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바람’ 또 불까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9.03.2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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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재·보선 지역구 판세 점검 - 경북 경주‘친이계’ 정종복 전 의원과 ‘친박계’ 정수성 전 1군 사령관 대결 관심

▲ 한나라당 후보로 유력시되고 있는 정종복 전 의원 사무실(오른쪽)에 걸린 플래카드와 무소속 출마를 결심한 ‘친박계’ 인사 정수성 전 1군 사령관의 선거 홍보 플래카드(왼쪽)가 대조적이다. ⓒ시사저널 유장훈

경북 경주는 4·29 재·보궐 선거가 확정된 5곳 중 가장 열기가 뜨거운 지역이다. 일찌감치 예비후보의 대형 걸개 사진이 걸린 선거 사무실이 시내 중심가에 속속 들어섰다. 아직 여야 정당의 공천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16명의 예비후보가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했다. 시민들의 관심도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에도 친이명박(친이) 대 친박근혜(친박) 후보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면서 선거 열기가 조기에 달아올랐다.

한나라당에서는 정종복 전 의원이 총선 패배를 만회하기 위한 설욕전에 나섰다. 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지난 3월18일 공천 신청자 7명을 4명으로 압축했다. 이들 중 정 전 의원이 최종적으로 낙점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검사 출신으로 17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한 그는 당 주류인 친이계의 핵심 인사 중 한 명이다. 지난 2월21일 선거 사무실 개소식에는 이윤성·심재철·정두언 의원 등 친이계 인사 30여 명이 대거 참석해 정 전 의원의 재도전에 힘을 실어주었다.

정 전 의원과 함께 1차 관문을 통과한 다른 3명의 예비후보들은 ‘화합’을 강조하며 당의 최종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신바람 박사’로 유명한 황수관 예비후보의 선거 사무실 한쪽 벽에는 이명박 대통령, 박희태 대표, 박근혜 전 대표로부터 받은 임명장이 나란히 걸려 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 대변인을 지낸 김순직 예비후보도 이번 선거를 도약이냐, 대립이냐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선거로 규정했다. 역시 행정고시 출신으로 경주 부시장을 역임한 최윤섭 예비후보도 ‘지역 일꾼’과 함께 ‘새 사람’을 강조하고 있다.

18대 총선 때 ‘친박 열풍’ 맞고 정 전 의원 고배 마셔

본선은 한나라당 후보로 유력한 정종복 전 의원과 무소속으로 출마를 결심한 정수성 전 1군 사령관의 양자 대결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정 전 사령관은 박근혜 전 대표의 안보특보를 지낸 친박계 인사이다. 지난해 12월 열린 출판기념회에 박 전 대표가 참석하면서 ‘친박 후보’로 주목되기 시작했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이 되면 한나라당에 입당하겠다는 뜻을 미리 밝힌 그는 지난 3월20일 사무실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양자 대결 구도가 어떤 성격으로 형성될지가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초기에 형성된 친이 대 친박 대결 구도가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선거 결과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경주는 TK(대구·경북) 내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기대가 어느 지역보다 높은 곳이다. ‘박근혜 바람이 선거를 좌우한다’라는 말이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지난 선거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17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후보였던 정종복 전 의원이 50.52% 득표율로 여유 있게 당선했다. 당시 무소속으로 나온 김일윤 전 의원은 22.59% 득표율에 그쳤다. 하지만 ‘친박 열풍’이 불었던 18대 총선에서는 김일윤 전 의원이 47.22%를 득표해 42.04%의 표를 얻은 정 전 의원을 따돌렸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가진 여론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조사 주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두 예비후보가 접전을 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방송인 신라케이블이 3월11일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정수성 전 사령관이 19.5%, 정종복 전 의원이 18.2%를 얻었다. 앞서 지난 2월26일 같은 기관의 조사에서는 정 전 의원이 18%, 정 전 사령관이 13.4%였다. 오차 범위가 ±4.4%인 점을 감안하면 순위와 상관없이 혼전 양상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나라당 후보가 결정되고 본격적인 선거전에 들어가서도 이같은 대결 구도가 계속될지에 대해서는 양측의 주장이 명확히 엇갈린다. 정종복 전 의원측은 공천이 마무리되면 친이 대 친박이 아니라 한나라당 대 무소속의 대결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후보가 아닌 무소속 후보를 지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따른 전망이다. 박 전 대표가 친박 후보를 직·간접으로 챙겼던 18대 총선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박 전 대표가 정수성 전 사령관의 선거 사무실 개소식이 있던 지난 3월20일, 문중 행사인 춘분대제에 참석하기 위해 예정되었던 경주행을 포기한 것도 정치적 오해를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표가 개소식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경주를 찾는 것만으로 선거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박 전 대표가 어느 한쪽 후보를 전적으로 지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선거 상황을 지켜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정 전 사령관측도 박 전 대표가 공개적인 지원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박심(朴心)’을 알고 있는 경주 시민들은 ‘친박 후보’를 지지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이다. 또, 박 전 대표의 행보와는 무관하게 친박 지지 단체들이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실제 최근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그를 지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 총선에서 박사모는 정종복 전 의원을 ‘5적’ 중 한 명으로 지목해 낙선 운동을 펼친 바 있다.

민주당·자유선진당도 젊은 후보 내세워 정치 기반 확보 노력

투표율이 어떻게 될지도 관심을 모은다. 여론 조사 결과 정 전 의원은 40대 이하 젊은 층에서, 정 전 사령관은 40대 이상 중·장년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선호도를 얻었다. 정 전 의원측은 당 후보가 결정되면 지지도 결집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내다본 반면, 정 전 사령관측은 한나라당 지지자 상당수가 ‘친박’인 만큼 당과는 무관하게 투표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제1 야당인 민주당은 경주가 비록 열세 지역이기는 하지만 후보를 내서 정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인사는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상두 전 의원과 지난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서울 관악 을에 출마했던 임충섭씨 등 두 명이다. 민주당은 젊고 개혁적인 유력 인사를 영입해 후보로 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자유선진당에서는 이회창 총재의 정무특보인 이채관 국회정책연구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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