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은 ‘박·봉’을 꿈꾼다
  • 김종철 (영화평론가) ()
  • 승인 2009.04.1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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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을 꿈꾸던 과거의 젊은이들은 마틴 스콜세지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박찬욱과 봉준호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 두 사람은 서구의 어떤 감독들보다 두터운 신뢰를 쌓았고, 그들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한국 영화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중성과 흥행성에다 스타성까지 겸비했고,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두 감독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영화 세계를 추구한다. 출발점이 장르 영화라는 것은 공통적이다. 박찬욱 감독은 싸구려 B급 영화 장르를 세련미 넘치는 스타일로 재구성해 우아한 재단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복수 3부작’에서 폭력을 다루는 연출은 놀라울 정도로 대범하다. 자신감이 없다면 섣불리 하기 힘든 시도이다. 제 아무리 오락 영화들의 폭력 수위가 수직으로 치닫고 있지만, 지금도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에서 만나는 폭력 신들은 여전히 두렵고 무서우며 또 흥분으로 가슴이 뛴다. 그의 영화는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만,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올드보이>에서 오달수가 이를 뽑는 장면은 무시무시하지만 한편으로는 폭력이 추구하는 미학의 정점에 도달한다. 영화 팬이라면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미약의 터치이다. 박찬욱 영화의 매력은 장르 영화를 하되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고 갈 데까지 가본다는 저돌성에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장르의 외피를 쓰지만 사건이 진행되면서 변화를 꾀한다. 코미디에서 스릴러, 호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장르 규정이 모호한 작품이다.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실화를 빌어 스릴러로 시작했지만, 작품의 주제는 1980년대 한국 현대사의 우울한 시대의 모습을 담는 것이었다. <괴물>은 그가 영화를 만들 때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외형적으로 <괴물>은 한국 영화사에 흔치 않은 괴수 장르의 부활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장르 고유의 색깔이 옅어지고 가족사를 더 비중 있게 풀어놓는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 방식을 보면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장르 영화를 하되 그 틀에 속하지 않고 자기 방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 고작 3편의 장편 영화에 불과하지만, 그의 연출은 영감처럼 노련하다.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모두 흥미진진하지만, 영화 외적인 면에서도 연구 대상이다. 전통적으로 장르 영화들은 대중의 선택에서 멀찍이 비켜 서 있다. 장르 영화의 질긴 생명력은 주류 세계와는 떨어진 데서 비롯된다. 이 두 감독의 영화들은 냉정하게 보자면 대중의 기호와는 맞지 않은 영화들이다. 그럼에도 대중의 선택과 사랑을 받았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들의 앨범이 무조건 잘 팔리는 시대는 끝났다. 좋은 영화, 스타성을 지닌 감독, 그리고 이슈가 필요하다.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은 이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한다. 이것이 그들의 영화가 끊임없이 회자되고, 신작을 기다리고 궁금해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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