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박쥐>로 날까괴물 같은 <마더> 될까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4.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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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봉준호 감독, 신작 개봉 앞두고 해외에서도 ‘술렁’

▲ 4월30일 개봉이 확정된 영화 의 박찬욱 감독. ⓒ시사저널 임준선

한국 영화계의 쌍두마차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이 신작을 들고 돌아온다. 박찬욱 감독은 뱀파이어가 된 신부의 이야기를 담은 <박쥐>를, 봉준호 감독은 살인자로 감옥에 가게 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어머니의 사투를 그린 <마더>를 들고 나왔다.

작품성과 흥행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내곤 하던 두 감독의 신작에 영화팬들과 한국 영화계 전반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의 대표 감독인 이들의 성적에 따라 한국 영화계가 오랜 불황을 뚫고 나갈 희망의 빛을 찾을 수도, 침체의 그림자에 계속해서 짓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상치 못한 흥행을 거둔 <과속스캔들>과 <워낭소리> 등이 가뭄의 단비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 영화의 다변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그렇지만 이 작품들의 성공만으로 영화계 전반의 어두운 그림자가 걷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불황이 극복되기 위해서는 검증된 스타 감독들의 성공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CJ 엔터테인먼트 홍보팀의 이창현 과장은 “신인 감독의 성공과 스타 감독의 흥행 중 어느 한쪽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스타 감독의 복귀가 영화시장 활성화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사실이다. 스타 감독들은 마니아층이 두텁고 관객에 대한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콘텐츠업계의 특성상 흥행을 정확히 진단하기는 어렵지만 기대 수준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스타 감독의 복귀와 이 작품들의 성공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칸영화제 후보작 리스트에 두 작품 다 올라

해외에서도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 주목하고 있다. 두 감독은 홍상수·김기덕 감독과 함께 세계 영화계가 가장 관심을 갖는 한국 감독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반응하고 있는 곳은 국제 영화제이다. 오는 5월13일 막을 올리는 칸영화제의 후보작 리스트에도 두 작품이 올라 있다. <올드보이>로 제57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고 베를린과 베니스 등 3대 영화제에 모두 초청된 바 있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가 칸영화제에 입성할 가능성은 커 보인다. 지난 4월 프랑스의 AFP 통신은 “올해 칸영화제의 경쟁 부문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제인 캠피온, 박찬욱 등 칸이 낳은 거장들이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라며 <박쥐>의 경쟁 부문 진출을 예상했다.

또, 비록 세계 3대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적은 없지만 <살인의 추억>과 <괴물>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아온 봉준호 감독도 <마더>를 앞세워 칸영화제에 처녀 입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찬욱 감독의 칸영화제 입성을 예측한 AFP 통신이 봉준호 감독의 <마더>의 동반 입성을 예상한 바 있고, 미국의 영화 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도 지난 4월2일 인터넷판에서 <마더>가 경쟁 부문에 초청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마더>를 아시아 영화 진출작 가운데 첫손에 꼽았다.

<박쥐>와 <마더>는 해외 배급사로부터도 관심을 받고 있다. <박쥐>는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인 유니버설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미국 배급망을 확보했고, <마더>는 지난해 11월 촬영이 20% 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일본과 프랑스 등에 선판매되었다. <박쥐>의 홍보를 맡고 있는 올댓시네마의 하영욱 대리는 “<박쥐>의 제작비가 60억원 정도인데 유니버설이 절반인 30억원 정도를 투자했다. 미국에서의 정확한 배급 일정은 아직 안 나온 상태이고, 한국 개봉의 경과를 보고 결정될 것이다. 올해 안에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영화제나 해외 시장에서의 평가에서는 박찬욱 감독이 약간의 우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흥행에서는 봉준호 감독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두 감독 모두 꾸준한 완성도를 보여주고는 있으나 봉준호 감독의 작품 세계가 좀더 대중적이라는 말이다. 봉준호 감독의 흥행 성적은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살인의 추억>이 5백7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흥행 감독으로 등극했다. 최근작 <괴물>은 1천3백만명을 동원하며 천만 관객 시대의 정점에 섰다. <괴물>의 흥행은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성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찬욱 감독은 흥행 면에서는 들쭉날쭉이다. 박감독은 데뷔작인 <달은 해가 꾸는 꿈>과 두 번째 작품 <3인조>로 흥행에서 쓴맛을 보며 영화광 출신의 컬트적 성향을 지닌 감독으로 평가받았다. 그가 흥행 감독으로 우뚝 선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가 6백만 관객을 넘어서며 2000년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면서부터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박찬욱 감독이 웰메이드 상업영화를 만들어낼 줄 아는 감독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음 작품인 <복수는 나의 것>은 관객의 기대를 벗어나며 흥행에 실패했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이 작품은 ‘박찬욱표 복수 3부작’의 첫 작품으로, 작가로서 자리매김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후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가 3백만 관객을 넘어서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대표 감독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최근작인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는 비와 임수정이라는 스타 배우를 기용하고도 70만 관객에 그쳤다.

<박쥐>와 <마더>는 두 감독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작품이다. <박쥐>는 박찬욱 감독에게 전작의 흥행 실패를 만회하고 흥행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확인시킬 기회이고, <마더>는 <괴물>이라는 블록버스터의 성공을 뒤로 하고 작품성을 강화한 작은 영화를 선택한 봉준호 감독에게 작가라는 칭호를 확인시켜줄 기회이다. 신작에 대한 접근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다. 박찬욱 감독은 <박쥐>를 통해 가장 잘하는 것으로 돌아온 반면에 봉준호 감독은 <마더>에서 기존에 보여준 모습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박쥐>, 10년 갈고 닦은 ‘파격’의 결과물

<박쥐>는 박감독이 <공동경비구역 JSA>를 촬영하기 이전에 이미 가지고 있던 구상으로 박찬욱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박감독은 “남자 주인공의 성격에 내 자신이 많이 녹아들어가 있다. 지금까지 만든 작품 중에서 내 자신이 투영된 경우는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촬영할 당시 박감독으로부터 <박쥐>에 대한 초안을 들었던 배우 송강호는 “창의적이고 도발적이며 예술적인 이야기가 작품으로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로서는 워낙 파격적인 설정이었기 때문에 찍고 있는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파격’을 앞세운 <박쥐>의 몇 가지 요소는 박감독의 전작에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카톨릭 신자이기도 한 박감독은 영화 <3인조>에서 아버지로부터 폭행당해 낳은 아이를 찾아나서는 전 수녀 캐릭터를 통해 종교적 의무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뱀파이어라는 설정은 3인 감독의 중편을 모은 <쓰리, 몬스터>의 <컷>에서 한 차례 실험했다. 10년 동안 갈고 닦은 결과물에 박감독은 “걸작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든 영화 중에서는 제일 나은 영화일 것이다”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마더>, 흥행보다 작품성에 방점

▲ 작품성 강한 영화 를 내놓은 봉준호 감독. ⓒ연합뉴스

<마더>는 흥행보다는 작품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사실 봉감독의 프로젝트 중에서 일반 관객의 관심을 더 받는 쪽은 블록버스터인 <설국열차>라고 할 수 있다. 60억원이라는 제작비가 투여되었지만 규모 면에서 <마더>는 소품에 가깝다. 하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기존의 봉준호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태세이다. 봉감독은 유머를 사용할 줄 아는 감독이다. 현실을 살짝 비틀며 조롱하듯이 던지는 그의 유머 코드는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서 빛을 발했다. <마더>에서는 웃음이 걷어지고 감정이 극대화된 새로운 봉준호를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봉준호 감독은 온라인 카페를 통해 공개한 인터뷰에서 “엄마에 대한 익숙한 감정은 보편적이다. 그런 엄마가 영화적인 세계에서 얼마나 폭주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 가장 뜨겁고 강렬한 불덩어리에서도 가장 뜨거운 열의 핵심 같은 곳을 파고드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이 말하는 연출의 변을 듣는 것처럼 생소하다.

두 감독의 서로 다른 접근 방법은 배우의 기용에서도 잘 드러난다. <박쥐>에는 박찬욱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송강호와 신하균이 출연한다. 두 배우와는 <공동경비구역 JSA>와 <복수는 나의 것>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고,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우정 출연을 하기도 했다. 가장 잘 아는 배우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고자 한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마더>에서 김혜자와 원빈이라는 새로운 배우들을 선택했다. 그의 영화에 꼬박꼬박 얼굴을 드러냈던 변희봉과 송강호, 배두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마더>의 모티브를 떠올리게 한 김혜자와 외모만으로도 모성의 발현을 설득력 있게 만드는 원빈을 선택한 것은 봉준호의 새로운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요즘 젊은이들은 ‘박·봉’을 꿈꾼다

감독을 꿈꾸던 과거의 젊은이들은 마틴 스콜세지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박찬욱과 봉준호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 두 사람은 서구의 어떤 감독들보다 두터운 신뢰를 쌓았고, 그들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한국 영화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중성과 흥행성에다 스타성까지 겸비했고,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두 감독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영화 세계를 추구한다. 출발점이 장르 영화라는 것은 공통적이다. 박찬욱 감독은 싸구려 B급 영화 장르를 세련미 넘치는 스타일로 재구성해 우아한 재단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복수 3부작’에서 폭력을 다루는 연출은 놀라울 정도로 대범하다. 자신감이 없다면 섣불리 하기 힘든 시도이다. 제 아무리 오락 영화들의 폭력 수위가 수직으로 치닫고 있지만, 지금도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에서 만나는 폭력 신들은 여전히 두렵고 무서우며 또 흥분으로 가슴이 뛴다. 그의 영화는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만,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올드보이>에서 오달수가 이를 뽑는 장면은 무시무시하지만 한편으로는 폭력이 추구하는 미학의 정점에 도달한다. 영화 팬이라면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미약의 터치이다. 박찬욱 영화의 매력은 장르 영화를 하되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고 갈 데까지 가본다는 저돌성에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장르의 외피를 쓰지만 사건이 진행되면서 변화를 꾀한다. 코미디에서 스릴러, 호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장르 규정이 모호한 작품이다.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실화를 빌어 스릴러로 시작했지만, 작품의 주제는 1980년대 한국 현대사의 우울한 시대의 모습을 담는 것이었다. <괴물>은 그가 영화를 만들 때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외형적으로 <괴물>은 한국 영화사에 흔치 않은 괴수 장르의 부활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장르 고유의 색깔이 옅어지고 가족사를 더 비중 있게 풀어놓는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 방식을 보면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장르 영화를 하되 그 틀에 속하지 않고 자기 방식의 이야기를 하는 것. 고작 3편의 장편 영화에 불과하지만, 그의 연출은 영감처럼 노련하다.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모두 흥미진진하지만, 영화 외적인 면에서도 연구 대상이다. 전통적으로 장르 영화들은 대중의 선택에서 멀찍이 비켜 서 있다. 장르 영화의 질긴 생명력은 주류 세계와는 떨어진 데서 비롯된다. 이 두 감독의 영화들은 냉정하게 보자면 대중의 기호와는 맞지 않은 영화들이다. 그럼에도 대중의 선택과 사랑을 받았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들의 앨범이 무조건 잘 팔리는 시대는 끝났다. 좋은 영화, 스타성을 지닌 감독, 그리고 이슈가 필요하다. 박찬욱과 봉준호 감독은 이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한다. 이것이 그들의 영화가 끊임없이 회자되고, 신작을 기다리고 궁금해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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