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는 말이 없으니 ‘의혹’은 누가 풀까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3.2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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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 문건’ 둘러싼 4대 의문점 분석

▲ 고 장자연씨(오른쪽)의 전 매니저인 유장호씨(왼쪽 사진 맨 왼쪽)가 3월18일 서울 종로구 AW컨벤션센터(하림각)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왼쪽), 시사저널 임준선(오른쪽)

성상납과 술자리 접대. 고 장자연씨는 여배우의 치명적인 약점을 문건에 적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직접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결론지었다.

장씨의 전 매니저 유장호씨는 “장씨가 지난 2월 중순께 나에게 “힘들다”라며 연락을 취해오자 기획사에서 장씨를 빼내오기 위해 2월28일 문건을 작성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장씨의 소속사 대표인 김성훈씨는 “문건은 나를 협박하기 위한 용도로 만든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 여배우의 약점인 문건을 왜 넘겨줬을까?

장씨가 쓴 문건은 주민등록번호가 찍혀 있고 간인이 되어 있는 등 법적 대응을 하기 위해 만든 서류로 이해할 수 있다. 장씨가 혼자 작성했을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마주 보고 구두로 이야기만 해도 ‘계약했다’라고 생각하기 쉬운 저 나이대의 연예인이 간인까지 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라고 한 관계자는 지적했다.
매니지먼트업계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과거의 비슷한 사례를 일러주었다. 그는 “A 소속사에서 빠져나오려는 무명 연예인에게 법적인 다툼이 걸려 있는 B 소속사에서 ‘충성 서약을 하면 빼내주겠다’라고 말했다. 폭탄을 만들어 오면 그것으로 저쪽을 협박해서 너를 풀어주겠다면서. 그 폭탄이 자필 문건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김대표의 ‘횡포’를 못 이겨 유씨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라는 의견도 나온다. 유씨와 장씨가 친밀한 사이였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장씨의 지인은 “장씨가 문건을 전달한 뒤부터 괜찮았던 우울증이 다시 심해졌다”라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문건이 장씨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

▒ 재가 되었다는 문건이 어떻게 등장했나?

3월10일 두 매체에서 장씨의 친필 문건이 공개되었다. 유씨는 10일 새벽 한 인터넷 매체와 일간지의 기자를 직접 만나 문건의 일부분을 공개했다. 구체적인 내용과 리스트는 감춘 채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배우입니다’라는 부분과 자필 서명과 간인, 주민등록번호 등이 공개되었다.

유가족과 전 매니저 유씨는 “지난 3월13일 원본과 복사본 한 부를 서울의 모처에서 모두 불태웠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지난 3월13일 KBS가 고 장자연씨가 쓴 문건을 처음으로 보도하면서 성상납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KBS는 3월13일 유씨의 기획사 사무실 쓰레기 봉투에서 이 문건을 발견했다고 입수 경위를 밝혔다. 재가 된 문건이 다시 나타나면서 결국, 또 다른 문건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유족은 KBS에 방송된 문건과 자신들이 본 문건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유씨가 복수의 매체에 문건을 공개했을 때부터 언론사에 제보하기 위해 여러 부의 문건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언론사에서 리스트 때문에 받아주지 않자 터뜨린 것 아니냐’라는 가설도 나온다. KBS는 지난 3월19일 “문건에 지워진 부분은 한 신문사 유력 인사의 이름이었다. 이 신문사의 한 중견 기자가 문건을 눈으로 확인했다는 또 다른 기자의 증언도 나왔다”라고 보도했다.

유씨가 여러 부의 복사본을 가지고 있었다면 “장씨를 돕기 위해”라는 말은 거짓말이 된다. 이미 경찰은 유씨의 진술이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보고 문건 사본이 더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재조사할 방침을 굳혔다.

▒ 김씨와 유씨가 갈등 관계에 놓인 이유는?

유씨는 김씨의 소속사에서 일하다가 독립해 ‘호야스포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차렸다. 이 과정에서 김씨 소속사에서 지명도 높은 배우인 L씨와 S씨를 영입했다. 지난 2월 S씨가 미지급된 돈을 지급해달라고 김씨를 상대로 고소하자 김씨는 S씨를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했다. 장씨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L씨도 김씨에게 고소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씨측에서 법정 싸움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유씨는 여러 차례에 걸쳐 고인이 된 장씨를 순수하게 도우려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유씨는 지난 3월18일 기자회견을 열고 “나는 장씨가 부당하게 싸우다가 죽음으로 마감한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그 부당함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라고 말하며 장씨를 투사처럼 묘사했다.

유씨를 신뢰할 수 있을까. 유족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장씨의 자살 직후 문건을 가지고 언론플레이를 먼저 한 점, 태웠다는 문건이 유씨의 사무실 쓰레기 봉투에서 다시 나타난 점 등에서 이미 의혹투성이이다. 매니지먼트업계에서는 “유씨 뒤에 실제 오너가 따로 있다”라는 소문도 떠돈다.

김씨는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이다. 그는 지난 3월18일 MBC와의 인터뷰에서 “업무 관계자들과 술을 마실 때에도 유씨를 부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배우를 아끼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라며 유씨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다.

김씨의 소속사 직원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장씨가 이리저리 불려다니면서 술자리에 많이 동석했었다”라고 밝혔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방송 관계자는 “한 여배우는 장씨 문건에서 페트병으로 맞았다는 내용이 나오자 ‘저거 혹시 김씨 이야기 아니냐’라고 했다더라”라고 전했다. 김씨 역시 거짓말을 하고 있다.

▒ 경찰은 왜 말을 자주 바꾸나?

경찰의 칼끝은 제대로 가고 있을까. 리스트가 사건의 핵심이 되면서 경찰의 공식 입장도 자주 바뀌고 있다. 지난 3월15일 경기도 분당경찰서는 “KBS에서 제출받은 문건에는 폭행과 성상납, 술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실명이 몇 명 거론되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인 17일에는 “언론사로부터 특정 인물의 이름이 지워진 채로 받아 이름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하더니, 18일에는 “문건에 관계된 리스트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며 리스트 자체를 부인해 구설에 올랐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것을 ‘부담감’으로 해석했다. 그는 “리스트 자체가 워낙 파급력이 크다 보니 내부에서 수위를 놓고 신중하게 대처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문제는 신중함을 떠나 수사 의지가 있느냐 여부이다. 분당경찰서 주위에 외압설이 떠도는 이유이다. 그렇지 않아도 2002년 연예계 성상납 사건 때 이미 외압설의 굴레를 써본 수사 당국이 어떤 식으로 조사를 할지 전 사회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경찰도 리스트에 초점을 맞춰 수사하고 있다. 인터넷에 나도는 ‘장자연 리스트’의 유포를 막는 데만 주력한다면 거꾸로 대중은 리스트를 더욱 신뢰하게 된다는 점도 경찰이 안고 있는 딜레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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