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독버섯’이 일 냈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3.2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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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 재산인 연예인 푸대접은 상상도 못할 일…과거 고집하는 일부가 물 흐려

▲ 여성단체 회원 10여 명이 경기도 분당경찰서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 장자연씨 죽음과 관련해 성역 없는 경찰 수사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죽은 애가 정말 안 됐지. 이쪽에서 차이고 저쪽에서 차이고 얼마나 힘들었겠나.” 매니지먼트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 장자연씨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타까워했다. 고 장자연씨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성상납 같은 일은) 사실 새롭지 않은 이야기이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깨끗해졌다. 극소수의 일이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무명의 껍질을 막 벗기 시작한 여자 연예인이 자살했고 그 배경에는 이른바 ‘성상납’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연예계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이전과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연예 산업의 투명도가 높아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특히 방송계에서는 ‘접대’라는 단어를 꺼내면 제작자나 매니지먼트 관계자 모두 손사래를 친다. 매니지먼트업에 몸담고 있는 장 아무개씨는 “지금은 연예 사업 자체가 커지고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과거와 같은 관행이 먹히지 않는다. 연예인이 나의 재산인데 어느 누가 상처를 내고 싶겠나”라고 말했다.

특히 제작 일선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시스템상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이다”라고 말한다. 한 드라마 PD는 “딱 짜인 틀에 고정된 예산을 가지고 집행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누구 하나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 시스템이 투명해져서 접대를 받았다고 누구를 임의로 넣고 빼고 그런 것이 가능하지 않다. 설혹 캐스팅을 약속해도 PD가 책임질 수 없는데 왜 그런 위험 부담을 지겠느냐”라고 설명했다.

▲ 2002년 한국일보의 성상납 관련 기사(위쪽)와 게시판에 올라온 장자연 리스트.


“누구를 임의로 넣고 빼고는 불가능”

뜨기 위해서 접대하던 시절은 지났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우선 주먹구구식의 매니지먼트가 ‘스타 시스템’이 갖추어지면서 선진화되었다. 예비 연예인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연예인으로 데뷔하는 과정까지 정형화된 프로그램, 즉 ‘수업’을 받는다. 오히려 자기 관리에 충실하지 못한 연습생의 경우 퇴출되는 일도 일어난다. 한 전직 연예인 매니저는 “과거처럼 지상파 채널이 독식하던 시대가 끝나지 않았나. 케이블도 있고, 인터넷에서 UCC를 잘 만들어도 뜨는 세상이 되었다. PD와 매니지먼트의 갑을 관계도 예전에 비해 달라진 측면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구태를 재연하는 몇몇 기획사는 존재한다. 취재 과정에서 방송계에서 잠깐 활동하던 전직 연기자에게 “접대 사례를 경험한 친구들을 소개시켜줄 수 있겠느냐”라고 부탁하자 “그런 친구들을 안다”라며 연결시켜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연예계를 오랫동안 취재해왔던 한 전직 기자는 “장씨 사건도 매니지먼트 대표가 예전 방식에 연연해 그 방법(접대)을 계속 이용한 것 아니냐. 그 방법을 이용해 성공한 사람일수록 더욱 거기에 의지하기 마련이다”라고 지적했다. 

장씨의 자살 이후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는 현직 혹은 전직 연예인들의 기사가 언론을 통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이런 사건의 중심에는 항상 ‘돈’이 따라다닌다.

매니지먼트는 연예인의 노동력으로 이익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매니저는 로비스트이고, 머리만 굴려 연예인의 고혈을 이용해 치부하는 사람이다”라고 정의 내리기도 했다. 특히 일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하는 무명 연예인일수록 계약 관계에 얽매이게 되면 매니저의 말을 거부하기 힘들다. 이런 경우일수록 기획사의 횡포에 쉽게 좌지우지당한다.

로비스트에게는 로비의 대상과 목적이 있는 법이다. 최근 방송이나 언론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대신 대기업 관계자와 만나는 것은 더욱 중요해졌다. 기업은 광고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다. 기획사에게도, 연예인에게도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기획사는 연예인에게 투자한 돈을 최대한 빨리 뽑아내야 하는 입장이다. 무명 연예인이 “오늘 같이 나가는 자리에 대기업 간부가 나오는데 잘만 하면 CF에 출연할 수도 있다. 지금 뜨고 있는 ○○도 처음에는 다 그랬다”라는 식의 매니저의 설득을 뿌리치기란 어렵다. 심지어는 극소수이지만 자리를 주선해주는 것, 그 자체가 매니저에게 수입이 될 때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광고가 아니라 투자를 받기 위해서 만남을 주선하고 접대를 하는 경우도 생겼다. 매니지먼트 회사가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한 전직 기획사 관계자는 “투자를 받아 다른 회사를 인수해 외형을 불린 뒤 우회 상장을 해 차익을 얻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투자를 받으려는 업계 관계자들 중 일부가 사채업자나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곤 했다”라고 말했다.

CF 출연 제의하며 꼬드기기도

연예인매니지먼트 사업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적자 구조가 개선되지 않자 몇몇 기획사들은 스타급 연예인을 얼굴 마담으로 내세우고 투자를 받아 우회 상장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렸다. 유명 연예인들과 기획사 관계자들이 우회 상장을 통해 주식 부자 대열에 올랐다. 먼저 이런 ‘머니게임’에 성공한 기획사들을 따라 많은 기획사가 코스닥시장 진출을 노렸다. 이처럼 우회 상장을 통해 생긴 시세 차익은 순전히 주식을 가지고 있는 기획사 관계자의 몫이다. 투자자를 접촉하는 자리에 접대를 하기 위해 따라나선 무명 연예인이 볼 수 있는 이득은 없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회사 시스템을 분리해 ‘접대용’ 연예인을 따로 둔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매니지먼트업계에 오래 몸담았던 전 아무개씨는 “과거 여러 톱스타를 거느리며 인기 매니저로 알려졌던 분도 속칭 ‘접대용 연예인’을 따로 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중 일부는 자신도 모르게 접대용으로 분류되어 그런 자리로 끌려가지만 일부는 그런 자리라는 것을 알고도 나간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예를 들어 모두가 스타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기획사에 들어온다. 하지만 막상 보면 연기를 정말 잘하는 아이도 있고, 연기를 잘 못하는데 죽어도 배우가 되겠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반면, 화려함을 동경해서 무작정 들어온 친구도 있는데 이런 친구들이 주된 타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달콤한 사탕발림도 들어간다. “○○도 스폰서를 잡아서 편하게 살고 있다”라며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설득 작업을 병행한다. 그는 “브라운관에 잘 비치지 않으면서도 대접받고 사는 ○○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헛된 기대를 가지기 쉽다. ○○의 속사정은 모르고 겉모습만 보면 편하게 살고, 대접받고 살 수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설득당해 흘러들어가는 친구도 더러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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