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욕하는 것은 인권 침해?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9.04.0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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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인권위원회, 종교 비방 (금지) 결의안 채택…이슬람 국가들, 비방 땐 샤리아법 적용 별러

▲ 말레이시아의 미국대사관 앞에서 의 저자 살만 루시디(아래)에 항의하는 한 이슬람 시위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EPA

▲ 의 저자 살만 루시디. ⓒAP연합

유엔인권위원회(UNHRC)에서는 지금 인권 문제를 놓고 기독교와 이슬람 간 종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공격수는 중동을 중심으로 한 15개 이슬람 국가와 그들에 동조하는 8개국 등 모두 23개국이며, 수비수는 11개 기독교 국가들이다.

이슬람 진영에 가담한 8개국은 종교와 무관한 중국, 러시아와 좌파 성향의 중남미 국가, 무슬림 국민이 많은 국가이다. 힌두교의 인도와 중동 눈치를 보아야 하는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 일부 중남미 국가 등 13개국은 선수이기를 포기하고 관객석에 앉았다. 유엔 회원국 1백92개국 가운데 인권위원회에 속하지 않은 1백47개국은 장외에서 TV 중계 화면을 보며 흥미진진하게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3월24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인권위원회는 이슬람회의기구(OIC) 56개국을 대표해 파키스탄이 제안한 종교 비방 (금지) 결의안을 찬성 23, 반대 11, 기권 13으로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종교 비방 역시 인권 침해’라고 규정하고 인권 보호를 위해 종교 차별이나 비방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차등을 받거나 박해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강조하고 비방 금지 대상으로 이슬람을 특정해 명문화했다.

중동과 아프리카를 주축으로 한 이슬람 국가들은 오늘날 이슬람 종교가 국제인권법의 위반 사례나 테러리즘에 부당하게 연계되고 있다며 이런 비방은 중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2001년 알카에다가 저지른 9·11 사태 이후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기피 현상이 곧바로 인권 침해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국가들, 언론 자유 말살과 결의안의 국제법 인정 우려

결의안에 찬성한 국가들은 오는 4월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2009년 반인종주의세계회의(WCAR)에서 무슬림의 인권 침해를 쟁점화할 계획이다. 올해 WCAR에서는 지난 2001년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회의 이후 활동한 국제 인권 상황 유엔특별조사단의 보고서를 검토한다. 그래서 통칭 제2 더반회의 (Durban II)라고 부른다. 안건은 흑인 인종 차별, 반유대주의, 증오 범죄 등 11개 사항이지만 이 가운데 반무슬림 증오 문제가 주요 안건으로 다루어진다.

미국과 캐나다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이번 결의안 통과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단 표결에서 패배한 터라 결의안 내용을 거부하거나 수정할 수는 없지만 대신 제2 더반회의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이다.

종교 비방 (금지) 결의안에 반대하는 나라들의 주장은 국제인권법이 규정하는 인권은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특정 종교가 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슬람을 보호하는 것은 종교에 관한 권리이지 인권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특정 종교를 비롯한 어떤 종교에 대해서도 비판을 금지한다는 것은 바로 표현의 자유를 억제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이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의에 반대하는 국가들이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은 이슬람 국가들이 이슬람 비방을 인권 침해로 몰아가면서 앞으로 국제인권법에 이슬람 비방 금지 조항을 삽입하려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인권법이나 인종차별금지법이 이미 존재하는데도 이슬람을 특정해서 법제화할 경우 파생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우려도 털어놓는다.

종교 비방 (금지) 결의안은 이미 10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올해 결의안에 대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유독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은 이슬람 국가들이 이슬람을 비방하는 언론이나 개인 또는 단체에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을 적용하겠다는 의도를 보인 데 따른 것이다. 이슬람 비방 금지가 국제법으로 인정받을 경우 샤리아법이 이슬람 국가 내에서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세계의 비이슬람 국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샤리아법은 성문법이 아닌 관습법으로 이슬람에 대한 비방이나 비판을 신성 모독으로 간주한다. 최근 아시아 이슬람 국가의 하나인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에 대한 비방은 국내 무슬림은 물론 비무슬림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서방 기독교 국가들과 미국, 유럽 언론들은 이번 결의안에 대해 전율을 느끼고 있다. 비판 대상에서 벗어난 종교가 가져올 언론 자유 말살은 물론 강력한 응징과 가혹한 처벌을 마다하지 않는 샤리아법이 가져올 인권 침해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특히 인도 출신 작가 살만 루시디와 네덜란드 언론인 플레밍 로즈, 영화인 겸 칼럼니스트 테오 반 고흐 사건을 아는 서방 언론인들이라면 결의안의 폐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루시디는 1988년 그의 작품 <악마의 시> 출판으로 당시 이란의 아야툴라 호메이니로부터 살해 명령을 받아 이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 로즈는 지난 2005년 이슬람 예언자 모하메드를 패러디한 시사 만화를 게재해 이슬람 국가들의 분노를 샀다. 이후 파키스탄에서 그를 규탄하는 네덜란드 언론인 테러와 무슬림 사회 폭동이 일어났다. 또, 이슬람 비판론자로 알려진 고흐는 이슬람을 비난하는 영화를 제작했다가 지난 2004년에 피살되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이슬람에 동조하는 나라 많아 논란

그러나 이번 결의안을 둘러싼 국가 간 논란은 종교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언론 자유나 이슬람의 보복 가능성에 대한 이들의 관심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결의안에 찬성한 국가는 이슬람 국가 외에 러시아, 중국, 쿠바, 필리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기독교 국가들에 대한 정치적 견제 의도가 많이 작용하고 있다. 필리핀은 국내 무슬림의 세력이 강해 무시할 입장이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 국가인 쿠바가 가담한 것은 종교적 이유이라기보다는 반미주의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이번 결의안을 두고 속앓이를 하는 다른 이유는 이슬람 비방 금지에 대항해 거꾸로 기독교 비방 금지도 함께 요구하거나 추진할 수 없다는 사정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이름으로 내세운 신앙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은 방관자들이다. 유엔인권위원회 표결에서 기권함으로써 이슬람 국가와 기독교 국가 어느 쪽도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어느 쪽도 찬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언론들은 이에 대한 언급마저 자제하고 있다. 아예 의견이 없거나 포기한 것 같다. 불교의 나라 태국의 방콕포스트는 거기에 비하면 상당히 용감하다. 인권위원회 소속 국가가 아닌 태국은 이슬람 강국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접해 있지만 이번 싸움에는 구경꾼에 불과하다. 방콕 포스트는 그러나  결의안에 담긴 무슬림 인권 보호가 오히려 무슬림과 비무슬림에 대한 인권 침해를 악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 신문은 나아가 이번 결의안을 ‘악취가 나는 물건을 향수로 포장한 격’이라고 비꼬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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