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한국 희망, 병원에 있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3.2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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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관광, 반도체시장보다 성장 속도 빨라…간 이식 등 우리 장점 특화시켜야

▲ 최근 외국인들의 의료관광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청심국제병원 이비인후과를 찾은 미국인이 국내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국내에서 우리 병원끼리 경쟁하는 시절은 지났다. 이제 세계의 유명 병원들과 환자 유치 전쟁을 벌여야 한다.”

이른바 국제 의료 시대가 열렸다. 치료 목적으로 국경을 넘는 환자가 급증하고, 국적에 관계없이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이 넘쳐난다. 삼성서울병원이나 서울성모병원, 연세세브란스병원 등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병원들이지만 이제 우리 병원들의 실력은 세계 의료시장에서 냉혹한 평가를 받게 된다.

지난 2월19일 오전 삼성서울병원에서는 4백여 명의 의료계와 정부 관계자들이 모여 의료관광 정책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의료계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이유는 지난 1월 차세대 국가 성장 동력의 하나로 의료관광이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세계 의료시장에서 우리도 과실을 따야 한다는 절박감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세계 의료시장은 매년 20%씩 성장해 그 속도가 반도체(10% 이하)보다 빠를 것으로 전망되었다. 국제 전략자문기업 매킨지앤컴퍼니(McKinsey & Company)는 2012년 세계 의료관광 시장 규모를 1천억 달러로 내다보았다. 2004년에는 4백억 달러 규모였다. 환자 수는 2005년 1천9백만명에서 2010년에는 4천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회계컨설팅기업 딜로이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관광을 위해 자국을 떠난 미국인은 2007년 75만명, 2008년 1백50만명에 달했으며 올해 3백만명, 2010년에는 6백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치료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환자 수는 약 2만5천명으로 2007년 7천9백명에서 3배 이상 증가했다. 외국인 환자를 우리가 유치할 때 나타날 경제적 효과는 내국인 환자 1인당 평균 진료비(2006년 현재 99만4천원)보다 약 7배 이상 높은 6백97만원이다. 이 수치는 순수 진료비 약 3백73만원에 체류비 등이 포함된 것이다. 의료계뿐만 아니라 숙박·교통·통신·관광 등 여러 분야에서도 부수적 효과가 일어나며 진료 수입이 10억원 늘어날 때마다 19.6명의 고용 창출 효과까지 생긴다. 

세계 각국의 환자들이 자국의 병원을 이용하지 않고 외국까지 가서 치료를 받는 이유는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은 덕분에 외국인 환자들을 빨아들이며 한동안 의료 선진국으로 군림했다. 자국의 의료비에 부담을 느껴 외국에서 치료를 받으려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최근 의료 선진국으로 향하던 환자들이 태국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로 이동하고 있는 이유이다.

이런 요인들을 따져보면 우리 병원들도 의료관광 산업에는 안성맞춤의 조건을 갖추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우리나라 의료 기술의 경쟁력을 의료 선진국의 80~90% 정도로 보고 있다. 특히 암 치료, 간 이식, 성형수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진료 수입 늘어나면 고용 창출 효과까지

진료비를 따져보면 우리를 100으로 할 때 미국은 338, 일본은 149, 싱가포르는 105 정도이다. 가격 경쟁력이 충분한 셈이다. 병상 수와 MRI 등 첨단 의료 장비의 수준도 선진국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김강립 보건복지가족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의료 기술과 가격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다. 미국, 일본, 러시아, 동남아, 중국 등 타깃 국가가 인접해 있어 의료관광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라며 우리의 의료관광 인프라를 높게 평가했다.

자국의 의료 수준도 높고 비용도 저렴하지만 대기 시간이 길어 한국 같은 아시아 나라를 찾는 환자들도 있다. 캐나다가 대표적인 경우로, 간단한 수술도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고통 속에 신음하는 환자 처지에서는 의료비가 비싸더라도 하루라도 빨리 수술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게 된다. 캐나다 의료기업인 선 메디컬 그룹은 “10개월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10시간만 가면 훌륭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라며 한국을 최적지로 꼽고 있다.

국내외적인 평가를 종합해보면 의료관광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인다. 그러나 풀어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우리 의료계를 차별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고 의료 수준을 내세우는 의료 선진국과 최저 의료비를 내세우는 후진 의료관광국 사이에서 환자들을 유인할 만한 요인을 부각시키지 않으면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인 의사인 인요한 연세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은 “차별성 즉 브랜드 포지셔닝을 잘해야 한다. 의료 분야에서도 선택과 집중의 논리를 적용해서 중환자 치료를 특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간 이식과 위암 치료는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부분의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국가별로 제공하는 의료 상품을 달리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정진수 한국관광공사 전략상품팀장은 “예를 들면 한방 치료는 일본, 미주, 중동 지역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이다. 건강검진은 미국과 러시아 사람들에게 어필한다. 이처럼 국가별로 특화된 의료 상품을 내놓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훌륭한 의료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특히 의료라는 특수성 때문에 환자들은 국제적으로 검증된 병원을 찾는다. 따라서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의 인증을 받아 의료 수준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장경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기술협력센터장은 “우리나라가 의료관광에 뛰어드니까 태국 등 경쟁국들이 우리나라에는 JCI 인증을 받은 병원이 없다며 비하하고 있다. 실제 JCI 인증을 받은 병원은 연세세브란스병원이 유일하다. 싱가포르에는 14곳, 인도 11곳, 태국 4곳 등 세계적으로 1백20곳의 JCI 인증 병원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국제적으로 검증된 병원 더 늘려야

진료비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현재 외국인 환자 진료비는 병원마다 다르고 정해진 기준이 없다. 통상 내국인 환자의 3배 정도 많은 수가가 정해져 있다. 외국인 환자에 대한 진료비가 모든 병원에 동일하게 적용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비용 산정 기준은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의료 사고 관련 대비책도 챙겨야 한다. 의료 사고가 법적 소송으로 넘어가면 오랜 시일이 걸린다. 배상할 것이 있으면 신속하게 처리해서 우리나라 병원의 신뢰도 저하를 미리 막을 수 있게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정부는 2012년에는 외국인 환자 14만명을 유치해 1조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종철 삼성의료원장은 “이 환자들은 우리 의료 수준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된다. 즉, 병원과 의사의 치료 능력이 세계적으로 드러나는 만큼 외국인 환자 치료와 서비스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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