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정확히 이해하는 친구들”
  •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09.04.0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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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야구 관계자들이 WBC에서 느낀 한국 야구

▲ LA 다저스타디움에서 만난 박동희 기자(위 오른쪽)와 톰 버두치 야구 칼럼니스트. ⓒ스포츠춘추 제공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일본은 2006년 개최된 초대 WBC에 이어 2대회 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크게 주목을 받은 팀은 일본이 아니었다. 한국이었다. 이유가 있다.

일본이 대회 시작 전부터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면 한국은 우승과는 다소 거리가 먼 다크호스 정도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회가 열리기 전 미국 스포츠 케이블채널 ESPN에서는 미국과 도미니카 그리고 일본을 우승 후보로 소개했다. 한국은 베네수엘라, 푸에토리코, 멕시코 다음으로 4강 후보에 뽑혔다.

다크호스가 결승까지 진출했으니 세계 야구계가 주목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 야구가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공·수·주 어느 하나 빠트릴 것 없이 완벽한 실력과 벤치의 절묘한 작전이었다.

한국과 베네수엘라전이 열린 3월21일(이하 한국 시간) 다저 스타디움에서 만난 미국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 CNN-SI)의 저명한 야구 칼럼니스트 톰 버두치는 한국이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야구 강호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버두치는 대회 시작 전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 올림픽에 프로 선수들을 출전시킨 야구 강국이 없었음을 떠올리며 메이저리거들이 대거 출전하는 WBC는 상황이 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그는 대회 직전까지 자신의 칼럼에서 한국을 논외로 두었다.

▲ 이대호 선수(위 왼쪽)가 베네수엘라와 맞붙은 준결승전에서 안타를 날리고 있다. ⓒAP연합

“탄탄한 기본기와 창의적 플레이가 돋보이는 팀”

심정적 동요는 있었다. 3월9일 WBC 아시아라운드 1, 2위 순위 결정전에서 한국이 메이저리거가 5명이나 포함된 우승 후보 일본을 1 대 0으로 꺾었을 때이다. 하지만 반신반의했다. 이틀 전 한국이 2 대 14 콜드게임으로 진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버두치가 자신의 입장을 철회한 것은 16일 미국 샌디에이고 팻코파크에서 벌어진 멕시코전에서 한국이 홈런 3방으로 8 대 2 승리를 거둔 뒤부터이다.

“멕시코 타선은 파워에서 참가국 가운데 최고이다. 이번 대회 팀 공격력 전 부문 1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이날 홈런은 모두 푸른 유니폼(멕시코)이 아니라 하얀색 유니폼(한국)에서 나왔다. 그것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투수 친화적이라는 팻코파크에서 말이다.”

버두치는 3월22일 미국 LA 다저 스타디움으로 나가 한국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직접 살펴보았다. 한참 동안 한국 선수들을 지켜본 뒤 “한국은 탄탄한 기본기와 창의적 플레이가 돋보이는 팀”이라며 “한국 선수들은 야구를 정확히 이해하는 친구들”이라고 극찬했다. 4시간 뒤 버두치가 말한 ‘야구를 이해하는 친구들’은 전 선수가 메이저리거로 구성된 강호 베네수엘라를 10 대 2로 이겼다.

버두치는 결승전에서 한국과 일본 가운데 어느 팀이 우승을 할지 예상하지 않았다. “어느 팀이 우승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승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버두치는 힘과 조직력에서 한국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리고 이 말을 빼놓지 않았다.

“베이징올림픽에 메이저리거들이 출전했어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 한국은 금메달을 충분히 목에 걸 만큼 강팀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버두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LA 다저스 멕시코 담당 스카우트 마이크 브리토는 한국이 멕시코와 베네수엘라를 어떻게 요리했는지 똑똑히 지켜보았다. 브리토는 “놀라운 투수들과 엄청난 파워의 타자들을 앞세우고 한국 야구가 세계 야구의 중심으로 오고 있다. 특히나 세계 야구의 흐름에 무척 빨리 적응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실례로 브리토는 한국 투수들의 다양한 변화구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같은 투구폼에서 뿜어져 나오는 체인지업과 위력적인 투심 패스트볼을 구사하는 한국 투수들에 대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기술적으로 메이저리그와 한국 야구는 손톱만큼의 차이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브리토는 “구단 내에서 한국 선수들이 화제로 등장했다. 아시아의 좋은 선수들을 더 큰 무대에서 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이다”라고 말해 한국 선수 영입에 관심이 많음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는 1981년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내셔널리그 신인왕과 사이영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메이저리그 사상 신인왕과 사이영상을 동시에 수상한 투수는 그 이전에 아무도 없다.

한국와 일본의 WBC 결승전이 열린 3월24일 다저 스타디움에 발렌수엘라가 등장했다. 결승전 시구를 위해서였다. 1991년 다저스에서 방출된 뒤 18년 만에 다저 스타디움 마운드에 오른 발렌수엘라는 시구가 끝난 뒤 “한국 왼손 투수들을 잘 안다”라며 그 가운데 ‘덩치가 큰 투수(류현진)’를 에이스로 꼽았다.

발렌수엘라는 자신과 류현진이 같은 왼손 투수에 체형이 비슷하다고 농담을 꺼낸 뒤 “한국의 왼손 투수들은 95마일 이상의 빠른 공은 구사하지 못하지만 제구가 좋고 빼어난 변화구를 던질 줄 안다”라고 말했다. 특히 류현진의 체인지업을 가리키며 “메이저리그에서도 당장 통할 구종이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투수력과 벤치는 한국이 일본보다 한 수 위”

한술 더 떠 발렌수엘라는 “투수력에서는 일본보다 한국이 앞선다. 한국 투수들이 좀더 공격적인 투구를 한다”라고 평가했다.

발렌수엘라가 한국의 투수력을 일본보다 높이 샀다면 한국 벤치의 능력이 역시 일본보다 낫다고 평가한 다저스맨이 있었다. 토미 라소다 LA 다저스 전 감독이다. 라소다는 발렌수엘라와 함께 결승전 시구를 맡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한국은 힘이 좋고 발이 빠른 팀이다. 한국 감독은 이 두 가지 장점이 극대화되도록 경기 중간마다 작전을 건다. 놀라운 것은 그가 거는 작전마다 모두 성공한다는 것이다.” 라소다의 생각이다.

라소다는 김인식 감독의 작전이 매번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팀원들의 장단점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짐작했다. 일본 대표팀 하라 다쓰노리 감독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두 팀 감독 모두 좋은 감독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한 팀 감독은 한국어를 쓰고 다른 팀 감독은 일본어를 쓰는 것이 차이이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라소다는 “베테랑 감독의 경험은 오래된 와인과 같다. 그런 면에서 한국 감독이 일본 감독보다 원숙한 느낌을 준다”라는 말로 김인식 감독의 벤치 우위를 에둘러 표현했다.

세계 야구계의 저명한 인사들이 앞을 다퉈 한국 야구의 선전을 높이 평가할 때 가장 눈에 띄는 말이 있었다. ‘아사히TV’에서 해설을 담당하는 구리야마 히데키의 평가이다. 일본 야구계에서 손꼽히는 ‘지한파’ 가운데 한 명인 구리야마는 “한국 야구는 일본 스타일도, 미국 스타일도 아닌 새로운 스타일이다”라며 그것을 일본 야구와 미국 야구의 장점만을 종합한 ‘월드 베이스볼’이라고 지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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