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 누가 이길까
  • 김유미 (연극평론가) ()
  • 승인 2009.03.2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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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간 공방 치열한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 엘레나 선생님 역을 맡은 길해연씨(오른쪽)가 극중에서 제자의 논리에 못마땅해하고 있다.

이 작품은 희곡이 가진 완성도와 더불어 2009 아르코 파트너 공동 기획 공연으로 선택되었다는 점에서 연극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2007년에 공연된 바 있기는 하지만 흔히 접하기 어려운 러시아 현대 희곡을 무대화했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갖게 하기도 한다. 완성도 있는 희곡, 동시대적 주제의식, 아르코극장의 기획력, 일정 수준 이상의 연출(김낙형)과 배우(길해연·김동현·김종태 등) 등의 요소가 이 작품에 기대를 걸게 만든다.

그렇지만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이 공연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호흡이 덜 맞는다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종합적으로 볼 때 작품을 연극적으로 잘 섬겨주었다고 말하기 힘들다. 원래 언어적 성격이 강한 사실주의 계열의 작품이지만 연출의 연극적인 고민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옛 소련 배경, 현재 우리의 고민도 담아

그렇다고 언어적 표현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류드밀라 라쥬몹스까야의 희곡이 지닌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언어를 우리의 언어로 풀어내지 못했고, 그것을 충분히 소화해내지 못해서 전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0년대 옛 소련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지만, 현재 우리의 고민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현실에 맞게 대사를 다듬는 작업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되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공연 전반부에서 두드러진다.

다행히 후반부로 가면 탄력이 붙고 논쟁에 속도가 붙어 관객을 밀어붙이는 힘을 어느 정도 발휘한다.

연출을 맡은 김낙형은 지난해 <맥베드>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연출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배우들의 움직임을 최대한 끌어내 언어가 그 속에서 의미를 발휘하도록 연극적인 느낌을 고양시켰다.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이 언어 위주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지만 김낙형이 연출을 하면 새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공연 팸플릿에도 “연극의 공간성에 집중했다”라고 씌어 있어 이러한 기대를 부추겼다. 그러나 그가 말한 공간은 결국 ‘엘레나 선생님의 집으로만 한정되지 않고 현대의 어느 공간쯤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인데 이것이 특별히 연극적 공간을 통해 전달되지는 않았다. 연출가는 이를 위해 베란다라는 공간을 설정했지만 엘레나 선생님의 방 안에서 세상으로 문제를 확장시키고자 한 의도를 무대 뒤편의 작은 베란다는 결코 채워주지 못했다. 오히려 배우들이 그곳으로 사라지면서 흐름이 끊긴다는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방과 방을 오가는 배우들의 동선도 사실주의 작품의 관습을 벗어남으로써 혼란을 주었다. 

아쉬운 점은 많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이 지닌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작품 후반부에 터지는 논쟁의 절정에서 관객은 충분히 전율을 느끼며 그것을 다시 곱씹고 싶어진다. 선생님과 학생들의 대결 구도로 집약되는 이 갈등에 대해 좀더 이야기해보자.

수학 시험 성적을 올려달라고 선생님을 찾아온 학생들 중에서 가장 문제적인 인물은 발로쟈(김동현)이다. 그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성적을 조작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과 무관하기 때문에 오히려 높은 데서 그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권력이 지닌 힘을 가장 잘 구현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 일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단계별 전략을 짜놓는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엘레나 선생님의 어머니를 이용해 당근을 적절히 제시하는 유화책부터 친구인 발랴를 강간하려 함으로써 지능적으로 선생님을 협박하는 파렴치한 행위까지 그는 다양한 난이도의 대처 방안을 화려하게 구사한다.

게다가 발로쟈는 이러한 자신의 의도를 자랑스럽게 드러내 보인다. 마치 “선생님, 저 정말 잘하지요? 다양한 해법으로 친구들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A+감이지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기술적 측면만 보자면 그는 학문 분야뿐만 아니라 세상살이에서도 최고 점수를 받을 확률이 높다. 발로쟈를 통해 그런 점수 체계가 통용되는 징그러운 현실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단지 학생과 선생의 대결 구도 그 이상의 것을 경험하게 한다.

기성세대의 위선 등 인생 돌아보는 기회도

▲ 엘레나 선생님이 자신의 집에 찾아온 제자들과 건배하고 있다.

빠샤(김종태)는 뻔뻔스런 발로쟈 다음으로 안 좋은 인물이지만 그의 변명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그는 현실에 굴복한다는 점에서 매우 비겁한 인물이지만 그래도 그에게서는 연민을 느낄 수 있다. 여자 친구인 발랴(송유현)를 이용해서까지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큰 목적을 이루어야 다른 부수적인 것들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발로쟈 처럼 권력 있는 아버지를 두지 못한 빠샤에게 여자 친구는 어쩌면 사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은 물론 발로쟈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고 철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그에게 철학과 상관없는 수학 점수가 모자라 꿈이 좌절될 위기에 있다면 그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길 것이다. 이러한 그의 처지와 더불어 빠샤는 철학부를 지원한 학생답게 논리가 꽤 날카롭다. 그의 논리가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의 비뚤어진 논리가 기성세대 탓이라는 점을 호소력 있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엘레나 선생님을 거의 KO시킬 정도가 된다. “선생님이 직접 우릴 이렇게 낳았으니까요”로 요약되는 기성세대의 위선에 대한 공격은 당하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엘레나 선생님이 그들의 비뚤어진 논리를 갈기갈기 찢어 놓으며 포효하듯 꾸짖음으로써 발로쟈가 스스로 졌음을 시인한다. 발로쟈는 순발력 있게 엘레나를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선생님이라고 치켜세우지만 다시 발로쟈가 마지막 일격을 가함으로써 이 ‘존경’은 금방 휴지조각처럼 구겨진다. 이로써 작품은 발로쟈와 엘레나의 대결이 무승부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숙제는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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