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끝인가”머리 싸맨 ‘친노’
  • 김해·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4.1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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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9일 노 전 대통령 사저 뒤의 봉화산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연합뉴스

노무현 정부 시절 한 풍수지리학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가 상당히 세다. 노대통령의 봉하마을 생가를 보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형태를 띠고 있다. 주산인 봉화산은 바위산으로서 풍수지리학적으로 엄청나게 센 기를 갖고 있다. 노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이 봉화산의 정기를 받으며 자라 남다른 기를 타고 난 듯하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불길한 징조일까. 지난 4월9일 오후 1시반께 봉화산에서 불이 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불과 3백여 m 떨어진 지점이었다. 사저를 경호하는 전경들까지 산불 진화에 나섰을 정도이다. 산불로 마을이 뒤숭숭했음에도 사저는 잔뜩 웅크린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봉하마을측에서는 당초 ‘박연차 게이트’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리라고는 미처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사건 초기 ‘친노 그룹’의 한 관계자는 “강금원 회장이라면 모를까, 박연차 회장에 대한 비리 수사라면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 한마디로 박회장은 우리 사람이 아니다. 그는 노건평씨와 원래 친한 관계였는데, 언론에서는 자꾸 ‘노대통령의 후원자’로 잘못 소개하고 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 관계자는 지금에 와서 아예 할 말을 잊은 듯했다. “솔직히 뭐가 뭔지 나도 모르겠다. 좀더 두고 보자”라며 고개를 흔든다.

박회장 로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친노’ 측근들을 맴돌다 본격적으로 ‘패밀리’에 파고든 것은 지난 3월 말부터였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과 조카 등이 검찰과 언론사 주변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신호탄은 지난 3월31일 터졌다. MBC는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씨가 박회장으로부터 5백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확인되었다고 보도했다.

이때만 해도 봉하마을측은 애써 선을 긋는 모습이었다. 친노 인사들 역시 “연씨에게 전달했다면 노 전 대통령이 아니라 결국, 형 건평씨와 연관된 것 아닐까”라고 믿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이미 친노 그룹의 핵심부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채 대책회의에 골몰한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부산에 있는 법무법인 부산의 사무실을 방문한 4월1일. 사무실 분위기에서도 긴장감이 느껴졌다. ‘부산’은 친노 그룹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노 전 대통령의 조카인 정재성 변호사가 공동대표로 있는 곳이다. 문 전 실장은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고, 방문한 인사와 접견하는 등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정변호사와 사무실을 방문한 2~3명의 인사들과 함께 늦은 점심식사를 한 뒤 한동안 서서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급하게 어디론가 외출을 했다.

이튿날인 2일. 봉하마을 사저의 겉모습은 비교적 평온해 보였지만, 내부는 분주한 듯했다. 김경수 비서관은 바빴다. 사저에도 외부 인사들이 들락거렸다. 대책회의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에 대해 김비서관은 “어느 인사가 사저를 방문했는지 이름까지 일일이 밝히기는 어렵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때 문 전 실장을 비롯해서 핵심 측근들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심도 있는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날인 3일 문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인 지난해 3월 연씨의 5백만 달러 입금 사실을 알았다”라고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문재인 전 실장이 회의 주도

이때부터 봉하마을 대책회의는 정재성 변호사 등 법조인과 핵심 측근들이 참여했고, 문 전 실장이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친노 그룹의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아마도 박회장이 이미 검찰 수사에서 모든 것을 다 밝히고 나선 만큼 미리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앞서 밝히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겠나. 그것이 그나마 두 번 죽지 않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라고 사정을 설명했다.

급기야 4월7일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집사람의 부탁으로 정상문 전 비서관이 박회장에게 10억원을 받았다”라고 고백했다. 문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사과문을 발표하기 전에 나를 포함해 측근들과 모임을 가졌다”라고 언론에 밝혔다. 자체적으로 면밀히 조사한 결과 새롭게 밝혀낸 것이라는 뉘앙스이다. 봉하마을측에 따르면 홈페이지의 사과문도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전에 대책회의 팀과 신중하게 내용을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노 전 대통령과 연루된 돈은 크게 세 갈래로 모두 75억원이다. 조카사위 연씨가 받은 50억원(5백만 달러)과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받았다고 밝힌 10억원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박회장으로부터 직접 빌렸다고 밝힌 15억원 등이다. 이 가운데 15억원 부분은 지난 4월8일 대검 중수부에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차용증을 쓰고 정식으로 빌린 돈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은 관건은 5백만 달러가 과연 노 전 대통령이나 혹은 아들 건호씨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 하는 점과 10억원의 돈이 어떤 성격인가 하는 점이다.
복병은 또 있다. 강금원 회장이 ㈜봉화에 투자한 70억원이다. 이 돈은 현재 대전지검에서 수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친노 측근들은 강회장의 돈이 봉하마을에까지 파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이다. 강회장만큼은 믿고자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봉하마을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파괴력은 권여사가 빌린 돈이라고 밝힌 ‘100만 달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돈 전달 시점이 재임 중인 2005~06년 사이라는 점 때문이다. 현재 친노 그룹측에서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박회장이 “대가성 없이 권여사에게 빚을 갚는 데 쓰라고 주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이럴 경우 검찰에서도 혐의를 입증하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여전히 친노 그룹측에서는 박회장을 불신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친노 그룹측에서는 당분간 ‘친노’라는 이름은 정치판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친노 세력의 허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재단 설립 문제도 향후 2~3년 내에는 거론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친노 세력이 기대하는 일말의 희망은 노 전 대통령이 고백한 현 수순에서 의혹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황에 따라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입지는 모색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남아 있는 듯하다. 과연 봉하마을의 마지막 재기 희망은 가능할까. 모든 열쇠는 검찰과 박회장이 쥐고 있는 모습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찰과 박회장은 노 전 대통령측이 애써 무시하고 싶어 했던, 그러면서도 또 딱히 무시할 수도 없었던, 지독하면서도 질긴 인연을 당분간 이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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