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길이냐 박근혜 길이냐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4.1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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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동영 출마 선언 놓고 해석 분분

▲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4·29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시사저널 유장훈

지금 민주당에 ‘호사(好事)’는 없고 ‘다마(多魔)’만 있다. 정동영 전 장관의 출마 선언에 민주당은 ‘공천 배제’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당내 분란으로 시끌시끌한 것에 더해 박연차 회장의 돈이 권양숙 여사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재·보궐 선거가 보름 남짓 남은 시점에서 터진 악재이다. 그렇다고 뾰족한 묘수도 없다. 한나라당 주변에 떠돌던 ‘재·보궐 전패’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제 민주당에도 해당된다. 일단 민주당의 승리 구도가 깨어졌다. 호남에서 바람몰이를 해 수도권에서도 승리하겠다는 전략을 세웠지만, 지금은 호남에서조차 전패할지 모른다는 비관 섞인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당이 보약이라도 먹어야 될 정도로 허약하다. 지금처럼 악재가 터질 때 지탱해줄 버팀목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당만 있을 뿐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정 전 장관이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비틀어졌다. 정 전 장관의 무소속 출마를 두고 정세균 대표와 민주당 386 의원들이 중심인 현 주류는 ‘제2의 이인제’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까지 한 사람이 스스로 당을 깨고 무소속 후보로 나가는 데 반감이 크다. 이번 재·보선에서 당선되더라도 이인제 의원의 경우처럼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정 전 장관이 박근혜 전 대표를 모델로 삼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난 2002년 박 전 대표는 이회창 전 총재의 사당화에 반발하며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결성했다가 복귀했다. 정 전 장관측 관계자는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뿐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인제 의원과의 비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라며 일축했다. “주류 세력이 보고 싶은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정 전 장관이 일개 의원으로 전락하느냐, 당권을 장악할 수 있는 잠재적 대권 주자로 다시 부활하느냐의 문제로 수렴된다. 정 전 장관의 미래를 예측하는 함수에서 변수는 정세균 대표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재·보선 선거 결과가 중요하다. 재·보선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없을 경우 당권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나올 수 있다. 정대표의 가장 큰 무기가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대표가 물러날 경우 정 전 장관의 활동 범위는 그만큼 넓어질 수 있다.

“당만 있을 뿐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

▲ 민주당 재·보궐 선거 기획단 회의에서 정세균 대표(맨 오른쪽)가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정 전 장관은 민주당 내에 지분을 가지고 있다. 어지간한 미니 정당 하나는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지지세도 확보 중이다. 게다가 지역 거점도 확실하다. 이런 점에서 박 전 대표와 비슷하다. 정대표는 정 전 장관을 공천 배제했다. 정 전 장관측에서는 “그냥 현 지도부가 당심을 배제한 것이다. 지도부와 당심이 일치하는 게 맞는가”라며 문제 제기를 한다. 민주당이 당원의 동의를 구하는 등의 절차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종걸·박영선 의원 등 비주류와 친정동영계 의원 15명이 지난 4월7일 긴급 의원총회 소집을 지도부에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박영선 의원은 “공천 배제 결정에 관해서 전체 의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총회를 당 지도부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의원들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것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정대표는 정 전 장관을 흠집 내는 데 성공했지만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이라는 민주당의 부실함을 보여주었다. 이미 민주당 현 주류의 의견에 반대하는 비주류는 정 전 장관 공천 배제를 ‘당권 경쟁’이라고 규정하며 분당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 전 장관의 무소속 출마를 ‘민주당 재편의 신호탄’이라고 해석한다.

현재의 국면은 정 전 장관에게는 호재로, 정대표에게는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박연차 게이트’가 노 전 대통령측으로 불똥이 튀면서 친노 및 386 세력의 정치적 입지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정대표의 지지 기반이다. 만약 재·보궐 선거가 예상치 못한 참패로 끝날 경우 정대표가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정 전 장관에게는 기회의 국면이다. 정 전 장관의 공천 배제는  현 주류 세력이 주도했다. 정 전 장관측의 말대로 “퇴로 없이 무조건 앞으로 갈 생각이다”라며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그동안 명분이 없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만약 전주 완산에서도 민주당이 패하고 수도권인 인천 부평 을도 놓친다면 현재의 지도부로는 수습이 불가능해진다. 정 전 장관 없이는 내부 수습이 어려워지고 정 전 장관을 호출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될 수 있다. ‘민주당은 죽고 정동영은 사는 길’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정동영과 박근혜의 차이는 당내에서 수요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차이이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민주당의 선거 결과에 따라 정 전 장관의 ‘박근혜론’이 부상할 수도 있고 ‘이인제론’이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정치컨설팅업체 피앤씨의 황인상 대표는 “2010년 지방선거 이후의 싸움은 대선을 상정하고 임하지만 이번에는 전형적인 당권과 비당권의 싸움 양상을 띠고 있다. 내년에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도 “이것은 당권 싸움이다”라고 정의했다. 정 전 장관은 “당권에 관심이 없다”라고 말하고 정대표 역시 ‘선당후사’를 이야기하며 당권 다툼과는 무관하다 말하지만 밖에서는 ‘정동영이 사느냐, 정세균이 사느냐’로 보고 있다. 선거 후에는 다양한 그림들이 전개될 수 있지만 결국, 호남의 민심을 누가 얻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황대표는 “현재 민주당에 남아 있는 기반은 호남밖에 없다. 민주당의 구심점도 없어졌고 악재도 쌓인 상황에서 그곳의 승리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민주당은 정동영계, 손학규계, 친노계, 구 민주계 등 다양한 세력들이 몸담고 있다. 이미 불붙은 민주당의 세력 재편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 결국, 호남 민심을 얻는 쪽이 승자가 된다.

현재는 정대표측이 주류이지만 원래 민주당에서는 호남 민심을 얻는 쪽이 전통적으로 주류였다. 선거 결과로 발생될 민주당의 내부 균열과 움직이는 민주당원들의 당심 그리고 호남의 민심이 어느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정 전 장관의 입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 전 장관은 이번 복귀 과정에서 오점을 남겼다. 희망을 주는 대선 후보로서의 이미지가 훼손된 것이 가장 큰 상처이다.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새롭게 인정받아야 한다. 긍정적인 부분은 있다. 이인제 의원은 대중에게 심판받았지만 대중에게 불복했고, 자민련에 지역 기반을 뺏긴 상황에서 충남으로 갔다. 정 전 장관의 경우 ‘대중에 대한 불복’은 아니며 지역 기반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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