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무시’하다 ‘한류’ 다칠라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9.03.2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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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과 아벨>, 중국·중국인 가난하고 야만적으로 묘사해 물의…상호 존중 정신 아쉬워

▲ SBS 드라마 이 중국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논란에 빠졌다. ⓒSBS 제공

중국 관영 인민일보의 국제 전문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지난 3월13일 ‘다시 중국을 멸시한 한국 드라마’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카인과 아벨>이 중국과 중국인을 가난하거나 무지하고 야만적으로 묘사하는 등 중국의 현실을 왜곡했다’라고 보도했다고 한다. <환구시보>는 또 ‘<카인과 아벨>은 인기 배우 소지섭의 군 제대 후 첫 드라마 복귀작으로 엄청난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지만 부당하게 중국을 얕보면서 중국 네티즌들로부터 큰 비판을 사고 있다’라고 전했다.

드라마에서 상하이가 1970~80년대처럼 개발이 안 된 모습으로 그려졌고, 폭력단이 대낮부터 총질을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대체로 화사한 한국에 비해 중국에서의 장면들이 어두운 톤으로 나온 것도 문제 삼았다. 또, 중국 경찰이 소지섭을 고문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네티즌은 이에 대해 한국 제품 불매 운동을 촉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SBS에 대한 악감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인들은 지난 베이징올림픽 때 SBS가 개막식 리허설을 사전 보도한 것과, SBS 설날 특집 다큐멘터리 <생존열차 중국호>가 중국을 어둡게 그린 것을 <카인과 아벨>에 연결짓고 있다.

그전부터 누적된 악감정이 터진 것이다. 최근 중국인의 4분의 3이 한국 매체의 중국 관련 보도가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되기도 했다. 중국인 사이에서 커져가는 혐한 감정에 발맞춰, 중국 당국이 <카인과 아벨>의 중국 수입을 허가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환구시보>는 전했다.

중국 네티즌들, 한국 제품 불매운동 촉구

이 기사에는 중국의 반응에 반박하거나, 오히려 비웃는 댓글이 쏟아졌다. ‘소지섭·한지민이 너희 땅을 밟아준 것만 해도 감사한 줄 알아라’라는 식의 모욕적인 내용들까지 있었다.

지난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때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서울 시청 앞을 지나치는데 대학생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붉은악마 응원을 방불케 했다. 전국 대학생 행사라도 있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중국 유학생들이 성화를 맞이하러 모인 것이었다.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는 중국 네티즌이 그렇게 많다는 얘기이다. 그들도 이런 댓글들을 다 보고 번역해서 다시 중국 사이트에 올릴 것이다. 이런 내용을 접하는 중국인들은 어떤 심정일까. 한국인인 내 눈에도 거슬리는데 중국인 눈에는 오죽할까?

일본 드라마에서 서울이 빈민가에 무법천지로 그려지고, 일본 주인공이 야만적인 한국 감옥에서 고문당한다는 설정이 나와 한국 언론이 반발했다고 치자. 그 기사에 일본 네티즌들이 ‘조센징은 꺼져라’는 식으로 댓글을 달았다면 한국인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때 우리가 느낄 모멸감과 분노만큼 중국인도 우리를 보며 모멸과 분노를 느낄 것이다. 그들도 사람이니까.

이렇게 원초적인 증오와 멸시 말고 점잖은 지적도 있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인데 중국인들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은 예능에서의 중국 비하를 비판할 때도 똑같이 나온다. 웃기려고 한 얘기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지적. 원론적으로는 맞는 얘기이지만 당하는 사람들의 감정은 고려하지 않는 무신경한 발상이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 <카인과 아벨>에서 중국이 특별히 ‘악’으로 그려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뭐랄까, 마치 판타지의 공간과 같았다고나 할까? 활극과 ‘어드벤처’가 가능한 낭만적인 공간으로 그려진 것이 문제이다. 꼭, ‘악’으로 명시해야만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제도가 완비된 우리 문명 사회에 비해 아직 낭만이 남아 있는 ‘그들의 사회’라는 시각은, 서구가 동양을 ‘신비화’했던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이다. 산업화를 불과 한 20~30년 먼저 했다고 어느새 우리가 이웃나라 중국을, 서양인이 오리엔트를 보듯이 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모멸감을 느끼며 ‘까칠’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 이 보도한 중국 관련 화면. ⓒSBS 제공

사실 <카인과 아벨> 수준의 중국 표현은 양반이라고 할 만큼 우리 대중문화계에는 중국 비하가 넘쳐난다. 과거에 주말 예능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며 다수 한류 스타가 출연했던 프로그램이 중국 특집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거기에서 못생겼거나 코믹한 캐릭터의 출연자들에게 MC가 대놓고 ‘현지인’ 같다고 놀리는 장면이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다 웃었고 당사자들은 창피해했다. 반면에 ‘꽃미남 꽃미녀’에게는 절대로 이런 말을 하지 않으며,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칭송할 뿐이었다. 어떻게 이런 장면이 버젓이 녹화되고 전파를 탄다는 말인가? 그만큼 중국 멸시가 보편적이다.

불과 몇 달 전에도 <해피 투게더>에서 황당한 일이 있었다. 주역이 아니며 ‘찌질한’ 캐릭터의 조연 전문인 유해진을 초대해놓고 MC가 ‘동남아 연예인 같아요’라고 한 것이다. 유해진은 자기 스스로가 못생겼다고 공언하고 다니는 배우이다. 그것을 전제로 방송하면서 직설적으로 동남아인에 견준 것은 정말 노골적인 비하였다. 중국과 동남아는 동네북과 같은 존재인데, 아직까지는 중국인들만 여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KBS <미녀들의 수다>에서도 중국인 출연자가 이에 대해 서운하다고 한 적이 있다. 언젠가는 동남아에서도 중국과 같은 불만이 터져 나올 것이다.

이번에 사건을 보도한 중국 언론을 폄하하며 사건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물론 중국 언론의 ‘오버’인 측면이 있다. 또,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동북 공정’으로 대표되는 역사 왜곡 문제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쪽에도 민족 감정 부추겨서 장사하려는 ‘찌라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쪽 사정이고, 우리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 사건은 우리의 무신경함을 돌아보게 만드는 경종인 것이 맞다.

한국 과시에만 치우치면 국가적 경계심 키워

한류라는 것은 한국 대중문화 시장이 국제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내용도 국제화되어야 한다. 팔 때는 국제적으로 팔면서 내용에는 우리끼리만 통하는 편견을 담고 있다면 결국, 시장에서 외면받을 것이다. 흑인 동네에서 장사하면서 흑인을 멸시했던 우리 동포들은 결국, 흑인 폭동을 당하고 말았다. 한류의 앞날이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우리는 중국에 가서 ‘한류 콘서트’를 열며 한국을 과시하는 데만 치중한다. 그것은 국가적 경계심을 키울 뿐이다. 우리나라의 한 언론은 이번 사건을 ‘중국 신문, 한국 드라마 때리기’라고 보도했다. 노골적으로 국민 감정을 부추기고 있다. 이렇게 국가성이 강화될수록 한국 대중문화 산업은 한반도 안으로만 축소될 것이다. 시장이 넓어지고 있다면, 좀더 호혜 평등·상호 존중에 입각해 국제적 양식을 갖춰나가는 것이 옳다. <카인과 아벨> 중국 비하 논란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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