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불패 신화’ 무너지는가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3.1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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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경영이 부실해도 그럭저럭 버텨오던 신문·방송사들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다.

지금까지 한 번 세워진 신문사나 방송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디어 사회의 신화였다. 그동안 경영 부실 등으로 대기업이 무너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같은 사기업인 언론사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는 소리는 거의 들려온 적이 없다.

각 언론사의 재무 구조를 들여다보면 몇몇을 제외하면 버티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일부 부실 언론사 주변에서는 부도설이 꾸준히 나돌기도 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신문이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날 것이다” “△△일보가 채무를 변제하지 못해 문을 닫는다고 하더라”라는 식의 루머가 무성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유력 언론사 그룹에 들어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담보 제공 능력이 없는 언론사는 금융권과의 거래가 어려워졌다. ‘권·언 유착’ ‘경·언 유착’도 아득한 옛일이 되어버렸다. 신문과 방송 등 미디어업계는 지금 극심한 경영난 속에서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기가 침체에 빠져들면서 ‘언론사 부도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유력 일간지 한 곳이 부도날 것이라는 소문이 쫙 퍼졌다. 불과 몇십억 원의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조만간 문을 닫을 것이라는 루머였다. 이에 청와대뿐만 아니라 정보 당국에서도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당사자로 거론된 언론사는 아직 ‘건재’하다. 그렇다고 해서 소문을 소문으로만 흘려들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미디어계 전반에 짙은 먹구름이 끼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율과 경쟁’을 모토로 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디어계도 ‘정글(시장) 법칙’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에 언론사마다 살아남기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신문과 방송사가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고 있는 주된 원인은 광고 매출이 급감한 데 있다. 신문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지난해 광고 매출은 전년에 비해 30~40% 정도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신문사 전체 매출에서 광고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어들었다. 신문법에 따라 지난해 말 공개된 신문발전위원회의 ‘일간신문 경영자료 공개’ 자료에 따르면, 종합지와 경제지·스포츠지를 망라한 신문사의 평균 광고 수입 대 구독 수입은 76.3 대 23.7이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광고와 구독 수입의 비중이 8 대 2, 더 많을 경우에는 9 대 1에 이를 정도였다. 광고 매출이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광고 매출 비중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광고 매출이 지난해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메이저 신문으로 불리는 한 일간지의 관계자는 “광고 면수가 전년과 비교해 50%에서 40%로 줄어들었다”라고 말했다.

“은행 대출도 예전 같지 않다”  

여기에 그동안 권력과 재벌의 그늘에 안주하며 방만하게 경영한 것도 현재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있다. 1980년대는 권력과 언론, 이른바 권·언 유착의 시절이었다.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으로 소수의 언론사만 살아남으면서 권력으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는 자본과 언론의 결탁이 눈에 띈다. 재벌이 신문사 경영에 직접 뛰어들면서 일부 신문사는 ‘화려한 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재벌들이 손을 떼면서 경영난에 허덕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후로도 음으로 양으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ㄱ일간지의 한 간부는 “예전에는 언론사가 은행 대출을 받을 경우 여러 가지 편의를 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 전반이 점점 투명화하면서 언론사도 일반 기업과 같이 대출 조건을 맞추어야만 돈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경영상 힘들어지게 되었고, 현재의 경제 위기가 장기화하면 이를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는 신문사가 나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지난해 신문 용지와 잉크, PS판 등 원부자재비의 급등으로 적자 폭이 확대되었다. 이처럼 신문사들을 파산에 이르게 만들 지뢰밭이 도처에 깔린 셈이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신문사가 넘어야 할 산은 만만치 않다. 당장 신문사의 주된 수익원인 광고시장에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바로 새롭게 등장한 IPTV(인터넷 TV)가 향후 광고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이다. IPTV는 기존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지역 밀착형 광고와 가구별로 개별화된 광고를 할 수 있다. 이는 신문사 본사의 광고 매출과 신문사 지국의 전단지 수입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래저래, 작아진 ‘파이’(광고)를 놓고 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당장 신문사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마른 수건을 쥐어짜야 한다. 여기에 장기적인 경영 플랜을 짜야 할 형편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이 공개적으로 ‘비상 경영’을 선포한 것도 이 같은 위기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겨레는 임원과 국·실장들이 지난해 11월과 12월 두 달치 상여금을 반납했다. 여기에 노조는 지난 2월25일 임·단협을 타결하면서, 상여금 6백% 가운데 절반을 반납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줄일 수 있는 비용은 최대한 줄이면서 긴축 경영을 해나간다는 방침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2월 급여를 절반만 지급했다. 이영만 사장을 포함한 임원진도 경영 상황이 어느 정도 개선될 때까지 급여를 반납하겠다고 했다. 또한, 노사와 사원주주회 등이 경영 개선 방안을 함께 모색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경향신문 사옥에 입주해 있는 업체가 사무실을 빼려고 해도 경향측이 보증금을 되돌려줄 수 없는 실정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만큼 경영 위기가 심각하다는 얘기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처럼 공개적으로 비상 경영을 언급하지 않았을 뿐, 다른 신문사들도 이미 빨간 불이 켜진 지 오래다. 대부분의 신문사가 실질적인 ‘내핍 경영’이나 ‘비상 경영’ 체제로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대다수 신문사들이 발행 면수와 부수를 줄였다는 점이다. 광고면이 줄어든 것도 발행 면수를 줄인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판형 변경·소사장제 도입 등 생존 몸부림

이와 별도로 중앙일보는 본지의 판형을 오는 3월16일부터 기존 대판의 71% 규모인 ‘베를리너판’(323㎜×470㎜)으로 교체함과 동시에 기사량을 증가시켜 다른 신문과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유권하 전략기획팀장은 “인위적인 인력 감축이나 비용 절감만으로는, 찰나의 위기는 피할 수 있어도 지속적인 성장이나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올해부터 자사에서 발행하는 매체별로 소(小)사장제를 도입해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한국일보는 지난 2007년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있던 사옥과 부지를 매각하면서 일단 한 숨 돌린 상태이다. 3천여 억원에 달했던 부채를 갚으면서 한때 먹구름이 짙었던 부도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내부 인력이 상당수 퇴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조직이 슬림화되었다. 

ㄴ일간지의 한 고위 간부는 “앞으로 신문사마다 현금을 상당히 중요시하는 ‘캐시 플로’(Cash flow) 경영을 펼 것으로 보인다. 현금을 창출하지 않는 자산을 과감하게 매각할 것이며, 적극적인 아웃소싱을 통해 비용 절감에도 나설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한편, 지역 일간지의 경영 사정은 중앙 일간지에 비해 더 열악하다.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강도 높게 자구책을 마련하는 데 나서고 있다. 지역 일간지 가운데 그나마 경영 여건이 양호했던 전남일보는 지난해 적자 폭이 전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났다. 이에 재직 20년 안팎의 간부들을 감원하고, 금요일자를 증면하는 대신 토요일자를 휴간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여기에 20년 만에 연합뉴스 전재를 중단했고, 무가지를 없앴으며, 서울지사 사무실을 축소 이전하는 등 씀씀이를 최대한 줄이고 있다.   

지역 일간지 관계자들은 “앞으로도 더 악화되었으면 되었지 호전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라고 암울하게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몇몇 지역 일간지들이 조만간 문을 닫을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여기에 현 정부가 지역신문발전지원금 정책 등 각종 지원 제도를 축소하려 하고 있어 이중 삼중으로 경영 압박을 받고 있다.

신문사보다는 덜 하지만, 지상파 방송도 위기에 봉착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주된 요인은 신문사들의 경우처럼 매출 감소와 함께 방만한 경영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 지상파 방송은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다매체 다채널화가 본격화하면서 지상파 방송과 신규 매체들의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졌다. 

KT 경영연구소의 ‘2009년도 방송시장 전망’을 보면, 지상파 방송이 얼마나 고전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전망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은 지난 2003년 전체 방송 광고시장의 50%를 차지했다. 그런데 2009년에는 35% 수준으로 크게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는 비단 최근 몇 년 동안 벌어진 상황이 아니다. 지난 1995년 케이블TV가 시장에 진입한 이후 IPTV까지 본격 상용화하면서 이미 예견되었다. 여기에 인터넷 광고시장의 초고속 성장도 방송 광고시장을 위축시킨 한 요인으로 꼽힌다. 광고 공급은 크게 늘지 않았는데, 수요만 급신장한 셈이다.

한국방송협회장인 엄기영 MBC 사장은 한국언론재단에서 발행하는 월간 <신문과 방송> 1월호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은 지난해 말부터 ‘비상 경영 체제’를 선포하고, 전방위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 위축에 IPTV 등 새로운 서비스의 본격화 등을 고려하면 과연 지상파 방송사들의 내부적인 힘만으로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라고 밝혔다. 지상파 방송에 대한 정부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역설한 것이다.

지상파 방송계에서는 오히려 자신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는 2013년 지상파 방송은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한다. 따라서 신규 투자를 위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지상파 방송 관계자들은 “정부 차원에서 수신료 인상이나 광고 제도 개선 등 최소한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정책적인 지원이 없다”라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도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KBS의 경우, 공채 규모를 크게 줄이고 동시에 특파원제를 축소했다. MBC도 임원 연봉을 삭감하고, 명예퇴직제와 강제적인 안식년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SBS도 임금 동결과 파견직 축소 등으로 비용 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KBS는 PD의 경우, 2007년에 20명을 뽑았으나, 지난해에는 불과 여섯 명만 채용했다. 취재기자 역시 19명에서 여덟 명으로 줄었고, 아나운서도 일곱 명이었던 것을 세 명만 뽑았다. MBC도 전년에 비해 28% 정도 감소한 33명을 채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계 내부에서조차 이같은 자구책에 대해 ‘신발을 신고서 발을 긁는 수준’이라고 낮게 평가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지상파 방송사들은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IPTV 등 뉴미디어 플랫폼에 콘텐츠(프로그램)를 판매하면서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IPTV업계에 따르면, 한 지상파 방송사가 IPTV업체에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가격은 연간 2백억~2백50억원 선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이 가격을 인상하려고 한다. 하지만 IPTV업계에서는 현재 지불하고 있는 가격도 비싸다고 보고 있다. 양측의 입장이 상충하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지상파 방송사가 IPTV에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가격이 적정한지 다시 따져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프로그램 공급 가격(연간 2백억~2백50억원)이 비싼 것은 아닌지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있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향후 지상파 방송과 IPTV업계 간에 콘텐츠 판매 가격을 둘러싼 갈등 내지 충돌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료:금융감독원

방송, 종편PP 신설되면 ‘엎친 데 덮친 격’

이와 함께 지상파 방송사들은 디지털 케이블TV와 디지털 위성방송에 대해 실시간 재전송 유료화를 추진하고 있다. 광고 수익 감소를 콘텐츠 유료화로 만회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사를 위협하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종합편성PP(종편PP)의 신설 여부이다. 현재 한나라당과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법을 개정해서 종편PP를 출범시키겠다는 입장이다. 그나마 미디어 관련법 대부분이 6월 임시국회로 넘어가기는 했지만,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지상파 방송은 당장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종편PP는 말 그대로 보도뿐만 아니라 연예·오락프로그램 등을 종합적으로 편성할 수 있다.

종편PP가 케이블이나 위성을 통해 송출된다는 차이일 뿐 프로그램 내용에서는 지상파 방송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줄어든 ‘파이’를 종편PP와 나눠 먹기 해야 하는 지상파로서는 또 하나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자본력이 약한 지역 민방들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나마 여권이 추진 중인 복수미디어렙이 도입되면 지상파 방송은 광고 단가의 상승으로 위기 탈출의 숨통이 다소 트일 수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낮은 지역 방송과 종교 방송 등은 광고 판매가 더 위축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부산 지역 방송의 한 간부는 “심각한 경제 위기와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으로 이미 지역 방송의 경영 환경은 충분히 악화되어 있다. 여기에 복수 미디어렙이 허용되어 약육강식의 시장 환경이 조성되면 지역 방송의 생존은 그야말로 장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찰스 다윈은 ‘적자생존의 원칙’을 말했다. 이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아니다. 변화된 환경에 잘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당장 신문업계는 생존의 위협을 느낄 만큼 절박한 처지에 몰려 있다.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게다가 경기 침체로 열악한 상황에서,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을 것인가.

▲ 미디어계가 경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핍경영’이나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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