원은 “정세균 대표가 당심과 민심을 거슬러 정 전 장관에게 공천을 주기는 힘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양측의 힘겨루기는 치킨 게임 양상이다. 서로의 약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측 모두 정면으로 충돌하기보다는 막후에서 타협을 보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적지 않다. 정대표의 핵심 측근인 최재성 의원이 3월5일 돌연 미국으로 간 사실을 두고 정 전 장관을 만나 정대표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 전 장관측이 “막판에 안 나가는 쪽으로 결단을 내릴 수 있다”라고 여지를 남기는 것은 이런 상황을 고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부평 을에 출마할 경우 정 전 장관이 대항마로 나서는 것이 현실과 명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법이라는 절충안도 나오고 있다.

전주 완산 갑도 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던 한광옥 민주당 상임고문이 3월5일 출마 선언을 하면서도 구도가 복잡해졌다. 완산 갑은 이미 오홍근 전 국정홍보처장, 김광삼 변호사, 김대곤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 김대식 전 전북도교육위 의장, 유희태 전 기업은행 부행장, 이상목 연청중앙회 부회장, 이재영 전 SK텔레시스 고문, 송기도 전북대 교수, 김형욱 민주당 정세균 대표 특별보좌관, 이광철 전 의원 등 10여 명이 입후보해 출마 러시를 이룬 곳이다. 하지만 덕진에서 정 전 장관이, 완산 갑에서 한고문이 공천을 받는 그림은 당 지도부로서는 최악이다.

수도권 공천과 호남 공천, 두 가지 난제는 재·보선 필승 전략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향방이 정해질 것이다. 더구나 민주당은 재·보선에서 승리해야 6월 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한 미디어법의 논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소속으로 MBC 사장 출신인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를 향해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하고 어디든 갈 테니 한판 붙어주기를 요청한다”라고 공개 도전장을 던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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