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질주’, 어디까지 갈까
  • 심정택 (자동차산업 전문가) ()
  • 승인 2009.04.0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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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파격적 무상 보증 앞세워 해외에서 호평…FTA, 친환경차 등 시장 변수도 많아

▲ 현대자동차 제네시스가 ‘북미 올해의 차’에 선정되었다. 현대·기아차 이현순 부회장(왼쪽)과 현대차 미국법인(HMA) 존 크라프칙 사장 대행이 미국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발표된 이 상을 수상하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현대·기아차에 대한 국내 언론의 평가는 호평 일색이다.  경제 위기로 인해 판매 대수가 줄어들었지만 시장 점유율은 상승해 글로벌 업체로 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 쪽에서는 해외의 호평을 판매가 부진한 국내 판촉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내세우는 최근의 업적은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7%대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시장에서의 이같은 판매 호조는 현대차가 경쟁 업체에 비해 파격적인 보증 제도를 도입한 덕분이다. 현대차는 고객들에게 ‘10년-10만 마일(약 16만km)’ 동안 동력계통(엔진과 트랜스미션)의 보증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차를 산 뒤 1년 안에 실직하면 되사주는 보증(assurance) 프로그램’을 도입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현대차가 국내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어떤 경쟁사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강력한 서비스이다. 제네시스의 경우 국내에서의 무상 보증은 ‘동력계통 5년-10만km’에 그친다.

이와 같은 현대차의 판촉 전략을 GM과 포드가 각각 ‘GM 토털 컨피던스(Total Confidence)’ ‘포드 어드밴티지(Advantage)’라는 동일 서비스로 베끼기에 나섰다. 물론 현대차의 파격적인 보증 제도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제네시스가 최근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올해의 차’로 선정된 것도 현대차 판매량 증가에 일정 부분 기여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제네시스는 당초 현대 브랜드가 아닌 독립된 브랜드로 판매를 검토했을 만큼 품질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던 차종이다.

고환율로 가격 경쟁력에서도 우위…미국 시장 7%대 점유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좋은 실적을 내게 된 것은 자동차 빅 3의 부진, 경기 침체에 따른 원화 값 하락 등으로 현대·기아차가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에 설 수 있게 된 데 있다. 특히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원화보다 더 절상되면서 일본차와의 가격 경쟁력은 더욱 벌어졌다.

또한, 현대차 노사가 지난 3월31일 공장 간 일감 나누기에 합의해 갈등이 해소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역시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3월26일 “우리나라 자동차업계가 체코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임금이 높으면서 생산성은 낮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현대자동차 직원의 평균 임금이 미국 앨러배마 공장의 직원들보다 높지만 생산성은 낮다. 중국도 임금은 낮지만 생산성은 높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대통령이 직접 구체적으로 현대차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자동차업계의 생산성을 비판한 것은 이례적으로 업계의 구조조정 노력과 노조의 파업 자제를 촉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대통령은 경기 수원 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이같이 밝힌 뒤 “(자동차업계에 대한) 정부 지원에 앞서 노사가 특단의 조치를 발표하는 것이 좋겠다. 노사 문화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대통령은 또 “과거 일본 자동차업계의 경우 엔고에 직면했을 때 엔화 가치가 올라갈 때에 대비한 것이 지금 세계 최고로 올라선 비결이다. 지금 자동차업계의 선전은 고환율 때문으로, 환율이 내려 정상화될 때에 대비해야 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기아차에게 호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의 최대 현안으로 자동차 부문을 직접 거론하고 있는 점이 현대·기아차에게는 부담이 되고 있다.

최근 동유럽에서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한 현대·기아차 공장들이 때마침 들이닥친 동유럽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해 12월 양산에 들어간 30만대 생산 규모의 현대차 체코 노소비체 공장, 역시 연간 30만대를 생산하는 기아차 슬로바키아 질리나 공장이 여기에 해당된다. 중·장기적으로는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현대·기아차를 위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업체는 지난해 4분기 이후 감산과 감원, 원가 절감 등을 통해 현금 확보에 나섰고, 이를 바탕으로 하이브리드카, 전기 차등 보급형 친환경차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엔화가 약세로 돌아설 경우 현대·기아차에게는 결정적인 부담을 안길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현대차 관계자는, “일본 업체들의 보급형 친환경차에 대한 투자는, 도요타 프리우스를 제외하고는 이익이 난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보급 속도가 빠른 시간 내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어 이에 관한 대비는 하되 이익이 난다는 확신과 검증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990년대 초반 등장한 자동변속기의 예를 들며, “당시 자동변속기 사업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으나 시장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자동변속기가 보급되는 쏠림 현상이 있었다. 보급형 친환경차에 대한 쏠림 현상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완전히 끝났다고는 보기 어렵다. 동유럽발 금융 위기 등 새로운 요인들이 1~2차례 더 세계 경제를 강타할 경우를 염두에 둔 대비도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의 위기 시나리오로 해외 현지 법인들이 발행한 회사채의 만기가 연장되지 않을 때 현대차에 닥칠 위기를 떠올린다. 현대·기아차 현지 법인들이 일으킨 금융 부채는 본사 회계 장부에는 잡히지 않는다. 특히 금융 위기가 계속되고 생각보다 달러 강세가 오래갈 경우에는 만기 연장이 되지 않고, 갚을 때는 그 고통이 배가될 것이 분명하다.

개도국 시장에서는 지지부진…현지 법인들, 금융 부채 줄여야

현대·기아차와 더불어 이목을 끄는 것은 현대차 계열사인 ‘현대 모비스’의 괄목한 만한 성장이다. 현대 모비스 성장의 핵심은 ‘모듈’ 생산 방식에 모아지고 있다. 모듈(Module)이란 자동차 부품의 조립 단위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완성차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수많은 부품을 조립 영역, 분야 혹은 기능별로 결합해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 공급함으로써 완성차 생산 라인 단축과 품질 향상을 꾀하는 시스템이다. 모듈 단위의 공급은 완성차 생산 라인에서 수십 개의 공정을 하나로 단축시킬 수 있다. 최근 자동차 산업의 추세인 다품종 소량 생산, 광범위한 옵션 적용, 급격히 짧아진 신차 출시 기간 등에 대응하기 위한 최적 시스템으로 평가된다.
모듈 사업은 완성차의 생산성과  비용 절감에 직결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모듈 생산에 힘을 쏟는 이유이다. 반면에 모듈화에 대한 비판도 있다. 옥스포드 경영대학원에서 ‘국제 자동차 산업 제휴’ 관련 학위를 받은 이남석 박사는, “모듈화는 완성차 업체의 조립 비용을 협력업체에 전가하는 폐단이 있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일본도 도요타를 중심으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모듈화를 해외 진출 및 생산성 향상을 위한 방안으로 본격적으로 도입했던 적이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미국 시장에서의 선전과 달리 현대차는 개도국 시장에서는 지지부진하다. 2011년 상반기 양산할 예정이었던 브라질 상파울루 공장의 경우 가동 시점을 연기하기로 주정부와 이미 합의했다고 한다. 지난해 6월 착공해 2011년 1월 양산할 예정이었던 러시아 공장 역시 가동이 연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시장은 지난해 4분기부터 현지 산업 수요가 줄고 할부 금융까지 위축되면서 판매가 급감하고 있다. 시장 수요가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무리한 현금 투자를 강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로 인해 현대·기아차의 해외 재고는 100만대를 넘어 적정 수준을 벗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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