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트리플’, 일 낼까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4.01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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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중수부 이인규-홍만표-우병우 라인, 명예회복 별러…야당은 “표적 수사”

▲ 박연차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 ⓒ시사저널 임준선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칼날이 서슬 퍼렇다. 수사 속도도 예상보다 빠르다.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T.S 엘리어트의 장편시 <황무지>를 인용하며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차라리 겨울이 따뜻했다”라고 말했다. 3월 중순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박연차 수사가 4월에 더 가속도가 붙을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지난 1월, 검찰 인사에서 ‘특수 수사의 본산’인 중수부에 이인규 부장이 새로 부임했다. 새로 짜여진 ‘이인규 중수부장-홍만표 수사기획관-우병우 수사1과장’ 진용을 검찰 내부에서는 ‘환상의 트리플’이라고 부른다. ‘금융통’인 이인규 부장은 서울지검 금융조사부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3년 SK그룹 회계부정 비리 사건을 진두지휘했고 결국, 최태원 회장을 구속시켰다. ‘특수통’으로 꼽히는 홍기획관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YS의 차남 현철씨가 연루된 한보 사건 등을 수사했다. 우과장은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에서 활동했고, 금융조세조사2부장을 거친 ‘특수통’이다. 

중수부는 최근 몇 년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과 변양호 전 재경부 국장의 뇌물 수수 사건 등 대형 사건에서 잇따라 무죄 판결이 났다. 재미교포 사업가 조풍언씨의 대우그룹 구명 로비 의혹과 김승광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의 배임 수재 의혹 사건 등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특히 한국석유공사와 강원랜드 등 공기업 비리 의혹 사건에서도 연전 연패하자 “중수부가 ‘한 건’ 하려고 무리하게 기소했다”라는 비난을 받았다. 검찰 최고 수사 기구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긴 것이다. 

이처럼 중수부가 기소한 대형 사건이 줄줄이 무죄로 판결되면서 중수부의 명예가 흔들렸다. 일각에서 ‘중수부 폐지론’이 나올 정도였다. 지난해 진행했던 박연차 사건에 대한 수사도 지지부진했다. 이인규 부장은 취임과 동시에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2월 내로라하는 전국의 ‘특수통’ 검사 8명을 중수부로 뽑아왔다. 새로운 진용을 갖춘 지난 2월 말 대검의 한 관계자는 “박연차 수사는 3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라고 자신했다. 그리고 이 관계자의 ‘예언’은 적중했다.  

그런데 중수부가 박연차 수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가자 민주당 등 야당은 ‘표적 수사’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중수부의 수사 초기 성적표를 보면, 구속된 인사 대부분이 구 여권 인사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국세청이 지난해 박연차 회장 소유의 태광실업과 정산개발 등을 세무조사하면서 확보한 ‘박연차 리스트’를 검찰이 넘겨받아, 미리 ‘각본’을 정해놓고 짜맞추기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함께 청와대와 발맞춰 ‘기획 수사’를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중수부는 이같은 ‘기획 수사’나 ‘짜맞추기 수사’ 의혹을 강하게 부인한다. 홍기획관은 “리스트를 확보해놓고 곶감 빼먹듯 수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회장과 여비서의 다이어리와 광범위한 계좌 추적, 통화 내역 조회 등을 통해  수사를 벌여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부장은 “(밖에서) 어떻게 흔들든 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라고까지 말했다. 정치권의 외풍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것을 천명한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학 동기로 절친한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대표와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박회장 구명 로비에 나섰다는 의혹 등이 불거지자, 홍기획관은 기자 브리핑에서 “우리 스탠스대로 (조사)할 테니까 기다려 달라”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칼날이 무뎌지지 않을 것임을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박연차 수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이인규 부장과 정동기 청와대 민정수석, 장다사로 민정1비서관이 경동고 선후배관계라는 것이다. 정수석이 1972년 졸업했고, 이부장과 장비서관은 1976년 졸업 동기생이다. 일각에서 ‘기획 수사설’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배경 때문이다.

검찰의 전·현직 고위 간부들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연일 제기되자, 이부장이 직접 나서서 “내부 인사가 얽혀 있어 수사가 멈칫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던데, 아는 사람이 더 무섭고 독하게 수사한다. 이번 수사에서 뭐가 나올지는 나도 모른다”라며 성역 없는 수사를 진행하고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기획 수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갈수록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친노 인사들을 연달아 구속하고 소환 조사하는 데다, 박회장이 미국에 사는 노 전 대통령의 지인에게 50억원을 달러로 보냈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획 수사설이 탄력을 받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측근 비리·대선자금 X파일 다시 들출지 주목

이부장은 이와 관련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내신 분이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일단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검찰은 “수사는 언제, 어디로 튈 지 모를 일이다”라고 언급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런데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엮으려고 작심한다면 그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주목된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기자에게 “검찰의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수사와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당시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두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미묘한 여운을 남겼다. 검찰이 작심하고서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하려 든다면 당시 수사 파일을 다시 열어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2003~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먼저, 2003년 12월29일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은 노무현 대통령 측근(안희정·여택수·선봉술 등) 비리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남김없이 철저히 수사했다”라면서도 “수사 결과가 측근 비리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여운을 남겼다. 당시 ‘대통령을 수사한 심정’을 묻는 질문에 안부장은 “이번 수사의 초점은 대통령 측근들이지만 노대통령이 관여된 부분도 있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고 예우를 해야 된다고 본다. ‘지금은’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밝혔다. 당시 검찰 안팎에는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이 실정법을 위반한 혐의를 포착했다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헌법상 대통령은 재임 중 내란 또는 외환의 죄가 아니면 형사 소추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검찰이 ‘덮어두기’로 결정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지난 2004년 5월21일, 불법 대선자금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안부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불법 대선자금 모금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증거가 없어 불입건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노대통령을 대신해서) 장수천 채무를 변제한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안부장은 “(검찰) 나름대로 결론이 있지만, 국가 안정과 대통령의 면책특권 등을 고려하면 그렇다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처럼 2003~04년 수사 결과에 알 수 있듯이, 당시 노대통령은  ‘국가 원수 예우’ ‘면책특권’ 등으로 검찰의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검찰이 ‘해묵은’ 수사 파일을 다시 들춰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야권의 표적 사정 수사라는 강한 비난에 직면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의 반응이 어떠할지도 짐작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부장과 홍기획관은 기자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마치 주문을 외듯이 “수사에는 성역이 없다”라고 반복한다. 하지만 과거 검찰의 대형 사건 수사가 끝난 다음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용두사미로 끝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새롭게 태어난 중수부가 한 점 의구심이 남지 않도록 성역 없이 수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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