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위한 프로그램 계속 나와야 한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4.21 18: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폐지된 장수 프로그램 <가족오락관> 진행자 허참씨 “몇 대 몇은 여기까지…다른 프로그램에서 즐거움 더 드릴 것”

ⓒ시사저널 임준선

<가족오락관>이 지난 4월18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무려 26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 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동안 <가족오락관>을 거쳐 간 PD만 31명, 여성 진행자가 21명이다. 출연진만 연 1만명이 넘고, 11만명의 방청 인원이 방송국을 찾았다. 프로그램을 구성했던 코너 수가 4백54개나 된다. 모두 방송사에 남을 진기한 기록이다. 수많은 시청자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하는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시작과 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한 번도 <가족오락관>을 떠난 적이 없는 진행자 허참씨의 마음만이야 할까. 30대 중반에 처음 진행을 맡았던 그의 나이가 이제 환갑을 넘어섰다. 그는 달라진 방송 환경과 어려워진 방송국 사정 등을 인정하면서도 중·장년층이 볼만한 몇 안 되는 장수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데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족오락관>의 퇴장을 ‘폐지’보다는 ‘끝맺음’ ‘마무리’로 표현해주었으면 하는 그의 바람은 못다 한 무엇인가를 전하려 하는 것 같아 안타깝게 들린다.

<가족오락관>을 시작한 때가 언제인가?

1984년 4월에 처음 방송을 했다. 그때 내 나이가 30대 중반이었는데 이제 60대가 되었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내 청춘 돌려달라고 할 수도 없고.(웃음) 언제 이렇게 세월이 지났나 싶다. 한 주 한 주 하다 보니 1년이 되고 5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25년이 넘게 되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렇게 온 것이 신기하다. 셈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한 프로그램을 끌고 오기 어려웠을 텐데.

적성에 맞았다. 하면서도 재미있다는 것을 내가 느꼈다. 일단 시작하면 무아지경이었다. 짜증나는 일 걱정스러운 일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에는 다 날아가버렸다. 요즘에는 한 시간 방송을 서너 시간 동안 녹화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스피디한 진행으로 녹화 시간과 방송 시간이 거의 일치했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모든 일이 스스로 재밌어야 그 분야에서 오래가는 것 같다. 공부도 마찬가지 아닌가.

<가족오락관>을 거쳐간 코너 수가 정말 많다.

작가들이 대단하다. 나와 함께 오랜 시간 같이 늙어가면서 터줏대감처럼 <가족오락관>을 지킨 동갑내기 오경석 작가가 있다. 그 친구가 아이디어 뱅크이다. PD가 바뀌면서 새로운 코너를 요구하면 어느 틈엔가 새로운 코너를 가져오고는 했다. <미녀들의 수다> <도전 1000곡>의 아이디어도 그 친구의 작품이다. 우리가 철이 없어서 지금까지 할 수 있던 것 같다. 그 친구와 ‘우리 언제 철들래’ ‘철들면 이제 가는 거야, 인마’라고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편성이 바뀐 적이 있지만 가족들이 보는 황금 시간대를 벗어난 적은 없는 것 같다.

다른 방송국의 드라마와 붙어 걱정했다가 오히려 그 드라마를 쫓아낸 적도 있다. 한때는 시청률이 30%를 넘었다. 가족 중심 프로그램이다 보니 가족들이 모여 있는 시간에 방송했다. 최근에 가족들이 볼 수 없는 시간인 5시10분으로 옮겼다. 그때 뭔가 낌새를 차리기는 했다. 오작가와 ‘감이 대충 온다’ ‘올라가서 그만 하자고 할까’라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래도 아쉬움이 있는지 오작가가 좀더 지켜보자고 했다. 그 사이에 종방이 결정된 것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코너는 무엇인가?

종방 하면서 지난 회를 돌아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코너를 세 개만 선정해 다시 해보기로 했다. ‘고요 속의 외침’ ‘사구동성’ ‘스피드 게임’이 선정되었다. 다들 <가족오락관>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코너이고 개인적인 기억도 시청자들과 다르지 않다. ‘눈을 크게 뜨세요’라는 코너가 있었다. 일부를 보여주고 어느 사물일까 맞추는 것인데, 이것이 학습 자료로 좋다는 평가가 있어서 책을 발간해 보급하기도 했다. 코너가 유익하다는 평가를 받고 여러 사람에게 전파되었을 때 그것만큼 기분 좋은 것이 없다.

이 코너들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사용되었다.

<가족오락관>을 거쳐간 PD만 31명이다. 거의 예능 PD의 입봉 프로그램이었다. 안정된 프로그램이었으니까. 이 사람들이 나중에 자기 프로그램을 하게 되면 여기서 배운 아이디어를 조금 변경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일반인의 놀이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덕분에 행사 초청도 많이 받았다. <가족오락관>의 코너를 진행하듯이 행사를 진행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도 자주 있다. 어떤 시청자는 직장 모임에 가면 자체 MC를 맡아 <가족오락관>을 진행하면서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고 말하더라.

중·장년층을 위한 예능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가족오락관>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3개뿐이었다. <가족오락관>이 없어지면 2개만 남는다. 중·장년층 시청자들이 ‘우리는 뭘 봐’ ‘우리는 소외시키는거야’ ‘우리는 시청료 안 냈나’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방송국이 알아서 할 몫이지만 중·장년층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을 거쳐간 주부만 11만명이다. 학부모부터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들까지 다양하다. 지금도 신청이 많이 밀려 있다. 이 사람들은 하루 소풍 오는 기분으로 TV에 참여한다. 자발적으로 신나게 응원하고, 간섭하고, 독려하고 지면 화를 내기도 한다. 청정 프로그램이라고 할까. 아무 득실 없이 오로지 응원하는 기분, 방송에 참여하는 기분을 느끼며 웃고 즐기는 것 하나밖에 없다. 젊고 싱그럽게 새 출발 하겠다고 하는데 가족 중심에서 자리매김하려면 시간과 경비가 많이 필요할 것이다. 구태여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미흡하지만 작은 경비로 즐겁게 구성을 해서 계속 주부들에게 사랑받아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종영하지 않고 진행자를 새 얼굴로 바꾸는 것을 어땠을까?

차라리 <가족오락관> 진행자로 내가 그만두든, 방송국에서 새로운 얼굴에게 물려줄 것을 요구하든 했다면 기꺼이 물려주었을 것이다. <가족오락관> 타이틀은 유지하면 새로운 얼굴을 등장시키는 것도 방송국에서 한 번 해볼 만한 도전이지 않았을까. 자니 카슨이 떠나면서 제이 리노가 이어가고 있는 <투나잇 쇼>처럼 말이다. 모든 여건에서 미국과 다르겠지만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초창기에는 실험적인 시도였을 것 같다.

모든 것이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TBS에서 <쇼쇼쇼>를 하다가 KBS에 왔는데, 조의진 PD가 철저하게 가족 중심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방청객을 초청해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게끔 한 것도 처음이다. 처음에는 연예인보다 사회 저명 인사들이 주축이 되었다. 버라이어티 쇼가 아니고 재치를 겨루는 명랑 백일장식이다. 처음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첫 장을 연 것이다. 그러다가 연예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가장 잘나가는 탤런트, 가수들이 <가족오락관>을 찾았다.

당시의 예능 프로그램은 어땠나?

<가족오락관>이 인기를 끌면서 다른 방송국에서도 비슷한 포맷으로 많이 시도를 했다. 그런데 이만큼 되질 않았다. 비슷하게 해도 잘 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방청객 아주머니들이 어쩌면 이렇게 신나게 놀고 가는지 의문스러웠을 것이다. 그게 <가족오락관>의 힘이다.

요즘 젊은 진행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워낙 젊은이들 대상 프로그램이 많다. 많은 예산을 들여서 야외에서 촬영하기도 한다. 게스트로는 영화 찍은 사람, 음반 낸 사람들이 나오는 홍보성 프로그램이 많다. 득실이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요즘 경제 상황이 어렵다고 하니까 돈을 벌어야겠고 그렇다면 젊게 나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젊은 진행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강호동, 유재석 이 친구들도 다 우리 프로그램에 나왔었다. 이들을 보면 재치 있고, 순발력도 있고, 같은 진행자 입장에서 보면 편안하게 진행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나름의 한 포맷이니까 그 안에서 명성을 얻을 정도면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떠들고, 웃기만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초심을 가지고 흐트러짐 없이 끌고 가는 힘이 있다. 소리만 지르는 것이 아니다. 방목의 일종이라고 보면 된다.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게 하고 그 안에서 마음껏 노는 것이다.

언어 사용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나오는데.

우리 때는 지도를 받았다. 내 할 말은 직접 쓰면서 PD의 재가를 받았다. 훈련 과정이었다. 재밌는 말을 개발하면서 말의 순화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중구난방으로 떠들게 하고는 편집으로 거른다. 그래도 가끔 말썽이 나고는 한다. 아나운서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언어 순화에 대한 훈련은 필요하다.

방송사들이 경영난을 이유로 최근 외부 진행자들을 교체하고 있는데.

아나운서가 할 분야가 있고, 전문 진행자가 할 분야가 있다. 정교함과 섬세함은 아나운서를 따라가기 힘들지만, 애드리브나 해프닝적인 요소에 강한 진행에서는 전문 진행자의 능력이 월등하다. 오락 프로그램과 여러 행사를 통해 쌓인 경험에서 나오는 순발력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래도 출연료 지출이 만만치 않다.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다. 남들은 젊은 애들이 이만큼 받으니 꽤 받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나 송해 선생이나 돈은 크게 좌우 안 한다. 어느 정도 살 만큼의 경제적인 부분만 해결되면 많은 출연료를 요구하지 않는다.

중·장년을 위한 다른 프로그램을 할 계획은 없나?

<가족오락관>과 비슷한 프로그램을 할 생각은 없다. 인생을 관조할 나이가 된 진행자로서 중·장년을 대상으로 잔잔한 토크쇼를 하고 싶다. 아이돌 세대는 아니더라도 중·장년층 세대가 나오면 우선 출연자가 진행자를 편안히 여길 테니 좀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시사나 교양 프로그램을 할 생각은 없나?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못하는 것이 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해봐야 병만 생긴다. 이번에 라디오 포맷이 두 사람 진행에서 혼자 진행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시사나 정보가 들어가게 되었다. 뉴스 해설이나 세상 돌아가는 화젯거리도 돌아본다. 그렇다고 목소리 가다듬고 잰 체하면 안 된다. 국민이 나를 재밌는 사람으로 보고 있으니 그런 것들을 전달하더라도 즐겁게 꾸며야 한다.

허참은 재미있는 사람인가?

영원히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 케이블TV에서 이현지라는 어린 친구와 <골든힛트송>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야말로 ‘고고싱’하는 아이돌 프로그램을 해보니까 나름의 재미가 있다. <가족오락관>은 내게 ‘end’가 아니라 ‘and’이다. 마지막회 녹화에서 다들 우는데 끝까지 울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은퇴도 아니고 다른 프로그램으로 계속 만날 것인데 울 이유가 뭐가 있나. 그래서 마지막 멘트도 ‘안녕히 가세요’가 아니라 ‘몇 대 몇은 여기까지입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 더욱 더 즐거움을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장수 프로그램의 의미에 대해 말한다면.

장수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그만큼 국민이 아깝지 않은 사랑을 보내준 것이다. 오래 간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매주 같이하고, 희로애락을 나눈 장수 프로그램은 국민과 함께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시청료를 내는 한 사람으로서 부탁한다. 다소 미흡하더라도 일반인이 좋아하는 청정 지역 같은 프로그램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배려하기를 바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