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없는데 유해물질 천지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9.04.1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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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 전문 분석가·조사자조차 극소수

▲ 윤여표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이 석면 오염 우려 의약품에 대한 긴급 조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석면 문제만 나오면 국민이 패닉 상태에 빠진다. 하지만 석면만큼 유해한 물질은 주위에 널리고 널렸다.” 전문가들은 석면과 같은 유해물질이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고 경고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이기영 교수는 “석면과 방사선 폐기물 노출에 대해서는 국민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위험성을 지각하지만 다른 유해물질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라며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윤충식 교수 역시 “공산품 외에도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공기 속의 유해물질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무심코 옷에 ‘칙’ 뿌리는 방향제를 비롯해 모기 한 마리 잡겠다고 방안 가득 뿌려대는 살충제, 깨끗하게 드라이클리닝을 한 옷 등도 유해물질을 안고 있는 공산품이다. 윤교수는 “방향제는 오염물질을 제거하지 못한다. 중화시키기 위해 휘발성 유기화학물을 첨가한다. 이 물질이 중추신경에 영향을 미쳐 어지러움이나 기억력 감퇴와 같은 신체적 손상을 야기한다”라고 지적했다.

살충제도 마찬가지이다. 농약은 위험하다고 인지하면서 살충제는 의약품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에도 휘발성유기화학물이 잔뜩 들어가 있다. 드라이클리닝을 위해 사용하는 ‘솔벤트’도 휘발성 성분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어 위험하다. 이 외에도 납 성분이 함유된 페인트, 형광 증백제가 사용된 행주나 종이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문제는 석면만큼 유해성과 위험성을 지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구가톨릭대 산업보건학과 양원호 교수는 “오염물질은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것이 사람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측정하는 것은 어렵다. 석면은 악성중피종을 유발하는 유일한 물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석면의 위험성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 나머지 유해물질이 이런 상관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해서 무해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며 주의를 촉구했다.

한국의 환경성 유해물질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실정

▲ 식약청 연구실에서 한 연구원이 석면 검출 실험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최근 유해물질 명단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나노 입자 크기로 만들어진 공산품들이다. 유해성 검증을 위해 미국을 비롯한 일부 선진국에서는 동물 실험까지 진행한 상태이다. 윤교수는 “미국에서 실시한 동물 실험에서 나노 입자가 간, 폐, 심장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임상실험 단계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지금부터 조금씩 대비해나가고 있다”라고 외국의 상황을 전했다.

현재 나노 기술이 접목되어 개발된 소비재 숫자만 5백여 개에 달한다. 한국에서 개발한 것은 1백30여 개이다. 화장품, 스포츠용품, 비디오 디스플레이, 식품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교수는 “매일 아침 바르는 선크림 중에도 나노 입자가 들어가 있는 제품이 있다. 나노 입자가 다른 물질과 합쳐졌을 때 어떤 부작용을 가져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고 무해성을 입증한 것도 아니다. 미국 연방정부에서는 TF팀을 꾸려 유해성 여부를 연구하고 있다. 석면이나 DDT처럼 큰일이 터지고 나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대비해보자는 취지에서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은 환경성 유해물질에 대한 조사나 연구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험성이 크게 부각된 석면조차도 전문 분석가나 조사자가 극소수이다.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이 제대로 꾸려져 있지 않아 전문성도 떨어진다.

한국석면환경협회 구기영 이사장은 “석면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최소 3개월 정도 장기간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3일간 교육하는 것이 전부이다. 교육을 하는 산업안전보건공단 연구원들마저도 미국에서 1주일 정도 교육을 받고 온 것이 전부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이 교육을 받은 사람도 2백40명뿐이다.

석면 조사자 양성은 협회 차원에서 미미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한석면관리협회가 유일하게 2007년부터 석면조사자 양성 교육을 하다가 지금 잠시 중단한 상태이다. 이것도 작업장에 한정된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다. 일상 공간에서 석면이 비산하는지를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사람은 없다고 볼 수 있다. 20년 전에 석면 지도를 완성한 미국과 비교하면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져 있다. 그나마 석면은 관련법이 개정되어 조금씩 관리의 틀을 잡아가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면서 석면을 해체·제거할 때 반드시 석면 조사 작업을 거쳐야 한다. 오는 8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석면 조사자 양성 교육도 중단…법 있어도 관리·감독 소홀해

나머지 유해물질은 세세하게 관리되지 않는다. 다만, 관련 부처에서 알아서 유해물질로 지정해두고 자체적으로 관리해나갈 뿐이다. 관리라고 해봤자 석면 파우더처럼 일이 터져야 수습하는 수준이다. 사전에 공산품에 유해한 물질이 들어가 있는지 검증하는 작업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 생활제품안전과 이현자 연구관은 “유해성 여부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인력도 없고 예산도 없다. 다만, 국제 안전 기준 가운데 가져올 것이 있으면 바로 도입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이 연구관의 말대로 많은 유해물질에 대해 안전 기준은 마련되어 있다. 문제는 법만 만들어놓고 알아서 지키라고 기업에게 떠넘긴다는 사실이다. 신규 제품을 개발하는 업체가 자체적으로 안전성 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때 정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없다.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기업 처지에서 관리·감독이 소홀한 틈을 타 기준안을 무시하는 일은 다반사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이기영 교수는 “환경 관련 문제가 터지면 정부는 ‘법이 있지 않느냐’라고 말을 한다. 법이나 가이드라인은 잘 되어 있지만 이것을 잘 지키도록 관리하는 체계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꼬집었다.

제품 개발 단계에서도 문제이지만 생산된 이후 해당 공간에서 어떤 유해물질을 발생시키는지 관리하는 인력도 없다. 국가 공인으로 진행되는 환경보건기사 전문 자격증 제도도 도입되지 않았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실내환경학회가 민간 차원에서 자격증 시험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2000년 초, 실내공기질법이 제정되었을 때는 작업장과 다중이용시설에 환경보건기사를 의무적으로 두는 조항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규제가 너무 심하다는 반대 의견에 부딪혀 이 조항이 삭제되었다. 그러다 올해 환경보건기사 전문가를 양성하는 사업이 시행된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이 잡혀 있는 것은 아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산업보건학과 양원호 교수는 “법에는 인력 양성을 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규칙이나 시행령을 들여다보면 명확하게 어떻게 사업을 진행할지는 나와 있지 않다. 환경과 관련된 법들이 대부분 이렇다. 이제라도 유해물질의 위험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한 만큼 구체적으로 법안을 다듬어나가는 작업이 절실한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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