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모르니 할 일이 없네
  • 정준모 (미술비평·문화정책) ()
  • 승인 2009.04.0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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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국공립 미술관장, 비전문가가 태반…현행 체제로는 미술관 앞날 없어

ⓒ시사저널 임준선

지난 십수 년 전부터 소위 ‘세계화’ ‘국제화’를 외치면서 개혁과 혁신을 외쳐왔지만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여전히 미치지 못하고 있는 분야는 박물관(museum)이다. 아직도 여전히 고물상과 박물관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고, 미술관과 화랑을 구분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미술관(Museum of Art)과 전시관(Kunst halle 또는  Kunst Haus)을 구분한다는 것은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면서 인수분해를 풀겠다고 덤비는 것과 같다. 

게다가 미술관 또는 박물관은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사실은 박물관으로 종류만 다를 뿐이다. 박물관은 우리가 아는 역사적인 유물을 다루는 정통 박물관과 함께, 미술품을 전문으로 다루는 미술박물관 그리고 항구적인 기관으로서의 도서관 및 문서보관소와 같이 보존과 전시를 하는 기관과 자연사·고고학·인류민속학상의 유물과 유적, 역사기념물 또는 유적으로 박물관의 성격을 가지는 수집·보존·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 식물원·동물원·수족관·동식물 사육장 등과 같은 생존하는 표본을 진열하고 전시하는 기관과 우리 천연기념물 또는 국립공원 같은 자연보호 지역과 과학관, 천문대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영역을 포함한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박물관이라는 개념은 매우 축소된 의미의 것이며 동시에 미술관을 박물관의 하위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유엔 가입 국가인 대한민국이 유엔 산하 유네스코(UNESCO)의 세계박물관협회(ICOM)가 정한 권장 사항을 위반한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한국은 현직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임에도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관련해서는 이 규범과 거리가 멀다. 지난 2003년 국제박물관협회 총회까지 유치해서 성공적으로 개최했던 국가가 여전히 미개하고 원시적인 미술관·박물관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난센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관장은 정무직이다? 

이렇게 천박하고 부박한 미술관에 대한 인식 정도는 한국의 미술관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관의 역할에 그친다. 여기에 미술관의 선장격인 미술관장은 배를 만들어본 경험은 있지만 망망대해에 배를 띄우고 조정해서 험난한 파도를 넘어 신대륙을 발견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그들이 망망대해에 나가 높은 파도와 풍랑을 만났을 때 취할 행동을 생각해보면 오늘날 한국의 이름뿐인 미술관과 미술관장의 역할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국공립 미술관은 형식적이나마 공모 제도를 거치고 있지만 정무직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국립미술관의 관장은 대통령 또는 임명권자의 입맛이나 그간 신세 진 문화계 인사들에게 나누어주듯 임용된 것이 사실이고 이들은 그 자리에 앉아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하거나, 아니면 자기 사람을 심는 데 열중해왔다. 물론 이런 일도 종래의 일반직 공무원들이 순환 보직의 일환으로 돌아가면서 부임하던 것에 비하면 진일보한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1969년 경복궁의 총독부 미술관 자리에서 출발했지만, 당시 관장은 문화공보부 관료들이 돌아가면서 관장으로 부임하다 12년 만인 1981년에 들어서야 미술비평가 이경성이 취임한다. 그러니 그전의 미술관의 역할과 입장이 어떠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  

전문성 무시한 ‘보은 인사’도 많아

▲ 배순훈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왼쪽)이 문화체육관광부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립미술관의 역사가 이러하니 지방 미술관들은 오죽할까. 전문직 관장을 보임해야 한다는 여론 때문에 미술 전공자들을 관장으로 임용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사실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이다. 미술이론이나 미술사를 전공하고 여기에 박물관학을 이수해야 하는 전문가들이 앉아야 할 관장 자리에, 대개는 자치단체장 선거 승리에 기여한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번호표 받아가듯 2년에서 3년의 임기를 돌아가며 채우는 형편이다. 그렇다 보니 지방 공립미술관장은 계약직이라기보다는 정무직에 가깝다. 그런데 막상 취임하고 보면 건물만 덜렁 있는 미술관에서 관장이 할 일이란 거의 전무한 것이 사실이다.

관장이란 미술관·박물관의 전문직에 속하는 직종이다. 이는 국제박물관협회와 미국미술관·박물관협회(AAM)에서도 정한 원칙이다. 이렇게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임에도 미술관·박물관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거나 때로는 해당 분야의 실기를 전공했다고 부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마치 종합병원에서 산부인과에 정형외과 전문의를 과장으로 보임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런데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대한민국에서는 일반화되거나 관례적인 일이 되고 있다.

미술관장은 미술관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해당 미술관 활동에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엄중한 자리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역사가 깊은 미술관의 관장들은 대개 15년에서 20여 년 동안 봉직하면서 미술관의 성격을 분명하게 만들어놓는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지적 원천’이라고 불리는 알프레드 바(Alfred H. Barr,1902~81)나 현 테이트 모던(TATE Morden)의 관장 리콜라스 세로타(Nicholas Serota,1946~) 등이 그들이다. 이들이 미술관장으로서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학예연구직과 레지스트라, 컬렉션 메니지먼트 담당자, 컨서베이터 등의 미술관 전문직들과 전문가로서 협업 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미술관·박물관이란 연구기관의 성격이 우선하는 곳으로 직급이나 직책에 상관없이 상호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책임과 권한을 가지는 상명하복의 원칙보다는 전문직으로서 협업이 중시되는 곳이다.

하지만 한국의 미술관장들은 사실 관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일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쥐꼬리만한 예산으로 임기 중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고 해보지만 전시하나 꾸리기가 버겁다. 그래서 외부 자본가들이 기획한 전시를 유치해서 대관료를 받는 것에 만족할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마치 그 일을 자신들이 유치하고 큐레이팅한 것처럼 가면(?)을 써야 하는 아픔이 있지만. 그러나 이마저도 시장이 형성되는 대도시 미술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지방 미술관으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게다가 미술관의 기본이라 할 작품 수집 예산은 미술시장에서 잘나가는 블루칩 작가의 작품 한 점 구입하기에도 버겁다. 그러니 관장으로서 큰 꿈을 가지고 취임했지만 무료하기만 할 뿐, 두어 평 남짓한 관장실은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감옥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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