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터에 어떤 미술관 그리나
  • 정준모 (미술비평·문화정책 전문가) ()
  • 승인 2009.03.16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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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종합 문화공간 갖출 기회…21세기 대표하는 ‘한국의 상징’ 지향해야

▲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미술관 단지 MQ(왼쪽). 오른쪽은 MQ에 있는 레오폴드 미술관의 내부.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가 과천으로 이사하고 빈터로 남은 소격동 2만7천㎡의 부지가 이명박 정부의 결단으로 미술관 부지로 확정되었다. 이런 결정에 대해 미술 관련 주요 11개 단체가 이미 성명서를 발표하며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그 후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근간에 미술품과 관련한 이런저런 악재로 속을 끓여온 미술동네에 이 결정이 그 어떤 소식보다도 시원한 낭보이자 희소식이 되어주었음은 물론 그동안 말로만 ‘문화 대통령’ ‘문화의 세기’라고 외쳐온 전 정권의 구호에 속아온 국민과 예술인들에게는 실용 정부의 실용성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의 결단에 따른 후속 대책은 지지부진한 것 같다. 해당 부처인 문화부는 나름으로 분주하게 돌아치는 듯하나 역시 역부족인 가운데 나라 살림을 책임지고, 예산 편성권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나 국군 서울지구병원을 관할하는 국방부 등은 여전히 관심 외의 일로 여기는 듯하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많은 미술인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은 혹시나 취임 1년이 성큼 지났음에도 MB 정부는 아직도 행정부를 제대로 장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혹시나 ‘개혁적’인 새 정부의 코드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존 고위 공직자들이 ‘버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오해 아닌 오해를 하게 되기도 한다.

‘신전’과 ‘광장’이 공존하는 공간 만들어야

1996년 처음 민간에서 시작된 ‘기무사에 미술관을 세우자’는 운동이 대통령의 선언으로 일차적 결실을 이룸에 따라 공은 다시 민간에 돌아온 듯했지만 결국은 이해 당사자들(?)의 이기심 때문에 여전히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 셈이다. 

한국의 전통과 오늘을 바탕으로 미래의 역사를 만들어나갈 기본이면서 ‘창의 한국’의 정신으로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할 ‘아이디어 뱅크’로서 기능해나갈 공간이자, 2차 세계대전 이후 기장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한 한민족의 기개와 그 바탕에 잠재된 문화적 동력을 과시할 시설이 되어야 할 공간이 그냥 놀고 있는 셈이다. 그곳은 관광 한국의 거점이자 축으로 한민족의 문화예술적 재능을 과시하는 한편, 재기발랄한 젊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공간이면서 녹색 성장의 기본인 문화산업의 축이 되어야 할 공간인데도 그 모양이다. 기무사 터를 우리 국민은 물론 한국을 찾은 세계인들이 한국과 세계의 문화와 예술을 공기처럼 숨 쉬고 물처럼 마실 수 있도록 하는 열린 공간, 오아시스로 만들어야 함에도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련과 부처 이기주의를 넘어 ‘기무사 미술관’은 미술관이 중심이 되는 종합 문화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마치 퐁피두센터처럼 기능하는 동시에 최근 미술관에 요구되는 에듀테인먼트 기능을 갖춘 그런 공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외국의 어떤 미술관을 그대로 벤치마킹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정과 풍토에 맞는 품종으로 개량해서 ‘벤치 메이킹’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도심에 자리한 종합 문화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이라면 부지의 조건 등을 따져볼 때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미술관 지구(MQ)가 우선 떠오른다. 옛날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구간을 개조해서 2001년 6월 미술관 단지로 개관한 이곳에는 ‘신전형 미술관’과 ‘광장형 미술관’이 공존하면서 상승 효과를 내고 있다. 단지 안에는 레오폴드 미술관, 현대 미술관의 소장 기능보다는 전시 기능이 주가 되는 쿤스트할레 빈, 줌 어린이 미술관과 담배 박물관 같은 전시 중심 공간과 건축 전시 및 공연 이벤트 공간인 건축센터, 무용 이벤트 공간인 탄츠쿼르티에와 실험적인 뉴미디어 전시 공간인 퍼블릭 넷베이스, 어린이 전용 영화관 등 10여 개의 독립적인 시설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단지를 이루고 있다.

우리도 이렇게 미술관과 전시관 그리고 소외된 실험적인 예술 분야를 포함하는 시설을 두는 한편, 미술사와 예술사 연구와 서술에 절대적인 미술 자료 전문 도서관 또는 예술 전문 도서 자료관을 설치해서 연구·실천과 생산 그리고 소비가 동시에 일어나는 그런 장소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성격의 예술이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공간이 되면서 국제적인 문화예술의 통섭의 장이 되기 위해서 구 소격 아파트를 호텔과 종합 레지던시로 개조해서 운영한다면 다양한 현대미술과 예술이 어우러지는 공존과 관용의 장이 될 것이다.

▲ 기무사 터 건물별 규모 및 배치도.

국군 서울지구병원 존치 문제 등 해결해야

하지만 이전에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다. 현재 부지 내에 남아 있는 국군 서울지구병원의 존치 문제이다. 이미 대통령은 “국민에게 돌려주라”라고 했지만 여전히 국방부의 양보가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미술관 건립을 위한 재원 확보는 기획재정부의 이해와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외에도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인 소장품의 확보도 시급한 문제이다. 또한, 과천관과 덕수궁 분관 그리고 서울관의 역할 분담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물론 ‘국가 상징 거리’와 ‘현대사 박물관’을 이어갈 계획도 아울러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또 장기적으로는 삼청동 거리와 인사동을 잇는 거점으로서 ‘기무사 미술관지구’가 작동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단순하게 보존하고 복원만 하는 것이 능사라는 현 문화재 보호 정책에서 벗어나 과감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우리 시대에 살아 있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새로운 시도들을 통해 문화재 복원 이상의, 우리 시대와 호흡하고 함께하는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재 경복궁과 기무사 부지를 가로지르는 도로 지하에 광장을 만들고 그곳에 경복궁과 ‘기무사 미술관’의 포이어(Foyer; 로비)와 한국을 상징하는 공예 명장들이 제작한 전통공예품 상가와 세계적인 디자인 명품 숍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인·전자 제품 몰과 면세점 등을 유치한다면 그 시너지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그리고 지하 광장과 현 기무사 부지 내 건물을 신축 또는 리노베이션하는 공사비는 현재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기업들에게 기부 체납 형식으로 건설한 뒤 일정기간 사용권을 부여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을 것이다. 

더불어 장기적으로 더 큰 그림을 그려 인근 덕성여중과 전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를 연결시키고 안국동 로터리에 지하 광장을 건설해서 인사동과 지하로 연결시키는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서울의 상징, 한국의 문화 상징으로 전통과 역사, 신풍과 창의가 조화를 이루는 크고 장기적인 플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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