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고 치는’ 음악 유통?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9.04.0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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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음악 사이트 요금 담합 의혹…음원 독점한 대기업 횡포가 이유

ⓒ그림 최익견

“사실상 담합 맞다. 구체적인 가격까지 이야기가 오가는데 이게 담합이지 뭐겠는가.” 온라인 음악 사이트 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온라인 음악 사이트를 한 번이라도 이용해보았다면 음악 사이트에서 판매되는 상품 가격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심지어 Free-DRM(디지털저작권관리가 장착되지 않은 상품)이 출시된 시기나 가격 인상 시점까지도 비슷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지난 3월19일, 가격 담합 의혹을 제기하며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 고발 대상은 대형 음반 유통사, 온라인 음악 사이트, 3대 메이저 직배사 등 8개 업체이다.

경실련의 문제 제기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맞는 지적이다. 대형 음반 유통사가 정한 가격이 곧 시장 가격이다. 대형 음반 유통사는 대형 음반 제작사가 운영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제작사가 음원 저작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음원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대형 음반 유통사가 정한 가격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라고 털어놨다.

“디발협 말 듣지 않으면 음원 70% 줄어”

Free-DRM 출시 과정을 살펴보면 대형 음반 유통사의 입김이 얼마나 강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소리바다는 지난해 초, Free-DRM을 월 4천원에 무제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지난해 2월29일, 곡 수를 1백20곡으로 제한하고 월 5천원에 서비스할 수 있도록 승인해주었다.

그러자 음반 유통·제작사 단체인 디지털음악발전산업협의체(이하 디발협)가 즉각 반발했다. “전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Free-DRM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곳은 없다. 온라인 음원 시장을 죽인다”라는 이유에서였다. 디발협은 소리바다에 음원을 공급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이 때문에 소리바다는 전체 온라인 음원 가운데 70%가량을 공급받지 못했다. 일종의 보복 조치였다.

3개월을 버티다 결국, 소리바다는 디발협과 합의를 했다. Free-DRM 상품을 출시하되 월 5천원에 40곡만 다운로드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백50곡 다운로드는 9천원을 받기로 했다. 소리바다는 여기에 1천원만 더하면 무제한 음악 감상이 가능한 상품도 함께 출시했다. 멜론, 도시락, Mnet 등 5개 온라인 사이트도 뒤이어 4가지 상품을 내놓았다. 물론 가격은 똑같았다.

그로부터 5개월 뒤, 무제한 음악 감상이 포함된 상품 가격이 일제히 1천원 인상되었다. 경실련은 가격 담합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동시에 인상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업체 관계자의 증언은 이런 의혹에 힘을 더해준다. 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1천원 올리지 않고도 회사를 유지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디발협에서 1천원을 인상하라고 압박이 들어왔다. 이 말을 따르지 않으면 고객들에게 서비스할 수 있는 곡 수가 70%가량 줄어든다. 결국, 우리도 올렸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대형 음반사 관계자들은 경실련의 지적에 대해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라고 이구동성으로 항변했다. 업체 관계자는 “40곡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상품 가격이 동일하게 5천원인 이유는 문체부가 승인한 ‘음원 사용료에 대한 징수 규정’에 따른 것이다. 문체부는 작곡가를 비롯한 음원 권리자에게 음원 판매액의 40%를 지급하되 그 금액이 2천원보다 적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정확히 기준선에 맞게 떨어지는 금액이 5천원이다”라며 담합 의혹을 반박했다.

하지만 곡 수 제한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문체부는 월 5천원에 1백20곡을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승인했지만 디발협은 40곡으로 제한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곡 수를 얼마로 제한할지 결정하기 위해 이동통신사 관계자들이 모인 적은 있다. 담합이 아니라 권리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들의 해명은 선전용에 지나지 않는다. 음원 판매 금액을 누가 얼마의 비율로 가져가는지 꼼꼼하게 따져보자. 음원에는 3가지 권리권자가 존재한다. 곡을 만든 저작권자(작곡가·작사가·편곡가)와 실연자(가수·연주가), 인접권자(음반 제작사)이다. 음원 판매 금액 가운데 저작권자는 9%, 실연자는 4.5%를 가져간다. 인접권자 손에 40% 내외가 떨어지고 나머지 46.5%는 음반 유통사와 음악 사이트 회사들이 나누어 갖는다. 대기업들이 음반 제작과 유통사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음원 시장 매출은 대기업이 다 가져간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경실련 윤철한 부장은 “합법적인 음원 시장이 커지면서 저작권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은 아주 미비하다. 대기업의 배만 불려주고 있다”라고 꼬집어 말했다.

온라인 음원 시장에서는 자유 경쟁 불가능

1천원 인상 역시 대형 유통사들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할인된 금액을 정상가로 받는다고 고객들에게 말했지만 정상가의 기준은 이들이 정한 금액일 뿐이다. 문체부가 승인한 규정에는 복합 상품인 경우 무제한 음악 감상 서비스를 1천원 정도에 제공하라고 나와 있다. 이들의 말대로 1천원을 인상해 2천원을 받을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대기업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음원 서비스를 하기 위해 서버나 플랫폼 형성 등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이것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금액은 받아야 한다. 지금 책정된 금액도 상당히 낮다”라고 대응했다.

이같은 말은 중소 유통사 처지에서는 배부른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4천억원에 달하는 온라인 음원 시장에서 비중을 가장 크게 차지하는 것은 컬러링과 벨소리 서비스로 매출 규모가 연간 3천억원대에 육박한다. 이 돈은 절대적인 시장 우위를 보이고 있는 SKT, KTF에만 돌아간다. 다운로드 시장 규모는 1천억원 정도이다. 이 시장을 두고 수십 개의 유통사들이 경쟁하고 있다.

이 경쟁에서도 이동통신사는 우월한 위치에 서 있다. 음원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온라인전송위원회 김승기 이사는 “대기업은 음반 제작사에 투자를 하는 조건으로 음원을 자사가 운영하는 유통사에만 공급하도록 계약을 맺는다. 또는, 1주일 정도는 자사가 운영하는 유통사와 온라인 사이트에 공급하고 이후에 다른 업체에 건네준다. 유행에 민감한 유저들은 바로바로 음원이 공개되는 곳으로 몰린다”라고 설명했다.

중소 유통사들은 가격 경쟁력이라는 카드를 내밀 수도 없다. 소리바다의 사례에서 보여주듯이 파격적인 상품을 가지고 나오면 대형 음반 제작사나 유통사가 음원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음원 시장에서는 자유로운 경쟁이 불가능하다. 이 피해는 소비자와 저작권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소비자는 좀더 저렴하고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기회를 봉쇄당한다. 저작권자는 투자를 받기 위해 대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권리를 찾기 위한 이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대기업 구미에 맞는 음악만 제작되고 유통되는 폐해마저 우려된다. 김이사는 “과거에는 작은 음반사들이 많이 존재했다. 대기업이 온라인 음반 시장에 뛰어들고 나서부터는 모두 정리되었다. 대기업이 단기간에 투자 금액을 회수하기 위해 돈 되는 댄스 음악만 생산하다 보면 음악의 다양성이 훼손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온라인 음원의 제작부터 유통, 서비스까지 모두 좌지우지하는 한 이런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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